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로 아쿠아 퍼스트 라이브가 끝났다.
그리고 뮤즈가 파이널 라이브를 마친 것이 2016년 4월 1일. 근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당일 전체사진을 찍은 후, 무거운 마음으로 프리큐어 링클 스틱을 손에 쥔 채.. 마법사의 망토를 걸치고 담담하게 도쿄돔 현장을 바라보던 것도 어느새 1년 가까이 전의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란 하염없기도 유감스럽기도 야속하기도 하지.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분노와 슬픔을 호소하던 것도 이젠 추억의 한장면처럼 되어버렸다.
파이널 이후, 아쿠아의 진격 또한 거침없었다. 3개월 후 당해 7월부터 TV anime가 방송을 탔다. 3회에 걸쳐 상영회가 열렸다. 세계에 뷰잉으로 생중계되었다. 뜻밖게도 12월에는 내한까지 성사되었다. 그날 성우와 '접근전'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시카코(..)와 릿삐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행사를 치렀지만, 그와 별개로 아쿠아는 자신들의 행사를 계속해서 이루어나갔다. 최근의 퍼스트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엎어버리고 뮤즈와는 또다른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는데 성공했다.
그런 아쿠아 퍼스트가 끝나고, 아는 사람 몇 분께 인생상담(?)을 받았다.
지금 와서 아쿠아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운 사람이 있는 듯하다.
파이널 시절.. 한목소리로 죽을 때까지 포에버 뮤즈를 외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아쿠아를 파기 시작한다고.. '환승'이라든가 '오시헨'이라든가, 민감한 단어가 지난 1년 내내 트위터에서도 심심찮게 들렸다.
어디까지나 3자로서, 겉으로 보기에..
아쿠아를 안 파는 쪽이나 아쿠아를 파는 쪽이나,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거 때문에 뮤즈가 6th를 안 하고 있어!" 식의 희생양 찾기가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무릎건강이 좋지 않았던 난쨩이 욕을 들어처먹기까지 했다. 지금은 어이가 없겠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뮤즈의 구성원에 대해 이정도니, 당시 아쿠아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진 더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을 듯.
처음엔 오로지 뮤즈뿐이다 하던 무리 속에서.. 애니가 방영되고 행사가 계속되며 시치미 뚝 떼든 이실직고를 하든 누군가 '물밍아웃'을 하면.. 주변에선 아쉬울 수밖에. 그 감정 자체는 무리가 아니다.
물밍아웃을 한 쪽도 마찬가지. 아쿠아를 배척하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을 듯.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성우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 광고레벨이나 의상이라든가, 퍼스트를 요코아리서 세컨드를 돔에서 달리는 말도 안되는 규모(..)다보니 금수저도 틀린 말이 아니지만.. 금수저를 이어받았다손치더라도 본인들의 진정성 없이는 2일차의 그 장면은 나올 수가 없었다.
아쿠아를 파는 사람이나, 안 파는 사람이나.. 아쿠아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서로에 대한 감정이 격해지는 스스로에 대해 '내가 왜 이러지'싶더라도.. 그건 딱히 이상한게 아니다. 단 한 명의 주군에게 충성'은 조선의 오랜 유교적 덕목이었고.
그렇다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게 질문한 사람들이 털어놓았다.
"이제와서 아쿠아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어린 질문에 감사하지만,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생각과 마음이 제각각인데 '이것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 길을 따라 가면 100% 학실(?)합니다!'같은게 있을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ちゃんと自分で考えないと.
단지, 이 시점에서 기억나는게 있다.
TV anime 선샤인의 13화를 보고 반응이 영 좋지 않았던 당시의 여론.
쟤네들 라이브하다가 웬 뮤지컬을 하고 있냐고. 비웃는 글도 많이 있었다.
당시 선샤인 13화를 한국서 뷰잉으로 보고 하츠네섬에 남긴 글이 있다.
어차피 스쿨 아이돌 프로젝트 러브라이브는 2차원과 3차원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가치와 위력은 다른 어느 미디어도 아닌 바로 라이브 현장에서 발휘되겠지.
그러니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やらないか.
마지막 상영회에서 '저런 XXXXXX'하다가, 이번에 라이브 보고 감복한 사람도 있었다.
뮤즈에 대한 애정, 아쉬움, 슬픔이 아직 가슴속에 깊이 상처로 남아있는 마당에, 새 프로젝트로 러브라이브의 타이틀을 걸고 나온 아쿠아의 거짓없는 노력과 열정, 최선을 다한 모습에 감동이 겹쳐서 난감하다면..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기회되는대로 우선 현장으로.
생각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을 듯.
라이브 현장은 모든 것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
인터뷰는 기자가 들은 것을 정리한다.
기사나 뉴스는 편집자가 있다.
그러나 라이브 현장에서, 뷰잉장에서 우리는, 성우와 1:1로 마주보고 선다.
우리와 성우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가 간섭하거나 참견하는 것도 아니고 필터링을 거친 것도 아닌, 자기가 자기의 눈으로 성우 앞에 선 단독자로서 진실하게 마주보고. 그걸 자신의 인생에서 어떻게 받을지는 남한테 지시를 듣기보단 스스로의 철학(?)에 따르고.
무언가 주제넘게 말이 많았지만, 이번 라이브는 내게도 의미가 깊었다.
뮤즈 시절에 많은 것을 하고도 '러브라이버'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던 것은, 뮤즈에 대한 애정은 다카포가 절반이상.
뮤즈를 보는 눈에는, 다카포에서 프로성우생활을 시작한 성우들에 대한 응원과 애정이 상당히 깊이 녹아들어있었다.
그래서 뮤즈를 좋아하는 것인가 다카포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친 것인가 확실하지 않았다.
다카포와 뮤즈에 걸친 듯한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 들었다.
순수(?) 러브라이버라고는 말하기 껄끄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라이브를 보고 나서, '아.. 이제 러브라이버라고 스스로를 칭해도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쿠아라이버, 물라이버, 선샤이버(?)... 명칭은 아무래도 좋다.
I LOVE YOU. 나는 요우가 좋다. 잘 나가다가 요우찬가
여기서 어떤 사람이 "미즈우미님 이제 홋쨩이랑 다카포에서 요우랑 슈카슈로 환승했네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분이 나를 잘 모르는 분이구나,라 느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날보고 선샤인이 다카포를 넘었다느니, 홋쨩에서 슈카슈로 오시헨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잘 모르는 분들보다는, 나를 잘 아는 분들과 현장에서 한번더 어울리고 싶다, 고 생각하기도.
근 십여년전 2008년 10월에, 토호쿠대학으로 떠나며 하츠네섬과 다사홈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미소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지 마시고,
미소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즐겁고 웃고 놀자고 나 좋자고 돈과 시간 들여 취미생활하는건데.
취미생활갖고 끙끙거리고 고민하고 어렵게 고민하는 것도 잠시는 좋지만,
기회되는 대로 이 작품의 진가인 라이브에 한 번 더 가보는게 어떠할지 싶다.
そうだ、ライブ 行こう.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큐슈 산맥 종주 - 제철의 성지에 보내는 작별 인사 (2017/4/4) (2) | 2017.04.04 |
---|---|
삼십대의 혼자여행을 즐기는 타당한 방법 (0) | 2017.03.11 |
커뮤니케이션 능력 (0) | 2016.08.04 |
이벤터의 행방 (イベンターの行方) (0) | 2015.12.31 |
[칼럼] 러브라이브 파이널에 대한 생각 (4) | 201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