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이 빡시던 2017년 1-2월을 거쳐, 사내 승진과 도쿄 이동을 결정지었다. '도쿄로 돌아간다(東京へ帰る)'는 표현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웃었지만, 2년 간 도쿄에서 생활하였으므로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그래서, 4년간의 지방생활이 끝나고 시작된 도쿄생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으니, 무엇이 바뀌었는지 돌이켜볼까 한다.


결론부터 말해, 생활 수준은 많이 하락했다.






・거주지: 회사소유독신기숙사 → 회사계약독신기숙사

북큐슈에서는 2012년에 신축한 회사 보유 독신기숙사에서 거주했다. 입사자는 전원 정사원, 그룹사원.


도쿄에선 2014년에 신축하고 회사가 계약한 독신기숙사에서 거주. 이 기숙사와 계약한 타사 사람들로 거주자는 다양하다.. 개인이 계약해서 들어올 순 없으니 전원 사회인. 위치는 아키하바라에서 반경 5km 내. 즉, 대단히 시내 한가운데이다. 월세는 공용비 등을 합쳐 12만엔 정도이지만, 대부분은 회사에서 내 준다.



・교통: JR큐슈 카고시마본선 전철 → JR동일본 야마노테선 전철

기숙사 ↔ 회사간 정기권 교통비는 회사가 내준다. 다만 도쿄는 감히 큐슈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출퇴근길 러시아워가 반긴다. 그나마 7시 전으로는 탈만함. 아침형 인간이라 천만다행이다.


북큐슈 기술본부 사원들은 1년차에 보통 차를 뽑는다. 4년이 되도록 전철로만 버틴 미즈우미가 되려 이상한 편. 20분마다 전철이 한 대씩 오는 지방이라면 자동차는 필수 품목에 가까움.


도쿄에서 쓰기 위해 북큐슈에서 자전거를 한 대 사갖고 올라왔다.



・주차비: 자전거 0엔 → 3,300엔

북큐슈는 자전거건 자동차건 주차비는 따로 징수하지 않는다. 주차장 위치와 번호를 할당할뿐.

도쿄에서 자전거는 1년에 약 3,300엔을 관리회사에 지불하고 자전거 주차장에 보관할 수 있다. 웃기는게 등록비일 뿐이지 방범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네놈은 칼 안든 강도인감?

심지어 자동차는 주차장 자체가 없어서 외부 주차장을 찾아야 한다. 도쿄 한복판의 외부 주차장 한달 계약료가 얼마인지 궁금하면 검색해보길. 엄청나다.(..)



・인터넷: 개별 계약 → 기본 제공

도쿄는 기본으로 제공한다. 북큐슈는 개별 계약이 필요. 공유기 하나 사두면 인터넷이랑 와이파이를 공짜로 쓸 수 있다. 나아진건 이거 하나뿐인 듯



・택배사물함: 둘다 무인 사물함 이용

두 곳 모두 무인 택배사물함이 설치되어 있다.



・세탁: 공짜 → 세탁기 200엔 건조기 15분/100엔

북큐슈에선 가운데 설치된 세탁룸에서 세탁과 건조기 공짜. 

도쿄는 세탁에 200엔, 건조기 가동시간이 100엔당 15분.(..) 다들 빨래건조대를 베란다에 설치하여 말린다.



・드라이클리닝: 와이셔츠+양복바지 기준 430엔 → 약 1,000엔

큐슈에선 기숙사 픽업서비스로 와이셔츠는 130엔, 양복바지는 300엔. 

도쿄는 와이셔츠가 250-300엔, 바지는 600엔으로 두 배 가량 비싸졌다.



・공간: 그럭저럭 → 좁다

북큐슈보다 좁아졌다. 주종 활동영역이 이벤터 계열이라 사모으는 취미가 없었다고 해도, 4년간 쌓인 짐이 만만찮다. 독신남인데 이삿짐 박스가 45개.(!)

철봉 조립형 선반을 사서 조립하고 어떻게든 다 밀어넣었다. 책이 특히 많았고, 이에 대한 반성이 아마존 킨들 구매와 전자 도서관 구축 검토로 이어졌다.



・식사: 식당+공용조리실 → 공용조리실

북큐슈는 식당에서 아침식대 300엔에 온갖 과일과 채소, 밥, 수제빵을 먹을 수 있어 매일 이용했다. 2, 4, 6층 한가운데에 공용조리실에서 고기를 굽거나 나름의 요리를 하기도.

도쿄는 식당이 아예 없다. 각 층마다의 공용조리실에서 자취를 하거나 사먹거나.



・전기세 및 수도세: 야하타제철소 생산 전기 7~80% 할인 → 세금별도 7,000엔 정가

북큐슈에선 야하타제철소에서 보내오는 폐열회수에너지를 이용, 큐슈전력의 7-80%까지 할인된 가격에 이용했다. 수도세는 공짜. 매일 개인 목욕탕에 물담고 목욕해도 1엔도 안 나온다. 


도쿄는 수도광열비라는 명목으로 월 7,000엔을 정액 징수한다. 이거 세금 별도다. 즉, 실제로는 7,600엔 정도. 무슨 전기세와 수도를 그렇게 써대야 그정도 가격이 나오는지 납득이 안 가지만.




이상, 간단한 것만 적어 보았다.


도쿄 중심부에 이동한 것만으로도 물가는 폭등하고 공간은 좁아지고 잡비가 더 들어가는 등,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내려갔다.


보다시피 회사에서 계약한 기숙사에 들어왔고. 이삿짐도 회사가 이사비용을 대 주어 일반적인 이사보다 부담은 크게 낮았다. 

그렇게 회사에서 전반적인 서포트를 받았음에도 이 정도. 

일본에서 이사 몇번 하면 저축 다 털린다는 소리가 농담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후회감이 드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오기 전부터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거든.


도쿄로 오고 싶었기에 도쿄에서 살면 어떻게 될지 모든 정보를 샅샅히 훑었다.


미리 라이프 스타일을 알아보고, 이러한 리스크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래도 그 길을 가겠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거기서 얻은 결론으로 자신이 결과에 납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린다.


큐슈에서 도쿄로 옮기면 삶의 질이 틀림없이 추락한다.

그걸 각오하고 도쿄를 희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






「너의 이름은.」에서 타키가 사는 신쥬쿠의 비좁은 아파트. (라고 썼지만 그리 비좁게 보이지도 않음)

설정상 타키네 아파트는 월세가 30만이다. 단위가 원이 아니다. 엔이다.


정확한 건 아니나 어림짐작.. 

타키네 아파트급 집한채를 10-20년 감가상각시켜 중고로 살 돈이면, 북큐슈에서는 3-4LDK의 '단독' 주택을 '신축'으로. 좀더 옵션 추가하면 정원까지 붙여다 살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후쿠오카는 물가 싸다. 음식도 맛있다.

전철이 불편하지만, 차 한대 뽑아서 굴리면 출퇴근길 전철 러시아워 따위 그닥 없다.


좁은 방에 사람많고 매일 전철 미어터지는 대도시,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오모테산도의 카페에서 2,500엔짜리(!) 팬케이크를 사먹으며 알바 뛰어 시급 천엔이상 용돈버는 타키군 같은 삶.

vs 방을 몇개나 소유한 넓은 공간의 단독주택에서 자가용이나 바이크를 굴리며 도시보다 싼 값에 맛있는 쿠치미즈술음식을 먹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미츠하 같은 삶.


어느쪽을 원하는가?

무엇은 감수해도 되고 그 대신에 무엇을 반드시 쟁취하고 싶은가?


인생의 정상 결전이란 링에 올라서기 전,

그것을 스스로에게 철저히 물어야 한다.




사람이 간사한게, 지금껏 자신이 누리던 것은 당연히 이동 후에도 유지될 걸로 무의식 중에 생각하다가, 이동 후에 '아 이거는 아니었는데'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생활수준이 낮아질 것은 이미 각오했었다.


대신 도쿄로 귀환하자, SSA단의 후배들, 교회 신우들, 한국어학당 도쿄본사의 멤버들이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다.


새로 생긴 한국의 이벤터 동료들도 도쿄로 와준다.


같이 놀 수 있는 사람이 도쿄에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위대한 대천사 성우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심지어 평일이건(!)

가고 싶은 이벤트에 느긋하게 갈 수 있다. 티켓만 있으면


비좁은 곳에서 살며 생활비도 올라갔고 생활수준은 낮아져도,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성우를 만나러 갈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걸고 싸워 희생한다.


이벤터에게 도쿄의 중심부로 이동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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