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ours Finale 영구 스테이지 (2025.06.21.)

천사소녀 네티, 아니.. 괴도 세인트 테일의 성우님의 소천 소식을 들은 것은 한여름이 절정이던 8월의 일이었다.

사쿠라이 토모님,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와 더불어 내가 처음 들은 일본 성우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향년 53세, 너무 빠르게 가셨다.

PC 앞에서 묵념을 올리며, 천사소녀 네티 사전을 오랜만에 꺼내 보았다, 이젠 HWP뷰어를 설치해야 볼 수 있는..

https://x.com/TOMO_SAKURAI_/status/1956597175208824952

 

성우는 아니지만, 토요사키 아키의 남편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이 같은 8월에 들려왔다.

아이돌 성우 활동까지 보았던 젊은 성우가 돌연 미망인이 되다니..

성우의 결혼이나 출산 등 라이프이벤트 소식에 시간의 흐름을 퍼뜩 인식하는건 성우 오타쿠에겐 흔한 일이나,

마침내 소천이라는 단어까지 등판하기 시작했구나.

 

2025년 유일한 원정, 니지교외학습 나고야 공연 (2025.08.17)

 

선남선녀 부부였던 하나자와 카나는 남편 켄쇼와 결별하고 돌싱으로 돌아왔다.

아얏페, 즉 스자키 아야는 악전고투하던 육아로 빡쳐서 결혼반지를 내던지는 등

남편과 처절한 결투(?)를 벌이며 트위터에서 씩씩거리다가 나중에 팬들에게 사과를 올렸다.

그래, 아무리 데레마스의 여신(?)이라 할지라도 육아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게도 작년 12월에 태어난 둘째 아들 유우는 기쁨이면서도 리스크였다.

마침 사회 분위기도 아빠의 육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겠다......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2025년 올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1~2월의 육아휴직과 3~5월의 잠시 복직, 6월~10월까지 다시 육아휴직.

도합 약 7개월에 걸친 육아휴직이었다.

 

사회인 인생에 이정도로 길게 휴직할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병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최선을 다해 아기를 돌본 덕인지, 애들은 순조롭게 성장했다.

가정붕괴(?)직전까지 갔던 요우때와는 분위기가 천지차이.

애가 둘이면 육업 양은 2배도 아니고 5배 10배랄 수 있겠지만,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노력한 덕에 나와 아이미쨩은 전과 다른 육아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11월 복직한 지 한달 정도 지난 타이밍, 부장님에게 불려가 인사이동명령을 하달받았다.

근 9년만의 사업부 복귀. 내년부터 사내 벤처기업(?)의 커리어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슬슬 나도 커리어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8월, 지인 결혼식 참여차 8개월차 유우와 나 둘이서 고향에 다녀왔다. 아기와 아빠 2명의 국제선 비행기의 경험

 

일본도 육아, 병간호 등에 대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가정간 개인간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뭐가 되든 자기책임주의.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ry로 유행어 대상을 탄 새 총리대신이 토호쿠지방 지진을 두고 한

'재해 상황에선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발언은 지금의 일본 사회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명언이었다.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임신과 육아와 출산은 오롯이 각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며 그 결과와 책임은 가정에 떠넘기면 된다,는 것이 일본 관료들의 생각이다.

이차원의 대책이라 거창하고 요란하게 표어를 걸어놓고는, 참새 눈물만도 못한 수당과 상한제한걸린 급부금 조금 더 얹어주며,

기업을 닦달하여 아빠들에게 육아휴직을 주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적의 논리를 힘차게 밀어붙였다.

당연하지만 일본은 매년 최저출생자수를 갱신중이며 작년도 바닥이고 올해도 바닥을 찍었고 내년도 더 바닥을 찍을 것이다.

 

일과 육아와 이벤터활동의 조화를 이룬다......?

이건 헛소리다. 남편을 갈아넣거나 아내를 갈아넣거나 혹은 그 부모를 갈아넣거나,

아이돌봄 혹은 가사돌보미를 매일 불러 돈을 쳐바를 수 있는 부잣집이 전부가 아닌 사회에선 대부분 불가능하다.

 

매년 5월 1일 노동절에 오르는 누마즈의 치카네 동네 뒷산

 

어떤 식으로든 가정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일의 퍼포먼스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취미 이건 최후선 순위가 된다.

 

회사 회식을 포함해, 아무렇지도 않게 주말 저녁을 내놓으라는 이벤터 활동은 어떠한가.

(요즘엔 낮밤부로 나누어 행사가 개최되기도 하지만 딱히 육아가정에의 배려가 아닌 돈문제로 어부지리(?)를 챙겼을 뿐.)

 

아이를 둘 두면서 일의 퀄리티도 하락했고, 이벤터 활동도 상당수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내 커리어, 이벤터 활동의 암흑기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바로 희망이 있다.

 

올해부터 요우는 스스로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우리와 다름없는 식사를 하고, 스스로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고,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가면 손흔들고 계단을 올라간다.

아이의 성장은 우리의 상상을 넘었다.

느리지만 꾸준히, 변함없어 보이지만 확실히 성장하고, 나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가을 산행 - 오오야마산 등산 (2025.10.06.)

 

대부분 걷지만, 가끔 15kg에 근접한 요우를 안아올리고 어린이집에 갈 때도 있다.

이제 요우를 안아올리는 것도 앞으로 2~3년밖에 남지 않았다.

 

3년 뒤 요우는 초등학생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 등교하는 날이 온다.

이어서 유우가 초등학생이 되면 요우는 초등학교 3~4학년.

엄마나 아빠와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게 더 즐거워진다는 시절이다.

키노모토 사쿠라는 그 즈음에 식구들 식사를 준비하고 토모요가 만들어준 옷 입고 카드 잡으러 돌아다녔다.

 

그때가 되면 이미 나는 풀타임 근무와 출장, 무엇보다 이벤터 활동에 복귀해 있을 것이다.

출장도 자유롭게 가고, 평일낮엔 업무에 집중하고, 저녁에 아들과(?) 이벤터 활동으로 라이브 보러 다니고.

그거야말로 제2의 전성기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이 사회에서 육아와 일과 이벤터활동의 조화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이는 성장한다. 육아의 무게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변한다.

지금의 나는 아슬아슬하게 세 가지를 짊어진채 겨우겨우 걷고 있지만,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전성기를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고 있다.

 

연말 오다이바 불꽃놀이 (2025.12.06.)

 

바라보는 것은 대략 나이 50 전후부터일까.

먼가? 그렇지도 않다.

 

올해가 번개같이 지나갔듯 하루하루 살다 보면 정신차리고 보면 이미 50이 가까워져 있을 터.

인생 100세 시대.
육아에 할애하는 시간보다 비교도 못할 시간을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육아를 하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거기에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내년에 유우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타이밍부터 무언가를 새로 시도해 보려고 한다.

언젠가 그것을 여기서도 풀어낼 날이 오길 기대한다.

 

새천년을 맞이하던 2000년에서 25년 지나 2025년, 그리고 같은 시간이 지나면 2050년.

올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도 좋지만 한 십년 뒤에 스스로가 어떻게 있을지도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 스스로가 50이 되었을 때라든가.

 

나이드는 것에 대해 싫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정해진 미래.

틀림없이 그 날은 온다.

 

그렇다면 그 미래를 생각해보고 여러가지를 걸어보는 것도 어떠한가 싶다.

 

유우 첫돌 일출 (2025.12.18.)

이것으로 2025년의 리뷰를 마칩니다.

내년 2026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

러브라이브 제5시리즈, 하스노소라의 성지 카나자와 (2024.10.28.)

 

1984년에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에 유행하던 우유 광고 중에 "우리 아이는 특별해요",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 특별함에 반감을 품었다.

커서 반드시 평범하게 살리라 마음먹었다.

사람들 눈에 뜨이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게 살겠다.

단지 직장을 잡고 결혼해서 내 집에서 아이 둘 정도 두고 살리라.

 

84년생인 나의 어린 시절의 평범함의 이미지란 그런 것이었다.

 

5년만에 완주한 강동구 시사이드 하프 마라톤 (2024.11.24.)

 

수십년이 지나 40이 된 나는 목표한 평범함에 다다랐다.

결혼을 했다. 세츠나쨩의 집을 샀다. 첫째 요우를 두었다.

아내 아이미쨩은 둘째 유우를 올해 12월에 무사히 출산하였고, 나는 4인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어느 틈에 위 삶은 어릴 적에 생각한 평범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30대 남자의 비율은 절반을 넘긴 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출산율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아이 둘 가진 가정은 '레어'가 된 지 오래.

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다.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역시, 평범을 달성한 나는 행복한가, 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을 달성했는데 정작 결론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참 슬픈 일이다.

 

에노시마에서 바라본 후지산 (2024.12.06.)

 

한 마디로 '지금'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란,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삶에 다다르기 위해 포기한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까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를 포기하였으면 꽤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정점은 2017년~2019년도였을까.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현장 파견 근무에, 아웃 도어에, 매주 이벤터 활동과 뒤풀이.

 

나는 만나고 싶다거나 식사하고 싶다는 사람을 거절한 적이 잘 없어서..

그당시엔 주말에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서는 한두 달 전부터 예약을 잡아야 할 정도로 그냥 쉬는 날이 없었다.

차라리 저녁밥을 사줄 테니까 평일에 회사 근처 역으로 와라, 해서 식사를 사주며 이야기를 나눈 일도 많았던 듯하다.

 

미우라 아야코 [양치는 언덕]의 성지, 홋카이도 삿포로 히츠지가오카 (2024.7.8.)

 

그 모든 것에 제한을 걸기 시작한 것은 첫째 아들 요우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성지 니지가사키라는 거주지의 압도적인 현장 접근성, 강동구 아이돌봄 서비스의 예산 가결, 무엇보다 아이미쨩의 이해와 배려 등 몇 가지의 조건이 겹친 덕이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유우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고민 끝에 그마저도 정리에 들어갔다.

 

둘째 아들 유우의 탄생 (2024.12.18.)

 

일단 상사에게 상담을 하고 내년 10월까지의 장기육아휴직을 허락받아 일부터 그만두었다.

이벤터 활동은 물론이다.

내 인생 제1작 니지가사키의 내한 투어, 대천사 호리에 유이님의 라이브 투어마저도 미련없이 떠나보냈다.

 

그 대신 둘째를 안아든 뒤로부터는 전투적인 육아의 나날.

새벽 1시, 새벽 4시부터 시작하여 3시간마다 어김없이 분유를 유우에게 먹이며 토닥이면서, 주변 지인들이 이벤터 라이프를 즐기는 것을 트위터나 기타 매체로 접하면서 '참 즐겁겠구나'하고 생각하며, 베란다 밖의 빅사이트나 저 멀리 하네다 공항을 가끔 응시하고 있었다.

 

야카타부네 (2024.7.28.)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취미, 목표로 해왔던 이벤터 활동마저 내려놓고,

그리고 모든 에너지와 시간과 삶을 육아에 탈탈 갈아넣으며, 나는 무엇을 바라 여기까지 왔던가.

 

2018년에 적었던 한 해 회고에 그 답이 적혀 있었다.

 

"이 세상은 '아.직.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의 목숨, 인생,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능력을 걸 가치가 있다."

 - 2018년을 마무리짓는 에세이 (2018.12.27.)
https://mizuumiy.tistory.com/2355
 

2018년을 마무리짓는 에세이 - 2018년의 5가지 사건과 의지하는 이상과 하고 싶은 노력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Aqours의 성지 누마즈 카누키산香貫山 정상에서 저무는 석양을 향하여 "천지를 주재하는 나의 아버지여. 모든 진실을 지혜있고 슬기롭다 스스로 여기는 자들에게

mizuumiy.tistory.com

 

 

호시노 리조트 아타미 (2024.11.25)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이 마치 '성취'인마냥 인식되는 풍조에도 처음부터 딱히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벤터 활동 등 자신의 소중한 취미에 매진하고 즐거운 독신의 삶을 만끽하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언젠가의 나는 내 이벤터 활동과 일 등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갈아 넣어서라도 내가 생각하는 '과거 평범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기로 결심했었다. 거기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무슨 논리적 근거나 타당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믿었다.

 

그리고 신의 계시와, 대천사님의 명령을 받들어, 지금 이 순간 뜻하던 대로 되었을 뿐이다.

 

오다이바 드론 쇼 w/ 니지가사키학원스쿨아이돌동호회 콜라보 (2024.12.28.)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느냐.

현재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가진것도, 목표한 바도, 모든 것이 다르다.

대체로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이라는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돌이켜봐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행동해서 여기에 왔다,라는 납득함을 갖게 된다면, '뭐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까진 못해도 끄덕끄덕하면서 2024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내년 2025년에도 많은 분들과 덕담을 주고 받으며 가끔은 식사를 나누며 가끔은 현장에서 가끔은 자연을 바라보며 어울릴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대천사님의 스쿨 캘린도 12월과 까망냥이동맹 연말 연하장

 

 

처음 계시를 받아들고 명령을 이해하였던 시절, 꿈과 희망과 목표가 넘쳐흘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은 꿈, 희망, 목표란 것을 가졌던 때도 있었구나 하며 하루하루의 업무와 육아를 마칠 뿐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삶도 싫지 않다.

 

아마 나는 처음부터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불굴과 투지의 소년만화같은 인생이 아니라, 단지 하루하루 무난한 삶을 살아갈 뿐인 인생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을 듯하다.

 

그래 그게 뭐 어때서.

결혼한지 5년이 다 되어가도록 얀데레스러운 깊은 사랑을 가져주는 아내,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멀리서부터 아빠를 외치며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겨붙으며 잘 커가는 아들,

그리고 또하나 둘째아들.

 

가끔 베란다에 나가면 세츠나쨩이 바라보았던 풍경.

 

그걸로 됐지 아니한가.

 

 

그런 2024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5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

골든위크마다 오르는 치카네 동네 뒷산

 

 

아내 아이미쨩에게는 2명의 절친이 있다.

2020년에 아이미쨩이 나와 결혼하며 세명중 첫 결혼신고를 올렸고, 

나머지 두명 중 한 분이 2023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 장소는 이케부쿠로 선샤인 시티. 

거기 호텔은 ‘결혼식 하객 플랜’이란 것을 제공한다기에 예약을 했다.

바닷가에서 내륙(?)까지 왔다갔다 하기도 힘들고.

대부분의 호캉스(?)가 바닷가였기에 도심 내륙(?)에서 호캉스도 한번 해보고 싶었고.

 

나도 올해 6월 한국에서 열린 결혼식에 초청장을 받아 참여했다

 

여성의 결혼식 참여, 옆에서 보면 기합이 장난 아니다.

몇날 전부터 미용실에서 깔끔하게 머리를 컬러풀하게 정돈하고, 새로 산 고급진 옷을 입고, 결혼 반지를 두개씩 끼고, 비싼 목걸이를 걸고. 한껏 멋을 부려서 결혼식장으로 GO.

 

일단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이미쨩은 미리 예약한 호텔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세트를 새로 받은 후 그대로 식장으로 간다고 나갔다.

일본의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초청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기에,

아이미쨩을 보낸 후 나와 요우쨩은 자유시간이라 쓰고 독박육아타임을 얻었다.

 

 

십수년 전, 럭키스타(!)의 행사 후기에 댓글을 단 것을 계기로,

또한 유학생시절 여러번 신세진 분과 만나 다시 또 식사를 대접받고..

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토미카(자동차) 장난감까지 받았다. (그뒤로 매일밤 안고잔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져서 선샤인 시티를 이곳저곳 정처없이 걸었다.

육아를 하면 차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잘 없고, 아기의 생활습관에 맞춰 식사든 수면이든 목욕시간이든 어떻게든 그때까지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그러다 우연히 그 분수를 바라보기도 하고.

(선샤인 시티의 분수대는 데레애니 미오붐의 장소이기도. 아쿠아가 여기서 스쿠페스 행사를 갖기도 했다.)

 

밤 8시 근방…

요우쨩은 자야 할 시간.

매일 하던대로 씻기고, 책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수면의식을 마친 후 무난하게 재웠다.

 

 

요우쨩이 잠들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자유시간이다. 육아퇴근.

불은 켤 수 없고 방에서 나갈 수도 없으니 맛폰을 만지작거린다든가, 동영상을 보든가,

혹은 혼자 어두운 방안에서 콜라를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본다.

 

언제나 보던 바다의 풍경과는 다른 도심의 풍경.

 

이제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한 해를 쭉 돌이켜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3일에 한번, 나는 요우쨩과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일본의 흔한 타워맨션은 각층마다 쓰레기 스테이션이 설치되어 있고,

각층의 주민들이 쓰레기를 갖다 놓으면 업자가 1층으로 수거해가는 시스템이다.

 

집에서 나와 실내의 복도를 걸어 쓰레기 스테이션까지 가는 길.

내가 “저쪽!”하면 요우쨩도 “저쪼!”하고 안되는 한국어를 따라하며 졸졸 따라온다.

 

큰 쓰레기는 내가 던져넣지만, 리사이클 쓰레기는 요우쨩에게 직접 버리게 시킨다.

캔을 쥐어주고 캔박스를 가리키며 ‘뽀이!’하면 요우쨩도 ‘뽀이!’하고 캔을 박스에 던진다.

 

금방 쓰레기통을 비우고, 다시 복도를 반대편으로 집까지 돌며 의문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커브에 숨으면 내가 쫓아가서 얼굴을 들이밀면 요우쨩이 배시시 웃으며 꺄르르 웃고 도망치고, 내가 다시 숨으면 요우쨩이 쫓아와서 에헤헤 웃으며 나를 발견하고.

 

나는 그렇게 요우쨩과 함께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을 위해 지금껏 노력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해보면 황당한 소리에 불과하다.

러브히나와 만나 홋쨩의 명령을 받들어 일본어를 공부했다. 교환유학을 통해 러브히나의 상징교와 진검 승부를 벌였다. 우여곡절과 방황 끝에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이름 정도는 알려진 그럴싸한 대기업에 들어왔다. 북큐슈에서 4년을 살았다. 도쿄로 돌아왔다. 이벤터의 시대를 동료들과 개국했다. 주식에 자금을 꼴아박고 경영진에게 한국내한을 건의하고, 아이미쨩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요우쨩과 만나고,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탈탈 털어넣어 키우고.

 

그 수많은 시간들은 그야말로 대천사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분투한 천로역정의 나날들이었다.

그 결론이 ‘아들과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위해서’라..고?

이십대에 넌 아들과 쓰레기 버리러 다녀오는 날을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어,라고 하면 아마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

 

집에서 나와 쓰레기 스테이션까지 끽해야 수십미터.

다녀오는데 십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들고 복도를 걷고, 아들은 나를 졸졸 따라오고.

캔을 쥐어주며 “이건 캔이야, 캔! 그러니까 여기!” 하면서 통을 가리키면, 요우쨩이 “뽀이!”하고 던져넣는다.

나는 박수를 치며 칭찬하고.

돌아오는 길에 숨바꼭질을 조금 하다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케부에서 잠든 요우쨩을 곁눈길로 바라보며 또한 창밖의 도쿄야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의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바랐던 행복은,

내가 꿈꾸었던 행복은,

커리어적 성취를 이루는 것도 아니요,

남들보다 높은 자산과 비싼 부를 거머쥐는 것도 아닌,

단지 아들과 2-3일에 한번 쓰레기를 함께 버리러 다녀오는 그 짧디짧은 수십미터 십여분의 시간을 위해서.

 

그런데도 ‘그것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하고 납득이 갔다.

 

30대를 마감하고 내년으로 40을 맞이하는 내가 맞이한 결론.

이 시즌이 되면 엑쓰(..)에는 한 해를 돌이켜보며 스스로의 추억과 이루어낸 것들을 회고하는 분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역대 한해를 마무리하는 에세이가 그랬듯이.

 

그런데 2023년, 30대의 마지막 해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올해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해낸게 없는 것 같다.

이젠 꿈과 희망과 목표 같은 것은 사라지고, 단지 하루하루 업무를 해내고 육아를 마칠 뿐인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그것이 바로 올해의 전부일까.

 

그럼에도 허무하거나 아쉬움은 딱히 없다.

 

 ‘그것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물론 이것이 언제까지고 이어지진 않는다.

어차피 한 십년뒤 정도쯤 되면 요우쨩도 아빠보단 친구들이랑 노는게 더 좋을 나이가 곧 올 것이다.

그쯤 되면 지금은 중단한 해외출장, 저녁시간 등을 다시 활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한 십년...가족과 함께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전념한다.

 

그래,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