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사와라 삼권분립의 원칙」과 아호 미즈우미(水海)의 기원

누나라고 부르는 유일한 성우 [각주:1] 





・이름 : 이노우에 키쿠코 (井上喜久子)

・생일 : 1964년 9월 25일

・담당 최애캐 : 

『ああっ女神さまっ』 베르단디

『おねがい☆ティーチャー』 카자미 미즈호


오랜 팬이었던 성우를 이래저래 돌이켜보는 에세이 같은 이야기.

첫 번째는 누구로 할까 고민하다가,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로 시작하려 한다.



1. 첫 만남 (현장)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를 처음으로 뵌 것은, 2006년 8월의 「TBS 아니메 페스타 2006」

출연작은 당시 TV anime로 방영되었던 『ああっ女神さまっ』


TBS 아니메 페스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 현지에서 참여한, 이벤터 활동의 원점과도 같은 행사.

( ※ 참고 포스팅 : TBS 아니메 페스타 2006 )


첫 국외 여행, 첫 일본 원정, 첫 이벤트, 첫 만남..

그 많은 흥분과 감격의 순간이 등판하는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를 바라보며 함께하였다.


"이노우에 키쿠코, 17세입니다!"

"어이 어이!"


그 뒤로는 쌍안경에 눈을 갖다 들이대고 누나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사하고 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실사판 베르단디 여신님의 현신을 보는 듯.


이시다 요코님의 오프닝곡 라이브를 들으며, 펜라이트나 사이리움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두손을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심장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2. 누나?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는 원래 2자매 중 여동생이라고.

그래서 '언니'라 불리는 것에 동경심이 있었다든가.


『란마1/2』을 레코딩하며 장녀 텐도 카스미(주하나) 역을 맡았을때 주변 성우들이 "카스미 언니! 카스미 누나!"하고 부르던 것이 그대로 안사람에게까지 정착되어 다들 '키쿠코 언니/누나'라 불렀고. 이것이 팬덤 공식 명칭으로 확대.


따라서 2017년 즈음부터 한국에 퍼진 성우를 누나라 부르는 시류와는 달리,

진짜로 '언니/누나(お姉ちゃん)'가 팬덤의 공식 명칭인 비범한 분이시다.


이에 본인도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라고 줄곧 부르고 있다. 

혹은 17세교 교주님.



3. 첫 만남 (작품)




만난 것은 2006년이라 해도,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중1이던 1997년(!)까지 내려감.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보통 베르단디 여신님으로 접했다지만,

『괴도 세인트 테일 (천사소녀 네티)』이야말로 이분의 이름과 목소리를 인식한 첫 만남이었다.


애니 자체는 KBS 더빙판으로 보았으나, PC통신 동아리에서 아는 사람이 들려준 미모리 세이라의 캐릭터송을 '사람 목소리가 이리도 좋을 수가 있나..'며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나 애니를 KBS에서 보았기에 미모리 세이라보다는 '세인트'라는 이름과 한국 성우 이현선님의 연기로 더욱 인식하고 있다. (이현선님은 2년 후 『카드캡터 체리』 신지수(토모요)를 맡으셨다.)



4. 베르단디 여신님



그리고 2000년 고1..

Original Video Anime 『ああっ女神さまっ』을 원작으로 보았다.[각주:2] [각주:3]


원판을 본 순간 베르단디 여신님에 강렬히 빠져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의 틀을 뛰어넘어 성우 이노우에 키쿠코님 본인의 앨범을 수집하며 성우 앨범을 듣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성우팬'(?)으로서의 활동 시작점이었다.


내 인생 불멸의 No.1 성우 호리에 유이님조차 당대의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한테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


당시에 '아미고동'이라 불렀던 천리안 여신님 동아리에서 다소 들락날락거렸고.

하츠네섬 제3대 프로젝트이기도 한, 「여신정보학개론」이란 자료집도 당시에 만들었던 듯.



5. 영향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여성은 30대를 좋아했다" (..) 고 말하는 근거이기도 함.


개인적으로 『ああっ女神さまっ』이랑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가 가장 크게 미친 영향은,

대외적으로는 아호 水海, 대내적으로는 '오가사와라 삼권분립의 원칙'을 제정한 계기였다.


중학생 내내 중2병(?)에 걸려, 무엇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자답으로 고민하던 手探り状態에서, 이 만남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스스로가 목표하여야 할 것을 깨닫고, "종교-전공-취미 3대 영역은 삶 속에 조화로운 견제를 이룬다"는 인생의 시스템을 17세의 나이에 체계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봄에, 일찍부터 인생의 목표와 삼권분립의 시스템이 굳건히 선 덕에,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목표에 걸어갈 수 있었으니, 청소년기의 삶의 기틀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 할 수 있을 듯.


대외적으로는 역시 아호와 아이디.

본명보다도 더욱 유명한 mizuumiy라는 아이디와 水海라는 아호는, 다름아닌 베르단디 여신님과 성우 키쿠코 누나가 기원이다.

( ※ 참고 포스팅 : 水海유세현 (아사히) 의 기원 )



6. 그 후 


여신님 이후 내게 가장 흥했던 키쿠코 누나의 작품이라면,

성지순례의 상징과도 같은, 팀 Please!의 『おねがい☆ティーチャー』 카자미 미즈호,려나.


나가노 키자키 호수에는 성지여행으로 3번 정도 갔었다.


성지여행자들의 교류를 돕기도 하고, 숙박자가 나혼자일 때는 1:1로 평온하게 토크를 나누기도 했던,

알펜하임산정 료칸 주인마님과 성호정의 주인님은 아직 잘 계시려나..


( ※ 참고 포스팅 : 삼십대의 혼자여행을 즐기는 타당한 방법 )


2009년 8월에 코미켓 3일차 끝난 후 와일드스트로베리,라는 성우유닛(?)으로 가볍게 노래하시는걸 보러 갔었고.


2011년, 일본에 건너와서는 여신님 ODA 발매기념 토크쇼를 보러 갔었다.


그 뒤 미스 모노크롬 작중에서 KIKUKO라는 아이돌(?)로 활동하고 호리에 유이님과 이벤트 토크쇼로 뵈온 것이 현재로선 마지막.


현황은 본인도 아닌, 따님의 트위터로 종종 체크하고 있다.





따님 이노우에 호노카양과의 투샷. 

애칭이 홋쨩(...)이라 하데.. 진짜로 길잃어서 헤매다 지나가던 홋쨩과 만난 적도 있다고.


미인 어머니를 둔 덕인지 그 따님도 매우 미인이시다.


1998년에 출산휴가(?) 들어가시느라 여신님 작은 것은 편리해, 에서 잠시 다른 성우가 베르단디를 맡은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따님께서 어엿히 성장하여 같은 성우가 되실 줄이야..


나름대로 일찍 결혼하여, 따님을 낳으시고, 지금까지도 나름의 성우활동을 하시고.

어떤 의미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고 즐겁게 하고 계신 삶의 진수를 보여주는 분이라,

그런 느낌을 항시 갖는다.



내가 만약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필시 이 분을 내 삶의 모델로 삼았으리라..


남자로 태어나서 삶의 모델이 요시노 사쿠라인 것도 어떠한가 싶긴 하다만



※ 이 토크는 순전히 개인적 감상에 의한 것입니다.



  1. 진짜로 '누나(お姉ちゃん)'가 팬덤 공식 호칭이다. 상세는 후술. [본문으로]
  2. 동세대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셈으로,보통은 1992년에 출시된 여신님을 초기단계에 접했다고들. [본문으로]
  3. 여신님 자체는 1999년에 투니버스에서 한국더빙판으로 방영한걸 보았는데 그땐 아무 느낌(?)이 없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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