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까지, 지금의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미소녀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 「2007 한여름 페스타, 안경회 일본원정단 9일차 오다이바」 (미즈우미 유세현 24세)
1984년 7월 26일에 태어나 2014년 7월 26일로 만 30세를 맞이한다. 일본에서도 명실상부 30대. 작년부터 줄곧 30대라는 자각을 갖고 있어서인지 특별한 느낌이나 감회는 없다. 동갑내기이자 같은 생년월 출생인 난죠르노는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만.. 라면이나 먹고 있겠지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럽다든지 조숙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십대 시절엔 마음과 성격에 비해 생물학적 신체적 나이가 낮다는 위화감이 줄곧 있었다. 30대가 되면서부터 이제야 내면과 외면의 연령이 점차 일치해가는 느낌.
* 이십대를 돌이켜 본다면?
나의 십대는 꿈을 바라보던 시대요, 나의 이십대는 꿈을 성취한 시대였다.
십대시절에 애니를 보며 해보고 싶었던 꿈을 이십대에 대부분 이루었다. 페르마의 정리는 아니다만, 구체적으로 적기엔 진짜로 시간이 모자라서 생략한다. 단지, 애니와 성우를 진심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생을 걸고 증명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원클릭 다운로드로 컨텐츠를 공짜로 받아보는 오덕문화가 만연한 조국에, 어마어마한 노력과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여 성우와의 적극적인 어울림과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이벤터 활동을 도입하고, SSA단과 각종 이벤트 스태프로 구르며 몸으로 익힌 일본 본토의 선진적인 프로마네(Project Management)에 참여하고 한국에서 실무를 맡은 것은 제3영역권의 큰 추억거리.
홋쨩이랑 다카포도 좋고, 실적도 좋지만.. 무엇보다 많이 얻은 것은 '사람'이려나. 시골농촌 경상도 예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서울로 올라온 내겐 아는사람이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전국(!) 어디든 가는 곳마다 반겨주는 사람이 있고 신뢰를 받고 있다.
학부모교 시절 섬기던 교회에서, 능력과 인성 좋은 자랑스러운 친구와 홍차누님이 만나 결혼한 것은 개인의 축복을 넘어선 가문의 축복으로 확장되었다.
* 이십대에 힘들었던 것?
이십대 초반에 대좌절을 경험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2006년 23세, 처음으로 도쿄에 왔을 때. 학점은 민망하고, 군 복무하느라 머리는 비었고, 어떤 빗치 덕에 지인의 절반을 날려먹었다. 학교엔 연락닿는 친구 한 명 없었고. 당시엔 교회에서 공동체생활도 안했으니. 인맥 제로. 능력제로. 돈한푼 없는 빈털터리.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다 쓰러지고 망한 잿더미에 앉아서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던 것이 그때의 나였다.
그런 텅빈 맨손으로 오다이바에 섰을 때, 마음 속에 오래 동안 품고 있었던 달란트를 기억해냈다. 러브히나. 신께서 주신 단 하나의 달란트. 가장 사모하는 성우에 대한 애정.
돈을 바란 것도 아니다. 학벌과 명예를 원한 것도 아니다. 단지 애니메이션과 행사를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을 추구했다. 그런 내게 신의 유학에 대한 계시가 있었고,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십대에 아쉬운 점?
천하에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것과 사회인이 된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한건지 못한건지 확신이 없다. 아무생각없이 상사가 시키는 거나 수동적으로 하고, 정시출근 칼퇴하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경비원같은 삶을 바랐는데...
다만 SSA단이라는 평생가는 인맥을 쥐었고, 취직해서 바라던대로 독신귀족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니. 어차피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걸로 좋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가며 항상성을 위해 노력하는 중.
한국의 유명한 외고나 과고, 사립고에서 해외에 유학가서.. 그중에 취업에 성공하는 학생은 절반도 채 안되더라. 그 취업한 인재들 중에서도 기간산업클래스에 속하는 유수의 기업에 들어가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여기서 지내며 아쉽다고 말하면 돌맞을 처지.
2차원에서는 최애작 다카포 관련해서 진행하던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상황이 좀 좋지 못하게 돌아가서 일단정지시켜 둔 것이 못내 걸린다. 도쿄로 돌아가면 다시 추진하고 싶다.
* 30대에서 이루고 싶은 꿈?
좌로부터 성우 히토미(다카포시리즈의 요시노 사쿠라, 마법소녀 리리칼 나노하의 타카마치 나노하 역), 작곡가 코우사키 사토루(모노가타리, 아이돌마스터, 스즈미야 하루히 작곡), 성우 니시 아스카(금빛 모자이크 시노부 역), yozuca* CooRie 하시모토 미유키 미사토 아키(다카포시리즈 아티스트), 그 밑에 Pile (러브라이브 니시키노 마키 역), 쿠스다 아이나(러브라이브 토죠 노조미 역)의 사인들
어린 시절에 가졌던 꿈을 거의 대부분 이루었기에, 이제 와서 「꿈」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자 옛날 아등바등하던 생각이 날 뿐이지,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파란만장하고 격렬했다. 「아사히선배는 설정마저 초월했다」는 후배들의 말을 괜히 듣는 게 아니니까. SSA단 신간회보의 '용어사전'에 프로필이 등재된 것도 후배들의 자발적인 판단에 의해서였고, 나중에 보고 웃었을 뿐.
제2영역.. 즉, 전공분야에선 아직 고민중.. 프로젝트 매니지먼트가 가능한 클래스의 화학공학 엔지니어가 되고 싶고 되어야 하지만, 아직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회사에서도 여전히 업무와 공부를 병행 중. 거기다 박사학위에 대한 고민..
한가지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영국유학. 다카포 시리즈의 시들지 않는 마법의 벚나무의 창시자, 릿카 그린우드와 요시노 키요타카가 마법을 익히고 연구한 저 섬나라에 언젠가 나의 마법을 익히기 위해 유학을 가보고 싶다.
* 결혼 안해요?
너,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
아직 의욕이 없어서 프로젝트 기획조차 안세워놓은 상황. 몇 년내로 해결을 봐야 할 문제고. 경상도 출신의 보수주의자라서 결혼은 해야된다고 생각하지만, 리얼여자란... 정말 도통 모르겠네요.
초등학생때 여자애들에게 심하게 따돌림을 당해서, 그 여파로 여자를 혐오하고 기피하는 증세가 있었다. 전술했던 빗치사태를 겪고는 이건 여자를 피해다닌 하나님의 벌이다. 앞으론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노력하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교회에서 공동체를 시작하며 아가씨들과 어울려도 특별한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을 정도로 대인관계능력이 성장했다. 의외인게, 아가씨들도 밥먹거나 얘기나누는걸 제법 좋아하더라. 아가씨들과 친구나 동료관계까지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 연애는 아직 생각이 없구만. 이벤트에서 성우랑 노는 것에 비하면 인간적으로 연애는 너무 재미가 없어. 하지만 이벤트에서 데이트가 가능한 아가씨가 출동하면 어떨까?
트위터에서 몇번 얘기한 바 있지만, 성우랑 결혼(......) 같은 헛된 망상을 꾸는 건 아님. 일본 성우들의 생활스케줄을 객관적으로 고찰했을 때, 신붓감 상대로는 좀.. 게다가 같은 이벤터나 애니팬이라 하더라도, 애니를 좋아하냐 아니냐라기보단 인성의 문제. 자기 남자의 취향을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건, 잘 되는 아가씨가 있고, 죽어도 안 되는 아가씨가 있더라. 이건 종교문제와도 직결되니 제법 크리티컬한 문제. 앞으로 연애를 한다면 이 부분에서 선택이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20대에게 한마디 하자면?
'덕업일치'란 단어가 있다. 취미생활에서 성공을 이룬 능덕들을 말하는가본데, 덕업일치는 삼권분립의 원칙과 대척점이다. 즉, 미즈우미의 인생은 덕업일치의 완벽한 안티테제다. 「네가 하고싶은 걸 해라」는 그럴싸한 말을 '죽마를 탄 헛소리'로 바보취급한 것도, 한국이나 일본이나 하고싶은 걸 하면서 밥먹고 살 정도로 좋은 사회가 아니기 때문. 취미는 취미로, 일은 일대로 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본인을 따라할지 어떨지는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선택이다.
딱히 무엇을 해야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 훈장질할 생각은 없다. 삶의 여정을 공개적으로 많이 보인 편이니까. 애니와 이벤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드렸다. 그것으로 충분..
서점에 가보면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살아야한다 같은 책이 넘쳐난다. 혹은 어르신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큰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몇살 더 먹은 사람이 학생때는 편한거다 사회생활이 얼마나 힘든줄 아냐고 거들먹거릴 지도 모르지. 전부 개소리니까 신경쓸 필요 없다.
그래도 이십대에게 무언가 말해달라면, 이십대는 인생에서 중대한 선택을 할 기회가 많다. 인생을 선택할 때 그분야 전문가들과 직접 만나서 가급적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예를 들어 교환유학을 가보고 싶다면 갔다온 학교 선배와, 애니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면 애니메이터와,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다면 하는 중인 석박사생과. 인터넷 서핑으로 찾은 정보에 여러분들의 인생을 걸지 말도록.
그리고 여러분이 삼십대로 올라설 때, '난 이십대에 거의 모든 꿈을 이루었다'고 자신있게 회고할 수 있길.
* 이십대의 회고를 마치면서
「캄파넬라.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함께 가자. 나는 이젠 저 전갈처럼 진실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의 몸 따위는 백 번을 태워버려도 좋아. (중략) 나는 이젠 커다란 어둠 속이더라도 두렵지 않아. 반드시 모두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내기 위해 갈거야.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함께 나아가자.」
- 미야자와 켄지의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 남십자성
이십대에 쌓아올린 최고의 금자탑이자 분기령이 되었던 도쿄대학 입시전날, 하루 7시간짜리 아니멜로 서머 라이브 양일을 풀타임 참석하면서, 마지막 순간 미즈키 나나님을 사이리움으로 가리키며 외친 말은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내일 시험장을 향하여 걸어가는 용기뿐이다!!」였다.
십 년을 품어온 사랑의 정점을 이룰 결정적인 순간에 아니서머에서 양일을 뛰어다니는 정신나간 짓을 하고도 합격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비결은 없다.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아무리 정보를 모으고 유리한 고지를 점거해도, 과실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싸워야 하는 진검승부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 거기서 내가 선택한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다. 그런 확신과 배짱과 용기 없이는 최후의 정상결전에서 이기지 못한다.
'이러면 어떡하지/저러면 어떡하지'하고 주변여건에 흔들리고 떨어갖곤 될 일도 안 된다. 한번 마음속으로 정했으면, 불안하답시고 나불대지말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속에 품어두고 담금질을 하자. 그러면 어느틈에, 긴장하면서도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반해서 합격시켜주는 대기업 인사담당자와 만날지도 모른다. (???)
여러분들의 취미에 쏟는 열정은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 2차원의 세계는 부끄러운 덕질이 아닌, 최고의 취미이자 신이 내린 축복이다.
격렬하고도 치열하고 파란만장했던 이십대를 넘어,
신앙과 엔지니어와 취미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삼십대의 시대로..
단 하나의 달란트를 허락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삼십대의 시대에 이루어야 할 모든 것에 희망이, 미래가, 축복이 있기를.
나의 평생
하나님이 허락하신
단 한 달란트를 위하여.
2014년 7월 25일, 만 이십대의 마지막 날
水海유세현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벤터의 행방 (イベンターの行方) (0) | 2015.12.31 |
---|---|
[칼럼] 러브라이브 파이널에 대한 생각 (4) | 2015.12.07 |
2차원의 자유를 가진 영혼 (0) | 2014.07.10 |
성우 라디오의 시간 - 30대가 되어 꿈을 이야기하는 것 (2) | 2014.05.19 |
미소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다 (0) | 2010.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