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쿠시마의 능선을 따라 걸었다.


우거진 삼림 속.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걷고 걸어

산정상에 이르른 순간

비구름이 섬 전체를 둘러쌌다.


뺨에 부딪치는 차가운 비 속에서도,

신록의 아름다움을 잃고 있지 않는 큐슈의 최고봉.


걸음과 걸음이 이어져 다리가 무거워질 때도,

폭풍우와 같은 비와 바람은 멈추질 않고 계속되었다.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고 하늘을 올려볼때,

구름이 일순 걷혀 햇살이 내리쬐고 저 멀리 푸른 바다가 보였다.


7천년이 넘도록 살아온 삼나무 앞에 섰을 때,

생명이 아직 이어지는 거목 앞에는 시간의 무한함이 가득하다.


평탄한 길만이 남았다고 믿었을때,

분기점에서 다시 오르막이 지속되었다.


집채만한 바위를 두들기는 폭포와도 같은 물살을 목숨을 걸고 건너,

2박 3일 걸리는 코스를 한나절로 마치고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그리고 항구에서 섬을 떠나기 직전,

다시 한 번 내가 발을 디딛은 높은 산 정상을 올려 바라본다.


이 섬 야쿠시마의 야쿠산은,

사회인으로서 정진해온 나의 엔지니어로서의 인생이었다.



 - 야쿠시마를 떠나는 고속선 안에서 지었던 시 (2016/5/3)


그러나 오늘 오른 곳은 야쿠시마가 아니라 북큐슈의 산맥.




북큐슈를 떠나기 하루 전, 2017년 4월 4일.. 

북큐슈땅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정상만 찍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 산 몇개를 따라 걷는 '종주 코스'.


일반적인 등산과 달리, 종주 코스는 난이도와 걸리는 시간 및 체력소모량이 급격히 올라간다. 

산 하나 정상 찍고 그대로 내려오는게 아니라, 산봉우리 몇 개를 타면서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거든.


그만큼 재미는 있다. 

정상 하나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산을 동시에 둘러보아야 하니, 

산맥과 지리 및 윤곽을 파악하며 산악의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이 나이에(..)도 체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기도 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새로운 길을 쭉 걷는 것도 즐겁다.




위 루트를 천천히 걸어서 대략 5-6시간 정도 걸린 듯. 

아침 8-9시 즈음에 시작해서 오후 2-3시에 끝났으니 하루코스로 적절했다.


왼편에 북큐슈 시내와 야하타제철소, 

오른편에 북큐슈 동쪽 바다와 혼슈가 내내 보여서 경치도 매우 일품.






산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북큐슈 시내와 야하타제철소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장기간 살았던 곳을 떠나기 전에, 

높은 곳에 올라 살았던 곳을 내려다보며 지난 추억을 다시 회상하는 것은 오랜 버릇이다.


학부모교에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날 때.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에도 남산에 올랐다.

센다이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칸나기 토착신에게 인사(?)를 겸하여 하나부시 신사.

대학원에 합격하고 고국산천을 완전히 떠날 때는 서울과 고향에.

야하타에 내려가기 위해 도쿄를 떠날 때는 신쥬쿠의 도쿄도청에 올라 씁쓸한 패배자의 표정으로 도쿄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반쪽달이 떠오르는 마을, 미에현 이세시에서 반 년간의 시운전 공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도 이세시마스카이라인이라는 유료도로에 올라갔었다.


그리고 지금.. 

지난 4년간 살았던 북큐슈 야하타를 바라보고 있다.

 


은하철도999와 우주전함야마토의 저자 마츠모토 레이지 선생의 출신지.

유이쨩의 성과 헛갈려 오구라 라고 불렀던 '코쿠라(小倉)'역.

북큐슈 최대의 여름축제 왓쇼이마츠리에 회사동료들과 단체로 왓쇼이춤을 추었던 코쿠라성 일대.

맨즈데이 금요일밤, 일을 마치고 천백엔에 영화한편 느긋하게 감상하던 리버워크.

검호 사사키 코지로(어새신)가 결투를 벌였던 간류섬에서의 릴레이 마라톤.


그리고, 일본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본 제1이자 세계 제강규모 제2의 철강기업의 도시.


"타인을 존중하며 분위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며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충실히 지키는 사람"


"항상 밝으며 남을 배려하고 직장의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드는 사람"


"오피스나 회식 자리에 단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절대적인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선배."


"앉아서 업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기뻐지는 후배."


"여기서 플랜트 만들 사람이 아니야. 큐슈에 두기엔 아까움. 도쿄에 가서 활약할 인재."


팀 송별회에서 알게 되었다. 

부장님과 실장님, 팀장님, 프로마네 등 상사들이 합심하여 

몇 년이나 인사실과 협상하며 나를 도쿄 본사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입사 후 같은 취미를 가진 동료를 찾을수 없어서.. 

발상을 역으로, 한류동아리를 창설하여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다. 


환송영회날, 케이크와 색지를 안고서.. 

돌이켜보니 매년 도쿄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으로 정신이 어둠에 빠지고 불면증에 고통받던 증상이, 

동아리를 창설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없어졌다. 


이 동아리를 운영하며 역으로 얼마나 구원받았는지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팀을 짜서 릴레이로 海の中道 마라톤에서 2015-2016 2년 연속 일반부문에서 우승하였던 자회사, 설계사의 동료들도 상경을 축하해주었다.




가끔 식사나 디저트를 함께 먹었던 친한 레이야 (코스프레이어) 아가씨는, 백화점에서 산 고급 손수건을 선물해 주었다.



거 이상하다.


4년 동안 그저 도쿄에 돌아가고 싶어서..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고만 싶었는데.

사람들과 어울림 따위 안하고,

항상 혼자서 외롭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으면 좋았다.

상사들에게도, 좀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좀더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흔하디 흔한 아쉬움이 마음 속을 쓸고 지나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쳐다본 곳에는 

북큐슈 시내와 야하타 제철소가 한 눈에 들어왔다.


모든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국을 떠날 때 하나님께 올렸던 "정의의 마법사의 기도"를 이 자리서 다시 낭독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곳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창세 전에 제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옵소서.




저는 세상 중에서 제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것이

저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어렴풋이나마 보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 앞에서 실천해 보였사오며,

그들은 아버지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알든지 알지 않든지,

제 모습을 보고 제가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하는 줄 알고,

저의 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 주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제가 비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저와의 만남을 허락하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는 이제 이곳에 더 이상 있지 아니하나,

그들은 이곳에 있사옵고,

저는 아버지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으로 가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제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그들의 앞날에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제가 비는 것은

그들을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의 힘에 사로잡히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저는 아버지를 알았고,

제가 이곳에서 그랬듯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저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언젠가는 그들의 영혼과 저의 영혼이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이 지구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깨닫고

함께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기뻐할 날이 올 것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라 하셨으니..


제가 세상에서 손짓하는 안락하고 편하고 쉬운 길을 저버리고

눈물과 고통으로 가득한 가시밭길을 이를 악물고 기어이 이겨내었듯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서도

진리를 따라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 정의의 마법사의 기도 (正義の魔法使いの祈り)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바다 건너 땅은, 혼슈.

저쪽 멀리.. 


약 1,000km 너머에 도쿄가 있다.


도쿄쪽을 바라보며,

주머니 속 내일자 도쿄행 신칸센 그린차 전자티켓을 가만히 쥐었다.





꿈이 생겨나고 
꿈 때문에 울었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어졌어

모두가 함께 고민한 덕에 
여기에 드디어 도착했어


이제부터야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동경심을 안고서 다음을 향해 나아가자

우리들만의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어

We say "요-소로-!(ヨーソロー!)"







배가 전진하기 시작해
자, 미래로 여행을 떠나자

푸른 하늘이 웃고 있어
더욱 앞의 경치를 바라보자



빛이 되자
미래를 비추고 싶어
마음에서 반짝임이 넘쳐 올라오고 있어






Ah! 마침내 손에 넣은 미래의 티켓,

치켜들면서..!




.
.
.



"...그러므로 자신감을 갖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난 4년동안의 북큐슈 생활은 힘들었지만 결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여러분들과 같은 존경스러운 상사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가치있었다.


 함께 일하며 엔지니어로서의 첫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의 영광이자 자랑입니다. (人生の栄光であり、誇りです。)"


 - 2017년 3월 31일, 기술본부 환송영회 마지막 인삿말



Posted by 水海유세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