골든위크마다 오르는 치카네 동네 뒷산

 

 

아내 아이미쨩에게는 2명의 절친이 있다.

2020년에 아이미쨩이 나와 결혼하며 세명중 첫 결혼신고를 올렸고, 

나머지 두명 중 한 분이 2023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 장소는 이케부쿠로 선샤인 시티. 

거기 호텔은 ‘결혼식 하객 플랜’이란 것을 제공한다기에 예약을 했다.

바닷가에서 내륙(?)까지 왔다갔다 하기도 힘들고.

대부분의 호캉스(?)가 바닷가였기에 도심 내륙(?)에서 호캉스도 한번 해보고 싶었고.

 

나도 올해 6월 한국에서 열린 결혼식에 초청장을 받아 참여했다

 

여성의 결혼식 참여, 옆에서 보면 기합이 장난 아니다.

몇날 전부터 미용실에서 깔끔하게 머리를 컬러풀하게 정돈하고, 새로 산 고급진 옷을 입고, 결혼 반지를 두개씩 끼고, 비싼 목걸이를 걸고. 한껏 멋을 부려서 결혼식장으로 GO.

 

일단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이미쨩은 미리 예약한 호텔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세트를 새로 받은 후 그대로 식장으로 간다고 나갔다.

일본의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초청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기에,

아이미쨩을 보낸 후 나와 요우쨩은 자유시간이라 쓰고 독박육아타임을 얻었다.

 

 

십수년 전, 럭키스타(!)의 행사 후기에 댓글을 단 것을 계기로,

또한 유학생시절 여러번 신세진 분과 만나 다시 또 식사를 대접받고..

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토미카(자동차) 장난감까지 받았다. (그뒤로 매일밤 안고잔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져서 선샤인 시티를 이곳저곳 정처없이 걸었다.

육아를 하면 차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잘 없고, 아기의 생활습관에 맞춰 식사든 수면이든 목욕시간이든 어떻게든 그때까지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그러다 우연히 그 분수를 바라보기도 하고.

(선샤인 시티의 분수대는 데레애니 미오붐의 장소이기도. 아쿠아가 여기서 스쿠페스 행사를 갖기도 했다.)

 

밤 8시 근방…

요우쨩은 자야 할 시간.

매일 하던대로 씻기고, 책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수면의식을 마친 후 무난하게 재웠다.

 

 

요우쨩이 잠들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자유시간이다. 육아퇴근.

불은 켤 수 없고 방에서 나갈 수도 없으니 맛폰을 만지작거린다든가, 동영상을 보든가,

혹은 혼자 어두운 방안에서 콜라를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본다.

 

언제나 보던 바다의 풍경과는 다른 도심의 풍경.

 

이제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한 해를 쭉 돌이켜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3일에 한번, 나는 요우쨩과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일본의 흔한 타워맨션은 각층마다 쓰레기 스테이션이 설치되어 있고,

각층의 주민들이 쓰레기를 갖다 놓으면 업자가 1층으로 수거해가는 시스템이다.

 

집에서 나와 실내의 복도를 걸어 쓰레기 스테이션까지 가는 길.

내가 “저쪽!”하면 요우쨩도 “저쪼!”하고 안되는 한국어를 따라하며 졸졸 따라온다.

 

큰 쓰레기는 내가 던져넣지만, 리사이클 쓰레기는 요우쨩에게 직접 버리게 시킨다.

캔을 쥐어주고 캔박스를 가리키며 ‘뽀이!’하면 요우쨩도 ‘뽀이!’하고 캔을 박스에 던진다.

 

금방 쓰레기통을 비우고, 다시 복도를 반대편으로 집까지 돌며 의문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커브에 숨으면 내가 쫓아가서 얼굴을 들이밀면 요우쨩이 배시시 웃으며 꺄르르 웃고 도망치고, 내가 다시 숨으면 요우쨩이 쫓아와서 에헤헤 웃으며 나를 발견하고.

 

나는 그렇게 요우쨩과 함께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을 위해 지금껏 노력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해보면 황당한 소리에 불과하다.

러브히나와 만나 홋쨩의 명령을 받들어 일본어를 공부했다. 교환유학을 통해 러브히나의 상징교와 진검 승부를 벌였다. 우여곡절과 방황 끝에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이름 정도는 알려진 그럴싸한 대기업에 들어왔다. 북큐슈에서 4년을 살았다. 도쿄로 돌아왔다. 이벤터의 시대를 동료들과 개국했다. 주식에 자금을 꼴아박고 경영진에게 한국내한을 건의하고, 아이미쨩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요우쨩과 만나고,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탈탈 털어넣어 키우고.

 

그 수많은 시간들은 그야말로 대천사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분투한 천로역정의 나날들이었다.

그 결론이 ‘아들과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위해서’라..고?

이십대에 넌 아들과 쓰레기 버리러 다녀오는 날을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어,라고 하면 아마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

 

집에서 나와 쓰레기 스테이션까지 끽해야 수십미터.

다녀오는데 십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들고 복도를 걷고, 아들은 나를 졸졸 따라오고.

캔을 쥐어주며 “이건 캔이야, 캔! 그러니까 여기!” 하면서 통을 가리키면, 요우쨩이 “뽀이!”하고 던져넣는다.

나는 박수를 치며 칭찬하고.

돌아오는 길에 숨바꼭질을 조금 하다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케부에서 잠든 요우쨩을 곁눈길로 바라보며 또한 창밖의 도쿄야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의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바랐던 행복은,

내가 꿈꾸었던 행복은,

커리어적 성취를 이루는 것도 아니요,

남들보다 높은 자산과 비싼 부를 거머쥐는 것도 아닌,

단지 아들과 2-3일에 한번 쓰레기를 함께 버리러 다녀오는 그 짧디짧은 수십미터 십여분의 시간을 위해서.

 

그런데도 ‘그것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하고 납득이 갔다.

 

30대를 마감하고 내년으로 40을 맞이하는 내가 맞이한 결론.

이 시즌이 되면 엑쓰(..)에는 한 해를 돌이켜보며 스스로의 추억과 이루어낸 것들을 회고하는 분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역대 한해를 마무리하는 에세이가 그랬듯이.

 

그런데 2023년, 30대의 마지막 해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올해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해낸게 없는 것 같다.

이젠 꿈과 희망과 목표 같은 것은 사라지고, 단지 하루하루 업무를 해내고 육아를 마칠 뿐인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그것이 바로 올해의 전부일까.

 

그럼에도 허무하거나 아쉬움은 딱히 없다.

 

 ‘그것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물론 이것이 언제까지고 이어지진 않는다.

어차피 한 십년뒤 정도쯤 되면 요우쨩도 아빠보단 친구들이랑 노는게 더 좋을 나이가 곧 올 것이다.

그쯤 되면 지금은 중단한 해외출장, 저녁시간 등을 다시 활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한 십년...가족과 함께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전념한다.

 

그래,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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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우미 가문이 5대째 약 100여년 간 섬겨온 고향 교회 본당

 

"남자는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 창세기 2장 24절

 

늦었지만 지난 10월 15일, 결혼 예배와 피로연에 참여해 주신 분들과, 직접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멀리서 응원과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고향 경상도 예천까지 일찍부터 모이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최대한 식을 간소하게 했음에도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정신없는지라 인사도 일일이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누차 말씀드렸듯 아이미쨩과 요우쨩은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고, 제 가족과 만나는 것도 처음이라 무척 긴장한 모양이지만 한국을 무척 마음에 들어한 모양입니다.. 속도위반도 아님에도 아들을 안고 결혼식을 올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함께 참여한 덕분에 많은 분들이 요우쨩이 잘 생기고 귀엽다고 칭찬을 받아서 아버지로서 매우 뿌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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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다거나 뛰어난 능력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 같은 것도 없이,

그저 주변에 뜻 맞는 동료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즐겁게 어울리고 싶다고 줄곧 바라왔고.

진심으로 경외하는 한 성우를 만나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산 지난 세월도 어느 틈에 수십년.

 

그 끝에는 굿즈로 나온 도장과 함께 인생 최대급의 명령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2020년 4월 3일, 아마미 하루카의 생일에 혼인신고를 올린 지 2년 반...

코로나의 영향으로 거대한 록다운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그 시간,

집을 사고, 아이가 태어나고, 여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2019년 아쿠아의 내한 공연을 보며,

이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다..

이벤터 개국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상시 이벤터의 시대가 오리라 믿었기에,

조용한 니지가사키 이벤터 A로서 살아갈 것을 속내 받아들였던 그 때.

 

그 후 이렇게 서로 오갈 수 없는 나날을 보내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늦게나마 다시 만나서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길었던 록다운이 끝나고 이제 다시 서로가 서로를 방문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이벤터 시대의 개국을 함께한 여러분들께는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전해 올립니다.

쉽지 않은 어려운 시간들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동료 여러분들과 함께한 최고의 순간들과 행복했던 추억들 덕분입니다.

 

저는 아이미쨩의 질투 및 육아 등으로 어지럽게(..) 살고 있지만, 

이제 일본도 개국을 했고 여러분들이 다시 현장 및 오다이바라든가

특히 니지가사키 세츠나 마을에 놀러올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 당일 사진은 모두 수합하였으니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시면 제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잊지 말고 연락 주세요.

* 일본에서의 피로연을 가장한 가족 인사 모임 개최는 11월 26일 (토) 니지가사키 세츠나 하우스의 센트럴 타워 파티 라운지 예정입니다. 참여하실 분들께서도 개별 연락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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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태교여행 - 큐슈 카고시마 아마미섬의 저녁 해

 

"남편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듯 하라"

- 신약성서 에베소서 5장 25절

 

하나님, 아내가 얀데레라고는 안 했잖아요


‘2020년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님. 코로나 창궐 후, 삶이 멈추어버린 듯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룬 것은 보이지도 않는데 2년이란 시간만 지나가고 나이만 +2가 되어버린 감각. 그 상실감과 허무감을 무시라도 하듯, 2022년이 눈앞에 다가왔다.

 

저 너머, 레인보우브릿지 건너편 시바우라에서 3년간 살았다. 오다이바에 건너와 바다 건너를 볼 때마다 그 3년을 돌이켜보게 된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그 유명한 하루미 플래그 선수촌


도쿄는 2021년의 근 3사분기에 달하는 기간을 긴급사태 속에서 보냈다. 거듭되는 연장 속에 긴급사태는 긴급(웃음)사태가 되었다.

 

억지로 밀어붙인 올림픽은 하나의 촌극이었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이.

 

의료관계자를 갈아넣어 한국이나 일본이나 백신 접종은 8할까지 달성했으나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는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목을 스가쨩에서 키시쨩으로 갈아치운 후, 일본 특유의 쇄국과 우경화는 전보다 더 심해졌다.

몇 년의 인생을 날려버린 전세계의 유학생들의 원성과 분노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걸 보면서, 이젠 일본 취업이 아닌 일본 유학조차 여러 의미로 '끝났음'을 확신했다.

 

취업은 몰라도 유학에 대해선 제법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주변에도 권장했던 나로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쿠아 시즈오카 공연 원정 대신 유루캠 하마나 호수 사이클링

 

무사히 개최된 니지가사키 3rd 라이브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로 인해 아쿠아의 대부분의 단콘은 날아갔다. 시즈오카 아쿠아 공연 참여 기획은 그대로 유루캠 하마나 호수 사이클링 아웃도어 여행이 되어버렸다.

 

긴장 속에 무리해서라도 3rd 라이브 짭돔 개최를 밀어붙인 니지가사키는 겨우 한숨 돌렸다.

 

올림픽으로 방송 연기를 거듭하며 리엘라가 4대 세력으로 등판하고 무지막지한 스케줄의 퍼스트 라이브 투어를 지금도 달리는 중.

 

후반기에 Aqours와 니지가사키는 각 유닛별 라이브를 개최하였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킹쨩이 복귀하여, Aqours는 2021년 처음이자 마지막 9인 단콘을 치른다.

그리고 12월 31일, 럽라 3대세력연합의 카운트다운 라이브로 2021년을 막내릴 것이다.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 최북단, 히라쿠보곶(平久保埼) 등대


많은 것을 이미 얘기했지만, 나 또한 2021년에도 중대한 라이프 이벤트가 이어졌다. 

 

2월에 결혼식 대신 웨딩포토를 찍었다.

이시가키와 아마미섬으로 각기 신혼여행과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4월에는 입사 9년차를 맞아 중간 관리직으로 승진하였다. 

7월이 되고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거액을 들이부어 니자가사키 세츠나의 굿즈(부동산)를 샀다. (상세는 아래 포스팅)

이사가 끝나서 한숨 돌리자마자 아이미쨩은 첫째의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격리면제와 일상회복이 크로스하고 오미크론이 발병하기 직전이라는 훌륭한 타이밍에 한국을 다녀왔다. 

격리가 끝나자 12월도 절반이 지나, 어느 새 한 해가 끝날 시점이 되어 있었다.

 

세츠나집 앞마당(아리아케 가든) 옥상에서. 저 멀리 보이는 타워맨션들은 유우와 뽀무가 사는 시노노메 지역

 

한국에 가기 전, 만남 2주년을 맞아 세츠나집 앞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아이미쨩은 지난 시간을 술회했다.

“오빠랑 만난 뒤로는 라이프 이벤트가 번개같이 빨라서 정신 잡고 쫓아가기 바쁘네. 

처음 만나고, 사귀고, 프러포즈받고, 결혼하고, 직장 옮기고, 집사고, 아기 생기고.”
“우리 '처음' 만난지 내일로 2년 되는거 맞지?”
“응”
“...그래, 열심히 하자.”

 

2021년 2월 23일, 아야세 타카님 송별회

 

올해도 도쿄향우회의 도움으로 이곳저곳 캠핑, 그리고 오다이바 니지가사키 이곳저곳에서 바베큐를 가졌다. 

이젠 오타쿠들이 모여도 화두가 애니랑 게임보다는 라이프 이벤트에 대한 화제가 주를 이룬다. 

아직까지도 누군가가 불러준다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며,

서로 나누는 이야기에서도 시대가 흘렀음을 느낀다. 

이제는 내 트위터도 애니 이야기, 니지동 이야기보다도 아이미쨩이 아유무한테 질투해서 갈구는 일화에 하트가 더 많이 박힌다. (..) 

 

2021년 2월 25일, 신혼여행 - 오키나와 이시가키섬의 무지개


오래 알고 지내신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미즈우미님의 블로그를 보고 제가 일본 유학이라든가 취업이라든가 이런저런거 생각 했었는데요.

자신의 연애 이야기도 블로그에 적어 주셨더라면 제가 그걸 보고 미리 연애도 시도를 해봤을 텐데”

응?

그리고 내 신혼생활을 보면서 트위터의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감상들.


“역시 결혼은 좋은 것인가 회고하곤 합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대답하곤 한다.

 

"이 결혼생활을 나만 당하는 아니 만끽하는 것은 너무 억울 아니 아쉽다. 도쿄에 계신 동료들도 다들 이 헬 아니 생활을 함께 하면서 같은 악몽 아니 추억을 공유해야 한다."

 

2021년 2월 27일, 오키나와 이시가키 후사키 리조트 해안가


깊이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나를 보며 진짜로 결혼에 대해 해볼 만큼 적극적으로 노력해본 분도 있다.

연애나 결혼조차 원한다면 그만큼 고민하고 무언가 해봐야 하는 시대 - 그래서 그것을 ‘연애활동 / 결혼활동’이라 부르나 보다.

그러나 거기가 문제다.

 

몇 년째 나의 일관된 기조를 보아온 분들이라면 바로 느낌이 오겠으나, 노력과 결과에 대한 입장은 예나 다를바 없다. 

결혼한 사람은 남다른 노력을 한 거고, 솔로/싱글은 노력이 부족했냐면 당연히 아님. 

 

내 베필이 곁에 있다고 으스될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자만할 일도 아니다. 

단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할 따름. 얀데레의 사랑이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올해로 20여년의 역사를 마치고 영업을 마감한 오다이바 오에도온천이야기, 마지막 콜라보는 니지가사키


헬조선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노력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노력 끝에 무엇이 있는지 현실을 보여준 부모는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은 우리 부모들도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랐다.

 

"서울대만 들어가면! 정문에서 나올때, 서로 태우려고 막 자가용을 들이댄다!"

 

이거 어릴적에 친척들에게 진짜로 들은 말 맞다, 지금 시점에선 정신을 안들호로 보낸 또라이처럼 보이겠지만. 그렇다. 노력을 강요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실 정신을 안들호로 보낸 또라이에 불과했다.

 

필요한 스펙?점수? 뭐 그런 '라인'을 넘어서면 자동적으로 '이너 서클'에 들어가서 '무언가'가 주어진다,는 스토리에 지금까지도 많이 속아넘어갔고 앞으로도 많이 속아넘어갈 것 같다.

 

올해도 몇 번 누마즈에 갔다. 이렇게 자유롭게 누마즈에 갈 수 있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듯하다.

 

11월 한국에 가서 1년 반 만에 고향에 갔다. 고교시절 스승님과 초등학생때부터 알고 지낸 드문 절친과 3명이서 식사를 했다. 그는 5살짜리 아들을 두고 아내와 헤어져 돌싱이 되어 있었다.

 

이 나이쯤이 되면 나랑 동일한 항렬의 친척들 소식을 건너건너 듣게 된다. 고교생에 접어든 아우들의 소식은 좋은 이야기도 쓸쓸한 이야기도 여럿. 마음은 착한데 부모님의 기대에 못미쳐 갈등을 겪는 아우,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클리닉 상담을 받고 있는 아우 등.. 그런 친척 소식을 전해주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 아들은 물밖에 나가서도 속썩이지 않아줘서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다."

 

 

2021년 6월 5일, 도쿄와이드패스로 오른 니이가타 유자와 센노쿠라(仙ノ倉) 산에서 군마를 향하여 파노라마

 

결혼을 하면, 평범~하게 지내다가, 평범~하게 1~2년 후 아이가 생기고, 평범~하게 낳아서, 평범~하게 아이가 잘 커서, 꼭 명문대에 들어갈 필요는 없더라도 평범~하게 대학 가고, 평범~하게 취직해서, 그동안 가정은 행복이 넘치는....?

 

그거야말로 꿈 같은 소리가 아닐지.

평범의 기준이 많이 내려갔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평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공부를 잘 한다고 연애를 잘 할 리 없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육아를 잘 하는 것의 상관관계 물론 의문이다.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생활도 잘 한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까?

사회적 능력과 육아의 관계성은 어떠한가.

대기업 임원이 자식교육도 잘 한다,는 문장엔 어색함이 느껴진다.

 

결혼을 해서 해피하게 살았습니다,같은 엔딩은 동화 속에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잘 되었다고 앞으로도 잘 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먼 데도 아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2021년 대천사님께서 보내주신 팬클럽 회원 연하장

 

단지, 지금까지 무언가 잘 되었다고 스스로가 느낀다면...

그것이 내 노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나, 남들보다 내가 잘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권위있는 존재의 계시에 의한 위대하신 명령을 받들어 진심으로 믿은 결과라는 평소의 지론에 따르며.

 

내가 잘 되도록 도와준 손길,

함께 어울려준 사람들,

내게 앞으로 향할 힘을 준 성우와 아티스트와 행사,

그리고 이 나이가 되서까지 아직도 모임에 불러주고 만나주는 동료들,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과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조금이라도 뜻과 정성을 전할 수 있기를.

 

나에게는 아직 감사가 모자라다. 평생을 해도 충분하게 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 정도일 뿐이다.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한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와 같이...

 

내년은 2022년, 코로나 상황은 나아지려다 말았다.

여전히 아이미쨩은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결혼하고 아기까지 생겼음에도 우리 가족과 한 번도 만나보질 못했다.

 

내년 3월에 아들이 태어나고, 내가 아버지가 되면, 나의 생활도 많이 바뀔 듯.

아이미쨩은 1년 출산 및 육아 휴직을 예정하고 있고,

나는 유급으로 주어지는 출산육아휴직 외에는 재택을 병행하며 일을 계속할 방침이다.

세츠나쨩 굿즈가 하도 비싼 나머지 빚갚아야지

 

과연 나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지.

임출육 책을 여럿 읽으면서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이벤터 활동은 언제부터 재개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지만.

 

아이미쨩의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육아휴직 기간 중에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에 다녀와야 겠다는 데는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2022년 연말이 될지, 아니면 2023년 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에 뒤늦게나마 모두와 함께 만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5일, 도쿄향우회 송년회 @ 오다이바 니지가사키 다이버시티오다이바 옥상

 

84년생은 2022년이 30대의 마지막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러브라이브 시리즈 3대연합 카운트다운 라이브에 아이미쨩과 함께 참여하려 가기 위한 준비를 마치며.

 

올해의 수많은 추억에 감사를, 그리고 다가올 추억이야말로 다시 모두와 함께 하길 기대하며..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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