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받아들이는 마음
1984년에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에 유행하던 우유 광고 중에 "우리 아이는 특별해요",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 특별함에 반감을 품었다.
커서 반드시 평범하게 살리라 마음먹었다.
사람들 눈에 뜨이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게 살겠다.
단지 직장을 잡고 결혼해서 내 집에서 아이 둘 정도 두고 살리라.
84년생인 나의 어린 시절의 평범함의 이미지란 그런 것이었다.
수십년이 지나 40이 된 나는 목표한 평범함에 다다랐다.
결혼을 했다. 세츠나쨩의 집을 샀다. 첫째 요우를 두었다.
아내 아이미쨩은 둘째 유우를 올해 12월에 무사히 출산하였고, 나는 4인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어느 틈에 위 삶은 어릴 적에 생각한 평범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30대 남자의 비율은 절반을 넘긴 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출산율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아이 둘 가진 가정은 '레어'가 된 지 오래.
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다.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역시, 평범을 달성한 나는 행복한가, 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을 달성했는데 정작 결론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참 슬픈 일이다.
한 마디로 '지금'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란,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삶에 다다르기 위해 포기한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까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를 포기하였으면 꽤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정점은 2017년~2019년도였을까.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현장 파견 근무에, 아웃 도어에, 매주 이벤터 활동과 뒤풀이.
나는 만나고 싶다거나 식사하고 싶다는 사람을 거절한 적이 잘 없어서..
그당시엔 주말에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서는 한두 달 전부터 예약을 잡아야 할 정도로 그냥 쉬는 날이 없었다.
차라리 저녁밥을 사줄 테니까 평일에 회사 근처 역으로 와라, 해서 식사를 사주며 이야기를 나눈 일도 많았던 듯하다.
그 모든 것에 제한을 걸기 시작한 것은 첫째 아들 요우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성지 니지가사키라는 거주지의 압도적인 현장 접근성, 강동구 아이돌봄 서비스의 예산 가결, 무엇보다 아이미쨩의 이해와 배려 등 몇 가지의 조건이 겹친 덕이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유우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고민 끝에 그마저도 정리에 들어갔다.
일단 상사에게 상담을 하고 내년 10월까지의 장기육아휴직을 허락받아 일부터 그만두었다.
이벤터 활동은 물론이다.
내 인생 제1작 니지가사키의 내한 투어, 대천사 호리에 유이님의 라이브 투어마저도 미련없이 떠나보냈다.
그 대신 둘째를 안아든 뒤로부터는 전투적인 육아의 나날.
새벽 1시, 새벽 4시부터 시작하여 3시간마다 어김없이 분유를 유우에게 먹이며 토닥이면서, 주변 지인들이 이벤터 라이프를 즐기는 것을 트위터나 기타 매체로 접하면서 '참 즐겁겠구나'하고 생각하며, 베란다 밖의 빅사이트나 저 멀리 하네다 공항을 가끔 응시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취미, 목표로 해왔던 이벤터 활동마저 내려놓고,
그리고 모든 에너지와 시간과 삶을 육아에 탈탈 갈아넣으며, 나는 무엇을 바라 여기까지 왔던가.
2018년에 적었던 한 해 회고에 그 답이 적혀 있었다.
"이 세상은 '아.직.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의 목숨, 인생,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능력을 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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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이 마치 '성취'인마냥 인식되는 풍조에도 처음부터 딱히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벤터 활동 등 자신의 소중한 취미에 매진하고 즐거운 독신의 삶을 만끽하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언젠가의 나는 내 이벤터 활동과 일 등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갈아 넣어서라도 내가 생각하는 '과거 평범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기로 결심했었다. 거기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무슨 논리적 근거나 타당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믿었다.
그리고 신의 계시와, 대천사님의 명령을 받들어, 지금 이 순간 뜻하던 대로 되었을 뿐이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느냐.
현재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가진것도, 목표한 바도, 모든 것이 다르다.
대체로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이라는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돌이켜봐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행동해서 여기에 왔다,라는 납득함을 갖게 된다면, '뭐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까진 못해도 끄덕끄덕하면서 2024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내년 2025년에도 많은 분들과 덕담을 주고 받으며 가끔은 식사를 나누며 가끔은 현장에서 가끔은 자연을 바라보며 어울릴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처음 계시를 받아들고 명령을 이해하였던 시절, 꿈과 희망과 목표가 넘쳐흘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은 꿈, 희망, 목표란 것을 가졌던 때도 있었구나 하며 하루하루의 업무와 육아를 마칠 뿐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삶도 싫지 않다.
아마 나는 처음부터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불굴과 투지의 소년만화같은 인생이 아니라, 단지 하루하루 무난한 삶을 살아갈 뿐인 인생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을 듯하다.
그래 그게 뭐 어때서.
결혼한지 5년이 다 되어가도록 얀데레스러운 깊은 사랑을 가져주는 아내,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멀리서부터 아빠를 외치며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겨붙으며 잘 커가는 아들,
그리고 또하나 둘째아들.
가끔 베란다에 나가면 세츠나쨩이 바라보았던 풍경.
그걸로 됐지 아니한가.
그런 2024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5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