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칸 주인마님「지금와서 그 시절을 돌이켜 보니 어떤가요?」


손에 들고 있던 주인마님의 따님께서 손수 만드신 과자를 잠시 내려놓았다.


「이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나왔던 2002년 당시... 그때가 가장 희망이 넘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라갔고. 길거리에 태극기 들고 뛰어나가 박수치며 응원도 했고. 국가부도 IMF를 극복했다는 안도감이, 대학가에 아직 '낭만'이란 것이 존재했던 시절이었지요. 

집값이 아직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상고출신 인권변호사가 서울법대출신 대법관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이 되었고. 

무언가 열심히 하면 무언가가 이루어진다는 꿈이, 희망이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십 년 전이군요.」


료칸 주인마님이 스스로 커피콩을 볶아 드립해낸 커피를 찻잔에 더 부어주셨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십년간... 집값은 치솟았고, 직장은 줄었고, 광장에 촛불들고 목소리를 쳐도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끼얹는 물 뿐. 어찌저찌 이십대 십년을 보내고 삼십대가 된 지금, 운 좋게도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 일하고 있지만, 한국에 남겨진 사람들은 정말 심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야말로 십년동안, 한국에서 일본에서 양쪽 사회에서 고생이 많으셨군요..」


료칸 내부에 장식된 성우들의 사인, 피규어, 포스터 등을 둘러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나가노에 찾아와서 이 애니를 회상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그 당시의 희망, 꿈, 그리고 힘냈던 과거가 생각나거든요. 

지옥같았던 고3생활.. 그 이후로 시작된 더더욱 지옥같았던 외지에서의 생활이, 그 속에서도 힘내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게 생각나서.. 

지금은 희망도 열정도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옛날에 품었던 뜨거운 것들을 떠올리며,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2년 1월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부탁해요 티쳐/트윈즈」 시리즈의 성지. 일본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문화의 시작점.. 일본 나가노 키자키 호수의 료칸에서.. 


3년만에 재회한 료칸 주인마님과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나이가 들어 보니, 사회 나가서도, 안에 들어와서도, 별로 좋은 일도 없군요.」하고 주절거리며 손수 만들어주신 과자와 커피를 마시며 지역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의외로 가장 타당하게 삼십대의 혼자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 2013년 12월 15일, 페이스북에서 발췌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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