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한여름 페스타~참여름의 한페이지~ (2006/8/18~24)
・ 8/18 금 1일차 - 출국 및 가족 서비스
・ 8/19 토 2일차 - C3×HOBBY 2006
・ 8/20 일 3일차 - 2006 TBS anime Festa
・ 8/21 월 4일차 -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
・ 8/22 화 5일차 - 하라쥬쿠와 신쥬쿠
・ 8/24 목 7일차 - 일본과학박물관 및 귀국
오다이바의 정 가운데에는 센터프롬나드라고 하는 자연휴양지가 자리잡고 있다. 오다이바의 왼쪽과 오른쪽 섬을 연결하는 유명한 ‘꿈의 다리(夢のお橋)’를 건너 물과학관과 파나소닉센터를 돌아 나온다는 계획이다.
비너스포트와 메가웹, 대관람차가 소속해 있는 파레트 타운. 저기에 가면 놀기는 좋지. 일본의 오다이바에 오면 통상 관광 코스는 역시 공원과 쇼핑몰, 파레트 타운 등이지.. 나처럼 혼자서 과학관을 뒤지고 다니는 희한한 관광객(?)은 숫자가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을까. 실제로 아쿠아시티 오다이바 앞의 자유의 여신상 방면에서는 이곳저곳에서 한국어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과학관에서 한국인 만나기란 그야말로 여행 전체에서 한두명 있을까 말까했다.
삼림처럼 꾸며 놓은 센터프롬나드. 이 길을 쭉 따라가면 꿈의 다리가 나온다.
이른바 꿈의 다리.. 인데, 이게 어딜봐서 무엇 때문에 꿈의 다리란 명칭이 붙은 걸까. 널찍해서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지나가는 건 편하겠다. 잠시 구석에 앉아서, 아침에 샀던 메론빵을 꺼내 씹고, 물을 마셨다.
휴우, 아직 지치지는 않았지만 한여름의 대낮에 배낭을 메고 오다이바를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겠다’하고 생각한다. 여름 체질에다가 군에서 체력을 단련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대학생 시절부터 신어 온 이 튼튼한 구두도 말이지.
다리를 건너며 왼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 기묘한 시설물 아래로 길~다란 통로가 어디까지 가는지 모를 정도로 늘어져 있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도쿄도 물과학관이 나오는데... 어허, 개관시간이 끝났을 것 같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개관은 오후 5시까지. 지금 시간은 안타깝게도 5시 5분이다. 못 들어가는구나. 하기사 과학관은 뭔가 공적인 느낌이 들잖아. 대체로 낮 시간 동안에만 열 테니까, 너무 늦은 감도 들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헌데 다음은 대체 언제!?)
이렇게 되면 파나소닉센터에 가봐야지. 여기도 문 닫았으려나? 걸어가다 보니 회사원과 O.L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여 간다. 해변과 가까운 커다란 빌딩에서 일하는 기분도 꽤나 좋.. 겠지만 익숙해지면 무감각. 그들의 표정에서는 그런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도쿄패션타운과 더불어 NTT 빌딩이 보인다.
* 17:15-18:00 파나소닉센터
다행히도 아직 안 닫았군. 오후 6시에 폐관이니 후딱 돌고 나오자. 파나소닉센터는 그야말로 전시장이라고 할까. 음.. 그러니까 서울타워의 1층에 있는 삼성전시관과 비슷한 느낌? 최신첨단장비의 전시가 인상깊다. DMB폰과 LCD 대형 TV와 닌텐도 게임기와, 그리고....
하고 돌아보고 있는데 미스터리 페스티벌.. 이란 제목을 단 곳이 있다. 입장시간은 5시 30분까지라고 적혀 있다. 시계를 보니 5시 25분.. 그래도 정리하는 것 같으니 다음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もし、よろしければ、ぜひ、このミステリのゲームに参加しませんか。」
...아가씨, 그런 애절한(?) 표정으로 ‘もし、よろしければ、ぜひ’ 같은 단어를 써 가며 권유하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
제목은 ‘곰인형 살인사건’이라고 적혀 있다. 사건현장이 꾸며져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관련 과학조사를 벌일 수 있도록 나타나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 해 봤던 실험들.. 예를 들자면 녹말가루의 요오드반응이라든지, 크로마토그래피, 지문 조사, 리트머스시험지 테스트, 곰인형의 냄새를 맡아 본다든지.. 일본어로 쓰여져 있을 뿐이지 어렵지는 않았다. 남자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해봤다.
유세현「저는 ‘하루’가 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태프「음, 과연..」
유세현「(...뭐에 대한 ‘과연’이실까나.)」
스태프「한국에서 오셨습니까?」
유세현「......!!!?!?!?!??!?!??」
스태프「^^」
유세현「어,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스태프「네, 말투로 짐작했습니다.」
유세현「그렇습니까. 이곳에는 여행 삼아서 일주일 전쯤 왔습니다. 하하, 일본은 좋은 곳이더군요.」
스태프「고맙습니다^^; 자, 여기 전체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유인물이고, 이쪽으로 접속하시면 메일 매거진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유세현「네, 저도 화공학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걸 참 좋아합니다.」
스태프「그렇군요. 일본에서 부디 좋은 여행되시길 바라며...(거수경례)」
유세현「(거수경례)」
...그 스태프, 한국 남자가 군대에 갔다 오는 걸 알고 있었을까. 거수경례를 해줘서 참 고마웠다. 친절한 설명과 담소에 감사를 표하며 나왔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신형 가전제품에 관한 코너. 식기세척기라든지, 견고하게 만들어진 노트북 등, 재미있는 물건이 많았다. 음.. 시간을 좀 많이 잡아먹었군. 이미 폐관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슬슬 나가보자.
내부촬영은 금지하고 있었는지라, 기념촬영이 가능한 곳은 이곳 한 곳뿐. 슈퍼마리오.
* 18:00-19:00 파나소닉센터→아리아케콜로시움→테니스의숲
파나소닉센터를 나와 다시 묵묵히 걷는다. 유리카모메 역이 하나 보인다. 아리아케역인가.
역사가 좀 붉게 보인다.. 하고 생각해서 서쪽을 바라보니 2006년 8월 23일의 저녁해가 넘어가고 있다.
아리아케콜로세움 곁으로 저무는 해. 좋은 세월 잘 보내고, 내일은 내일의 아침 해가 떠오르겠지.
유리카모메를 따라 다리를 건넌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리아케콜로세움. 오늘은 아무 경기도 없는 듯, 조용하다. 황량한 바람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반대편의 후지TV나 다이바역 근방은 사람으로 넘쳐날 텐데, 여기는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대조의 미학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막말로 하자면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아리아케 테니스의 숲 초입.
들어가 보니 위쪽 코트는 쓰지 않고, 아래쪽 코트로는 저녁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고. TVA 테니스의 왕자님 덕택에 나도 대학생 시절 2학기에는 테니스를 쳤다. 학내 테니스 클럽에도 소속해 있었고. 지금 치면 포핸드나 제대로 나갈지 모르겠다.
다시 쭉쭉 걸어가 볼까. 벌써 시간이 6시 40분을 넘어가고 있다. 7시까지 여신상 앞에서 누님과 재합류하기로 했으니,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테니스의 숲을 빠져나와 도로를 걸어 꿈의 다리 위쪽에 있는 다른 다리를 건넌다. 이미 사방은 어둑하다. 해 지면 그야말로 어두워지는 건 금방이라니까.
다리를 건너며 아래를 보니, 대관람차를 비롯한 야경이 멋져서 한판 넣고. 그리고 오다이바해상공원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
* 18:45 願いが叶う場所, 오다이바해상공원
큰 지도에서 참 여름의 한 페이지 보기
이곳은 오다이바해상공원. 완전히 깜깜해진 가운데, 이곳저곳에 편히 앉아서 쉬고 있는 일본인 휴양객들. 연인들이 많이 보이고, 가족단위의 휴양객도 많이 보인다. 그 사이를 걸어, 모래사장을 밟고, 바닷가에 섰다.
아름다운 야경으로 가득한 도쿄, 귀에서는 코토리G3가 연주하는 여름의 그림자(夏影)의 보컬 버전이 흐르고.. 눈앞에서는 어린이들이 바지와 스커트를 걷고 바닷속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평화롭게 바닷가에서 휴가를 만끽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 끼여서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묵묵히 도쿄 쪽을 쳐다보았다. 한여름의 한페이지, 언제나 혼자서, 언제나 걷고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함께 하지 않은 고독함 속에서 차분한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대도시의 빌딩과 다리에 비친 야경이 바닷물에 비쳐 흔들리고, 습기 찬 바람이 잔잔히 불어와 몸을 감싸 도는 가운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 위에 세워진 작은 천국이란 것이다.
2006년 5~7월경...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 즈음한 시기는 제3영역권에 있어 길이 남을 흑역사였다. 그 사태로 인하여 지인의 절반을 잃었다. 가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넋나간 듯 먼 산만 쳐다보다가 괴로움에 눈물만 흘렀다. 갇혀 있던 본인이 뭘 할 수 있었던 상황도 아니고.
어찌저찌 사태가 수습된 것은 제대할 무렵. 그리고 그것은 겨우 3주 전..의 일이다. 남아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2년 반에 걸친 길고도 긴 복무의 공백은 머리를 텅 비게 하였다. 파괴된 인간관계와 잃어버린 인연. 그리고 병역의 의무라는 남자의 인생에서 커다란 짐을 내려놓았다는 안도감과 공허함이 감싸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까..
여름의 그림자의 보컬곡이 클라이막스에 이를 때, 마음이 백지와도 같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때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환상(Vision)을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일본 진출의 꿈을 갖고, 향후 5년에 걸친 대여행으로 이어져, 이십대에 이룩한 최고의 금자탑 2010 한여름 페스타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작이 바로 이 때 바라본 비전이었다. 지금도 오다이바해상공원을 「願いが叶う場所(소원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특별한 명칭으로 부르며,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찾아가서 하나님과 1:1의 명상의 시간을 갖고 있다.
미소 짓고 있는 아이들의
手には蟲籠 あの思い出
손에는 채집통 그 추억들...
超えてゆく遙か夢も
지나가버리는 아득한 꿈도
流る川のほとりを
흘러가는 강가를
いつもひとりで いつも步いた
언제나 혼자서 언제나 걸었어요
今は違う途を...
지금과는 다른 길을....
遠くなる遙か夏よ
멀어져버린 아득한 여름이여
流る川の町で
흐르는 강의 마을에서
僕ら遊んだ 僕ら生きてた
우리는 놀았고 우리는 살아왔어요
今も覺えてる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Key, Pretty Girl Game AIR Image Theme, 「夏影」 Vocal Version
* 19:05-20:00 아쿠아시티 오다이바→오에도 온천 모노가타리
아쿠아시티 오다이바 건물에서 누님 일행과 만났다. 누님께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고 하니, 그것을 타고 오에도 온천으로 가자. 먼저 도쿄 텔레포트역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오에도 온천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어디를 가봤냐는 누님의 질문에 지도를 펴들고 돌아본 구간을 설명해 드리자 누님과 H의 입이 동시에 딱 벌어졌다.
홍차 : 아니, 여기를 정말 다 걸어서 돌았단 말야? 겨우 여섯 시간 내에!?
유세현 : 네, 넉넉히 관람도 하고 말이죠. 물 과학관은 폐관을 해서 못 들어갔지만..
H : 다리 안아파요?
유세현 : 괜찮아. 별로 지친 것도 아니고. 누님은 어디를 가봤어요?
홍차 : 우리는 아쿠아시티에서만 돌았거든. 후지TV나 가보고.. 낮에 피곤해서 자다가.
유세현 : 좀 모자라지 않아요? 오다이바까지나 왔는데.
홍차 : 그러게. 너는 정말 볼거는 다 봤네.
버스를 타고 오에도 온천으로 향하는 길..
유세현 : 제가 여기를 갔고, 이 길을 따라서...
홍차 : 너 정말 여기를 전부 걸어다녔어? 다리 괜찮니? 피곤하지 않아?
유세현 : 괜찮아요. 별로 힘들지도 않았고.
홍차 : (H를 보고) 완전히 철인 한 명 탄생인데..
유세현 : 그러니까 누님도 운동을 좀 하시면 되잖아요. 저는 군에 있을 때, 하루에 5km씩 뛰어다니고, 풋샵하고, 역기 들고.. 그랬어요. 그 덕택에 지금 체력으로 버티고 있잖아요. 자, 누님도 내일부터 5km씩 뛰는 겁니다!
홍차 : 너나 실컷 뛰어.
H : ^^;;
잡담하자 금방 오에도 온천 모노가타리에 도착이다.
* 20:00- 오에도 온천 이야기
오다이바에서 온천욕을 하자면 역시 오에도온천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여기서 ‘이야기’란 진짜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온천 제목 자체가 「오에도온천이야기(大江戸温泉物語)」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이하 명칭은 오에도 온천으로 통일.
오에도 온천에 들어가면 우선 신발을 넣고, 그 신발장열쇠는 나올 때까지 잘 간수해야 한다. 다음에는 프론트에서 손목 밴드를 받은 뒤 유카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받고,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것.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장을 열고, 배낭을 보관하고, 팬티 한 장 제외하고는 전부 벗어 처넣고, 유카타를 입는다.
음.. 헌데 이 오비(띠)는 어떻게 두르는 거지? 나는 이엽! 엽! 하면서 대충 둘러 콱 묶어버렸다.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묶었는지 모르겠지만, 배운 적도 없는걸 어쩌라고. 내부에서 음식계산은 이 손목밴드로 하니까, 지갑도 옷장에 넣은 채로 파워샷 에리스만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에도 거리의 재현...
유카타를 입은 연인과 가족과 어린이들이 돌아다닌다. 여자애들의 유카타 모습이 거의 판타지 수준으로 귀엽고 예쁘다.
[어째 일본에 와서 로리콘 속성에 눈을 뜬 것 같은데?] 착각이야, 신경쓰지마.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자니 나보다 한 10분 늦게 누님과 H가 나온다. 역시 여자분들, 탈의속도에선 남자를 못 따라오는군. 이것저것 속옷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저녁을 아직 먹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가에서 밥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나는 우동정식, 누님과 H는 각기 다른 것을 시켜서 먹고..
유카타를 입고 걷자니 몸이 좀 불편하다. 뭐가 자꾸 다리에 걸려. 왜 기모노 입은 아가씨들이 촘촘히 걷나 했더니 이런 이유였군. 퍽! 퍽! 하고 걷어차다시피 하자니, 옴마나. 유카타가 거의 벗겨졌잖아.(...) 황급히 유카타를 정돈하고,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왼손으로 자락을 슬쩍 잡아들자 이젠 걸리지 않는다. 음, 이걸로 됐군...
하고 걷고 있는데 누님이 나를 쳐다보더니 하는 말,
홍차「야, 이 변태 자식아. 당장 그 옷자락 안 놔!?」
.....
유세현 : 온천욕을 하러 가지요. 지금이 9시니까, 10시까지?
홍차 : 아냐, 10시 반까지.
유세현 : 네, 알겠습니다 누님. 그럼 10시 반에 이 앞에서 뵙도록 할게요.
홍차 : 바이~!
흔히 일본 미소녀게임과 애니에서 하는 농담에,
“어서오세요! 목욕을 먼저 하실래요? 아니면 식사를 먼저 하실래요?”
“아니, 먹는 것은 너다~!(와락)”
“꺄아~♡”
...이런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는 오야지개그(...)가 종종 등장한다. 위 대사는 쿄토 애니에서 10월 애니화 방영 예정인 Key의 미소녀게임 ‘Kanon’에서 유이치와 사유리가 나눈 대화를 생각나는 대로 갖다 붙인 것.
그래서.. 과학적으로는 목욕이 먼저냐, 식사가 먼저냐, 여자 덮치기가 먼저냐(...) 라는 문제는 오랫동안 나의 수수께끼였다. 식사 전후에는 목욕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 중에서도 기본에 속하는 것이니 연속일 리가 없고. 그럼 밥을 먹고 연인과 지낸 다음 목욕을 하는 것이 순서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에도 온천의 광고판에 보니 이런 얘기가 있다.
“목욕을 먼저 하고, 마사지를 받은 다음, 소화가 활발할 때 식사를 하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아주 좋은 것을 배웠다. 내가 목욕을 제안한 것은, 하루종일 오다이바를 노닥거렸으니 피곤할 때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으니까... 였지만 말야.
혹시나 지금의 상황이 미소녀게임의 한 장면이었다면 온천 여행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런 대사 하나쯤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만, 간략하게 목례를 나누고, 남탕을 향했다. 손목밴드를 보여주자 큰 수건과 작은 수건을 한개씩 건네준다. 큰 수건은 유카타와 함께 옷장에 넣고, 작은 수건을 들고 욕탕으로.
역시 고급 온천탕은 골라 들어가는 재미가. 온천탕에 들어가서 몸을 쭉~! 빼고 있자니 온 몸의 피로가 온천물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듯. 목욕한 게 얼마만이지? 제대하고 처음인 것 같다. 샤워는 매일 했지만.
물속에서 물포(?)를 쏴서 근육에 압박을 주는 황금탕, 마시지 말라고 주의문구가 적혀 있는(..) 일반탕, 미세한 기포 같은 것을 발생시켜서 전체적으로 희멀건(?) 효과를 내고 있는 구석탕(?), 마지막으로 사우나. 가만히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각잡고(?) 정신집중. 음음.. 간만에 백합망상을 해보자. (상상 내용은 생략) 한 10분쯤 되어 밖으로 나갔는데, 나가며 뒤를 돌아보니 내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들 몇 명이 각을 잡고 있다.
노천탕으로 나가서 몸을 뉘이고 한여름의 밤하늘을 쳐다본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휙~휙 지나간다. 내일 이쯤에 저 비행기에 탄 사람의 한 명이 되어 있겠지. 한여름의 밤바람이 고요하게 불어오고, 온천물이 찰랑인다. 다시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은 고독한 자유와 단순한 행복.. 사색 상태에 접어들자 자연스럽게 감상에 젖는다.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지낸 그간의 5박 6일의 시간들. 내일로 6박 7일의 마지막 날을 맞는다. 정말 즐거웠다. 이 정도면 성공한 여행이라고 되새겨도 될 듯. 누군가 그랬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국경을 한 번 넘어 보는 것만 하여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이것이 첫 번째 발걸음이다. 이번 여행은 내일로 끝나지만, 나의 세계를 향한 발걸음은 끝이 아냐. 시작이다.
실내로 들어와 머리를 감고, 몸을 바디샴푸로 휘감고, 온천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그 바가지에다 물 한가득 담아서 머리 위에서부터 붓기를 거듭했다. 유카타를 입고, 오비를 잡아매고, 커피우유를 160엔에 한 병 샀다.
10시 30분이 되었는데도 누님이 나오지 않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면서 여자탕 앞의 의자에 앉아 꾸벅거리며 졸고 있으려니
홍차 : 아음~ 세현아. 미안.. 간만에 목욕을 했더니 빈혈이..
유세현 : .....^^;;;
홍차 : 머리 말리고 나올게. 기다려..
유세현 : 알겠습니다, 누님.
해서, 왜 머리를 말리는데만도 20분이나 필요한 것인가!?
11시가 되어 재합류, 밖으로 나와 보니 가게문을 거의 정리하고 있다. 뛰어 들어가서 화과자를 사들고 나왔다. 탁자에 앉아서 풀어놓고.. 엽차는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화과자에는 역시 차가 어울리지. 화과자는 단팥이 들어 있어서 굉장히 달았다.
담소를 나누다가,
유세현 : 내일은 7시쯤에 일어나시죠?
홍차 : 난 못일어나! 어떻게 7시에 일어나서 걸어다닐 수 있어!?
유세현 : 음, 그럼 먼저 일어나서 우에노에 가서 과학박물관 보고, 스가모로 갈게요. 오후 2시 30분에 마지막으로 점심 먹고, 가도록 하죠.
홍차 : 그럼 나도 내일 기숙사에서 짐 갖고 2시 반까지 스가모로 올게.
평화롭고 아늑한 시간이 흘러간다.
탕으로 들어가는 곳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곳이 있는데, 쉼터.. 간단하게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곳. 쇼파 오른쪽에는 작은 액정TV가 달려 있어서 TV 시청도 가능. 스피커는 쇼파 바로 뒤에 붙어서 소리가 작게 나오는 듯.
유세현 : 안녕히 주무세요, 누님.
홍차 : 잘 자라.
H : (꾸벅)
유세현 : (꾸벅)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시계를 보니 하루가 지나 8월 24일 0시 30분이었다.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약간 아쉬움. 액정TV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적당히 볼 만한 프로가 없어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루종일 오다이바를 돌아다닌 탓일까, 이내 피로와 잠이 쏟아져 의식이 가물가물해진다.
....
자는 데 귓가에 아련히 들리는 소리,
「祈り續けていて良いですか 信じ續けていて良いですか 絶望の森に差しこむ光よ」
무의식중에 눈을 번쩍 뜨고 액정TV 정면을 향하고 재빨리 전원을 넣고 다다다다 눌러 채널을 찾아서 끝까지 보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애니송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시청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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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한여름 페스타「참 여름의 한 페이지」 (2006.08.18~24.)
오가사와라 제도 아침 해의 산 (2003-2006) ⓒ 水海 唯Se-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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