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이글루스에 「바닷가의 미소녀가 서 있는 해변 역 앞」이란 제목으로 블로그를 개설한 것도 벌써 9년 전의 일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 군입대 직전에 마리미테 붙들고 백합만세를 외치던 그때는 21세. 지금 30세가 되어 도쿄에서 석사논문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많은 사람이 지나갔고, 많은 사람과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과 친해졌고, 많은 사람과 헤어졌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저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혐오하는 지인들 사이에서 묘한 균형의 외다리줄을 타가며 변변한 악플 하나없이 주소 한 번 바꾸지 않고 한결같이 블로그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저 한결같은 것이 제 성격의 특징이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글루스에 개설한 하츠네섬을 계속 유지, 운영해 갈 생각이었습니다. 2011년까지는..




원래 2004년부터 시작된 하츠네섬은 다양한 지인들의 집합처(?)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설립초기에는 마리미테와 백합, 군 복무기간에는 무챰, 복학하며 안경회, 센다이에서 일본유학을 하면서도 하츠네섬은 1인 커뮤니티라는 특수한 공간이었습니다. 블로그에서 하는 친목질이란게 생각보다 재미도 있었고, 저도 거기에 편승해서 무리한 헛소리와 중2병스러운 트롤링을 남발하면서까지 포스팅을 적어갔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블로그에서 멀어지고 트위터 등 새로운 SNS로 넘어가도.. 편가르기와 줄세우기를 혐오하는 저였지만, 저도 모르게 친목질에 물들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게 옳지는 않다는 것은 내내 알고 있었습니다. 사정이 따라주지 못했지만, 오래 전부터 저는 온라인을 멀리하는 것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즉, 인터넷의 힘을 축소시키고 현실의 힘을 확장시키는 것이 기본 기조. 하츠네섬이라는 블로그는 어디까지나 현실에서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도쿄로 유학을 올 때 하츠네섬이 갖고 있던 제3영역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분질러서 각 커뮤니티에 이양시키려고 노력한 것도 그 이유..




2011년 도쿄로 유학을 오고 학내 애니동아리 SSA에 입단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진 친구=제1~2영역권, 지인=제3영역권으로 친구와 지인은 철저히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지요. 당연한게, 교회와 학교엔 2차원을 주제로 놀 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SSA에 입단하며, 비록 나이는 한참 어리더라도 같은 학교친구랑 2차원에서 노는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제3영역권의 활동력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초월했습니다. 당장 애니 감상목록만 봐도 한국시절의 몇 배로 뛰어올랐고. 애니 다운받아서 본다음 블로그나 트위터에 몇마디 감상쓰고 가끔 오프모임때 지식을 겨루는게 아닌, 친구들이랑 동아리방에 둘러앉아 함께 최신애니를 보며 즉각즉각 웃고 박수치고 떠들고 춤추며(!) 즐기는 재미. 한국에 있었을 때는 전혀 몰랐던 것들입니다.




다만, 역시 내가 무엇을 봤고, 어디에 갔고, 어떤 사진을 찍었고, 어떤 즐거움을 느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포트폴리오 정리는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예를들어 친구랑 다카포 성지순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이폰으로 성지순례 다녀온 사진을 얼른 찾아서 쭉 보여주는 것을 들 수 있지요. 현실에서 친구랑 놀 때 자료로 쓰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그것이 하츠네섬을 재시작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커뮤니티의 요소를 제거하고 철저히 데이터베이스 축적용으로만 사용하자고 결심했지요. 그렇게 정지시킨 이글루스 블로그를 재개했습니다.


...허나, 지금은 다소 후회하고 있습니다. 무려 8년간을 커뮤니티처럼 운영해놓고 지금와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고 하니 잘 될리가 없죠. 찾아오는 지인들도 리플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 당황한 사람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니 예전의 커뮤니티형 운영과 별다를 바 없고. 이거 예전이랑 다른게 뭐냐?고 물어도 할말없는 상황이 되더군요.


그래서, 2013년 새해를 맞이하여.. 30세도 되었고. 곧 사회에도 나가고. 여러가지가 바뀌는 시점이니까 이 참에 제3영역권도 크게 손질을 하자는 의미에서, 티스토리에서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관리를 할 생각입니다. 이글루스는 그저 페이크(..)로 두고. 글도 상당수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커뮤니티처럼 운영되어온 탓에 지금껏 하츠네섬에 연관되어온 지인들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가능성도 있고..




일단, 이곳 티스토리 하츠네섬에는 선별된 정보만 올릴 생각입니다. 저는 오타쿠나 오덕후가 아닌 「이벤터」이므로 행사 중심으로. 애니메이션/미소녀게임은 감상 목록, 만화나 음반 등은 소장 목록을 올리는 식으로. 아이덴티티(..)랄 수도 있는 성우 호리에 유이(堀江由衣)님과 미소녀게임 D.C.~다카포~ 시리즈에 대해서만큼은 총체적인 기록관리를 하렵니다.


지금의 티스토리 하츠네섬은 텅 빈 공간이지만, 현재 이글루스 블로그의 데이터 백업작업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애니감상목록, 한여름페스타 기록 등 이곳에 둘 만한 과거의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또 앞으로 일본에서 사회인으로 지내며 즐기게 될 수많은 2차원 행사와 친구들과의 어울림 후기가 하츠네섬을 가득 메울 날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13년 1월 12일, 오가사와라 제도에서 이글루스를 백업받으며, 水海유세현

Posted by 水海유세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