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0일, 태교여행 - 큐슈 카고시마 아마미섬의 저녁 해

 

"남편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듯 하라"

- 신약성서 에베소서 5장 25절

 

하나님, 아내가 얀데레라고는 안 했잖아요


‘2020년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님. 코로나 창궐 후, 삶이 멈추어버린 듯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룬 것은 보이지도 않는데 2년이란 시간만 지나가고 나이만 +2가 되어버린 감각. 그 상실감과 허무감을 무시라도 하듯, 2022년이 눈앞에 다가왔다.

 

저 너머, 레인보우브릿지 건너편 시바우라에서 3년간 살았다. 오다이바에 건너와 바다 건너를 볼 때마다 그 3년을 돌이켜보게 된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그 유명한 하루미 플래그 선수촌


도쿄는 2021년의 근 3사분기에 달하는 기간을 긴급사태 속에서 보냈다. 거듭되는 연장 속에 긴급사태는 긴급(웃음)사태가 되었다.

 

억지로 밀어붙인 올림픽은 하나의 촌극이었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이.

 

의료관계자를 갈아넣어 한국이나 일본이나 백신 접종은 8할까지 달성했으나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는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목을 스가쨩에서 키시쨩으로 갈아치운 후, 일본 특유의 쇄국과 우경화는 전보다 더 심해졌다.

몇 년의 인생을 날려버린 전세계의 유학생들의 원성과 분노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걸 보면서, 이젠 일본 취업이 아닌 일본 유학조차 여러 의미로 '끝났음'을 확신했다.

 

취업은 몰라도 유학에 대해선 제법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주변에도 권장했던 나로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쿠아 시즈오카 공연 원정 대신 유루캠 하마나 호수 사이클링

 

무사히 개최된 니지가사키 3rd 라이브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로 인해 아쿠아의 대부분의 단콘은 날아갔다. 시즈오카 아쿠아 공연 참여 기획은 그대로 유루캠 하마나 호수 사이클링 아웃도어 여행이 되어버렸다.

 

긴장 속에 무리해서라도 3rd 라이브 짭돔 개최를 밀어붙인 니지가사키는 겨우 한숨 돌렸다.

 

올림픽으로 방송 연기를 거듭하며 리엘라가 4대 세력으로 등판하고 무지막지한 스케줄의 퍼스트 라이브 투어를 지금도 달리는 중.

 

후반기에 Aqours와 니지가사키는 각 유닛별 라이브를 개최하였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킹쨩이 복귀하여, Aqours는 2021년 처음이자 마지막 9인 단콘을 치른다.

그리고 12월 31일, 럽라 3대세력연합의 카운트다운 라이브로 2021년을 막내릴 것이다.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 최북단, 히라쿠보곶(平久保埼) 등대


많은 것을 이미 얘기했지만, 나 또한 2021년에도 중대한 라이프 이벤트가 이어졌다. 

 

2월에 결혼식 대신 웨딩포토를 찍었다.

이시가키와 아마미섬으로 각기 신혼여행과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4월에는 입사 9년차를 맞아 중간 관리직으로 승진하였다. 

7월이 되고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거액을 들이부어 니자가사키 세츠나의 굿즈(부동산)를 샀다. (상세는 아래 포스팅)

이사가 끝나서 한숨 돌리자마자 아이미쨩은 첫째의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격리면제와 일상회복이 크로스하고 오미크론이 발병하기 직전이라는 훌륭한 타이밍에 한국을 다녀왔다. 

격리가 끝나자 12월도 절반이 지나, 어느 새 한 해가 끝날 시점이 되어 있었다.

 

세츠나집 앞마당(아리아케 가든) 옥상에서. 저 멀리 보이는 타워맨션들은 유우와 뽀무가 사는 시노노메 지역

 

한국에 가기 전, 만남 2주년을 맞아 세츠나집 앞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아이미쨩은 지난 시간을 술회했다.

“오빠랑 만난 뒤로는 라이프 이벤트가 번개같이 빨라서 정신 잡고 쫓아가기 바쁘네. 

처음 만나고, 사귀고, 프러포즈받고, 결혼하고, 직장 옮기고, 집사고, 아기 생기고.”
“우리 '처음' 만난지 내일로 2년 되는거 맞지?”
“응”
“...그래, 열심히 하자.”

 

2021년 2월 23일, 아야세 타카님 송별회

 

올해도 도쿄향우회의 도움으로 이곳저곳 캠핑, 그리고 오다이바 니지가사키 이곳저곳에서 바베큐를 가졌다. 

이젠 오타쿠들이 모여도 화두가 애니랑 게임보다는 라이프 이벤트에 대한 화제가 주를 이룬다. 

아직까지도 누군가가 불러준다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며,

서로 나누는 이야기에서도 시대가 흘렀음을 느낀다. 

이제는 내 트위터도 애니 이야기, 니지동 이야기보다도 아이미쨩이 아유무한테 질투해서 갈구는 일화에 하트가 더 많이 박힌다. (..) 

 

2021년 2월 25일, 신혼여행 - 오키나와 이시가키섬의 무지개


오래 알고 지내신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미즈우미님의 블로그를 보고 제가 일본 유학이라든가 취업이라든가 이런저런거 생각 했었는데요.

자신의 연애 이야기도 블로그에 적어 주셨더라면 제가 그걸 보고 미리 연애도 시도를 해봤을 텐데”

응?

그리고 내 신혼생활을 보면서 트위터의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감상들.


“역시 결혼은 좋은 것인가 회고하곤 합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대답하곤 한다.

 

"이 결혼생활을 나만 당하는 아니 만끽하는 것은 너무 억울 아니 아쉽다. 도쿄에 계신 동료들도 다들 이 헬 아니 생활을 함께 하면서 같은 악몽 아니 추억을 공유해야 한다."

 

2021년 2월 27일, 오키나와 이시가키 후사키 리조트 해안가


깊이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나를 보며 진짜로 결혼에 대해 해볼 만큼 적극적으로 노력해본 분도 있다.

연애나 결혼조차 원한다면 그만큼 고민하고 무언가 해봐야 하는 시대 - 그래서 그것을 ‘연애활동 / 결혼활동’이라 부르나 보다.

그러나 거기가 문제다.

 

몇 년째 나의 일관된 기조를 보아온 분들이라면 바로 느낌이 오겠으나, 노력과 결과에 대한 입장은 예나 다를바 없다. 

결혼한 사람은 남다른 노력을 한 거고, 솔로/싱글은 노력이 부족했냐면 당연히 아님. 

 

내 베필이 곁에 있다고 으스될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자만할 일도 아니다. 

단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할 따름. 얀데레의 사랑이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올해로 20여년의 역사를 마치고 영업을 마감한 오다이바 오에도온천이야기, 마지막 콜라보는 니지가사키


헬조선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노력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노력 끝에 무엇이 있는지 현실을 보여준 부모는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은 우리 부모들도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랐다.

 

"서울대만 들어가면! 정문에서 나올때, 서로 태우려고 막 자가용을 들이댄다!"

 

이거 어릴적에 친척들에게 진짜로 들은 말 맞다, 지금 시점에선 정신을 안들호로 보낸 또라이처럼 보이겠지만. 그렇다. 노력을 강요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실 정신을 안들호로 보낸 또라이에 불과했다.

 

필요한 스펙?점수? 뭐 그런 '라인'을 넘어서면 자동적으로 '이너 서클'에 들어가서 '무언가'가 주어진다,는 스토리에 지금까지도 많이 속아넘어갔고 앞으로도 많이 속아넘어갈 것 같다.

 

올해도 몇 번 누마즈에 갔다. 이렇게 자유롭게 누마즈에 갈 수 있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듯하다.

 

11월 한국에 가서 1년 반 만에 고향에 갔다. 고교시절 스승님과 초등학생때부터 알고 지낸 드문 절친과 3명이서 식사를 했다. 그는 5살짜리 아들을 두고 아내와 헤어져 돌싱이 되어 있었다.

 

이 나이쯤이 되면 나랑 동일한 항렬의 친척들 소식을 건너건너 듣게 된다. 고교생에 접어든 아우들의 소식은 좋은 이야기도 쓸쓸한 이야기도 여럿. 마음은 착한데 부모님의 기대에 못미쳐 갈등을 겪는 아우,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클리닉 상담을 받고 있는 아우 등.. 그런 친척 소식을 전해주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 아들은 물밖에 나가서도 속썩이지 않아줘서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다."

 

 

2021년 6월 5일, 도쿄와이드패스로 오른 니이가타 유자와 센노쿠라(仙ノ倉) 산에서 군마를 향하여 파노라마

 

결혼을 하면, 평범~하게 지내다가, 평범~하게 1~2년 후 아이가 생기고, 평범~하게 낳아서, 평범~하게 아이가 잘 커서, 꼭 명문대에 들어갈 필요는 없더라도 평범~하게 대학 가고, 평범~하게 취직해서, 그동안 가정은 행복이 넘치는....?

 

그거야말로 꿈 같은 소리가 아닐지.

평범의 기준이 많이 내려갔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평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공부를 잘 한다고 연애를 잘 할 리 없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육아를 잘 하는 것의 상관관계 물론 의문이다.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생활도 잘 한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까?

사회적 능력과 육아의 관계성은 어떠한가.

대기업 임원이 자식교육도 잘 한다,는 문장엔 어색함이 느껴진다.

 

결혼을 해서 해피하게 살았습니다,같은 엔딩은 동화 속에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잘 되었다고 앞으로도 잘 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먼 데도 아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2021년 대천사님께서 보내주신 팬클럽 회원 연하장

 

단지, 지금까지 무언가 잘 되었다고 스스로가 느낀다면...

그것이 내 노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나, 남들보다 내가 잘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권위있는 존재의 계시에 의한 위대하신 명령을 받들어 진심으로 믿은 결과라는 평소의 지론에 따르며.

 

내가 잘 되도록 도와준 손길,

함께 어울려준 사람들,

내게 앞으로 향할 힘을 준 성우와 아티스트와 행사,

그리고 이 나이가 되서까지 아직도 모임에 불러주고 만나주는 동료들,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과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조금이라도 뜻과 정성을 전할 수 있기를.

 

나에게는 아직 감사가 모자라다. 평생을 해도 충분하게 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 정도일 뿐이다.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한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와 같이...

 

내년은 2022년, 코로나 상황은 나아지려다 말았다.

여전히 아이미쨩은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결혼하고 아기까지 생겼음에도 우리 가족과 한 번도 만나보질 못했다.

 

내년 3월에 아들이 태어나고, 내가 아버지가 되면, 나의 생활도 많이 바뀔 듯.

아이미쨩은 1년 출산 및 육아 휴직을 예정하고 있고,

나는 유급으로 주어지는 출산육아휴직 외에는 재택을 병행하며 일을 계속할 방침이다.

세츠나쨩 굿즈가 하도 비싼 나머지 빚갚아야지

 

과연 나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지.

임출육 책을 여럿 읽으면서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이벤터 활동은 언제부터 재개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지만.

 

아이미쨩의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육아휴직 기간 중에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에 다녀와야 겠다는 데는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2022년 연말이 될지, 아니면 2023년 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에 뒤늦게나마 모두와 함께 만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5일, 도쿄향우회 송년회 @ 오다이바 니지가사키 다이버시티오다이바 옥상

 

84년생은 2022년이 30대의 마지막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러브라이브 시리즈 3대연합 카운트다운 라이브에 아이미쨩과 함께 참여하려 가기 위한 준비를 마치며.

 

올해의 수많은 추억에 감사를, 그리고 다가올 추억이야말로 다시 모두와 함께 하길 기대하며..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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