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곳을 다녔다는 사실은, 평범한 시골 소년이 한 명의 성우를 진심으로 사모하여 어디까지 이룩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인생을 걸고 증명한 이십대 최고의 성공이자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私がここの学生であったことは、外国の平凡な田舎少年が1人の声優に憧れてどこまで願いを叶えられるかを, 自分の人生をかけて証明した20代最高の成功と想い出として永遠に残るはずです。)"

 - 2013년 3월, 대학원을 졸업하며




2010年の暑い真夏、私は東大に合格の栄光を味わいました。当時、私の胸に抱いていたのは「黒猫と月気球をめぐる冒険」、始めて買った堀江由衣さまの円盤でした。10年にかけた思いと夢が叶う瞬間。外国の田舎の少年に過ぎなかった私とほっちゃんの出会いは意外と長いでしたわ。

2010년의 뜨거운 한여름, 저는 대학원 합격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당시 품에 안겨 있었던 것은 「검은 고양이와 달기구를 향한 모험(黒猫と月気球をめぐる冒険)」,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호리에 유이님의 음반이었습니다. 10년에 걸친 꿈이 이루어진 그 순간.. 돌이켜보면, 외국의 시골소년에 불과한 저와 홋쨩의 만남은 의외로 긴 세월이었습니다.



私が堀江由衣さまの名前を知ったのは、今から約13年前、世紀末でもの騒がしかった1999年の冬でした。韓国版「NEW TYPE」の記事に載せられたTVアニメ「ToHeart」の紹介ページに「マルチの声優:호리에 유이(堀江由衣)」がありました。まだ「ToHeart」を見なかったので、ただそういう名前の声優があるんだな、と思っただけです。

제가 호리에 유이님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세기말로 어수선한 1999년의 겨울이었습니다. 한국판 「NEW TYPE」의 기사에 실려 있던 TV 애니 「ToHeart」의 소개 페이지에 「멀티의 성우:호리에 유이(堀江由衣)」가 있었습니다. 아직 「ToHeart」를 시청하지는 않았기에, 그땐 그저 그런 이름의 성우가 있구나, 하고 생각한 것 뿐이었습니다.


さて、ほっちゃんのファンになったのは「ラブひな」の成瀬川なるから。即ち、2000年ですね。当時は高校1年生だった私がなるの元気な声に憧れファンになりました。続いて大阪で行われたラブひなイベントの動画を見た瞬間、言葉通り、目の前に天使が舞い降りました。従って、ほっちゃんファン暦は2000年から数えています。今は13年目になりますわ。ちなみに、「ラブひな」は「러브 인 러브(ラブinラブ)」というタイトルで韓国にも放送・販売されました。私の実家にも漫画全巻があります。

声優研究会みたいなネット同好会にも入会して、少しながら活動もやりました。知り合いに頼んで購入したほっちゃんの第2番目のアルバム「黒猫と月気球をめぐる冒険」が、私の手に入った初めてのほっちゃんの円盤でございます。

 홋쨩의 팬이 된 것은 「러브히나」의 나루세가와 나루부터. 즉, 2000년입니다. 당시 고교1년생이었던 저는 나루의 기운찬 목소리를 동경하고 팬이 되었습니다. 오사카에서 열렸다는 러브히나 이벤트의 영상을 본 순간, 말 그대로 눈 앞에 천사가 춤추며 내려온 느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홋쨩팬력은 2000년부터 계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13년째가 되는군요. 참고로 「러브히나」는 「러브 인 러브(ラブinラブ)」라는 타이틀로 한국에서도 방영, 판매되었습니다. 저의 본가에도 만화전권을 소장하고 있고요.







「ラブひな」から私は日本語の勉強を本格に始めました。学校ではフランス語(韓国では第2外国語を高校でやります)、実家が田舎でしたので日本語の塾もなかったことだし、一人で学ぶしかなかったです。誰から教えてもらうこともなく、ただ日本語教科書を見ながら自分で勉強するのは大変でした。ほっちゃんへの愛がすべてを可能にしたと、私は諦めたいときはほっちゃんの歌を繰り返して聴きながら自分を励ました。

러브히나를 기점으로 일본어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어(한국에서는 제2외국어를 고등학교 때 가르칩니다. 일본은 대학생 학부때 실시)를 가르쳤고, 고향이 시골이었기에 일본어학원도 하나 없었기에, 혼자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아닌, 그저 일본어교과서를 쥐고 스스로 독학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홋쨩에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저는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홋쨩의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자신을 격려했습니다.


時は流れ、私はソウルにあるミッション系の大学に入りました。3年間の兵役も済ませました。嬉しいことで、兵役の途中でJLPT(日本語能力試験)1級にも合格しました。独学で日本語能力をここまで伸びたのもほっちゃんのおかげ、だと私は信じてます。2006年の夏、初めて日本に訪れました。「TBSアニメフェスタ」などの二次元イベントにも参加して、お台場で海を見ながら「ここで是非生活したい」と強く願いました。そこで日本留学を決心した私はちゃんと準備して、交換留学プログラムに合格。2008年の秋から東北大学で1年間、研究生として過ごしました。そして、指導教員から紹介をいただいて、2010年の夏に東大の院試を受けることになりました。

시간이 흘러, 저는 서울에 있는 한 개신기독교계 미션스쿨에 들어갔습니다. 3년간의 군 복무도 마쳤습니다. 복무 중 JLPT(일본어능력시험) 1급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것은 2006년의 여름. 「TBS아니메페스타(TBSアニメフェスタ)」 등의 행사에 참가하고, 오다이바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여기서 꼭 생활해보고 싶다」고 강하게 바랐습니다. 이 때 일본유학을 결심한 저는 다시 잘 준비해서 학내 교환유학 프로그램에 합격. 2008년 가을부터 토호쿠대학(東北大学)에서 연구생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소개받아 2010년 여름에 동대 대학원입시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일정은...


08.25.水:日本入国 (일본입국)

08.26.木:のんびり勉強まとめ (천천히 공부 정리)
08.27.金:試験場へ訪問 (시험장 방문)
08.28.土:Animelo Summer Live 2010 The 1st Day (?)
08.29.日:Animelo Summer Live 2010 The 2nd Day (??)

08.30.月:東京大学大学院入試筆記試験 (대학원 필기시험)

08.31.火:一人カラオケ9時間 (혼자서 노래방 9시간)
09.01.水:秋葉原と東京タワー訪問 (아키하바라와 도쿄타워 방문)


09.02.木:東京大学大学院入試面接試験、直後LiSA Angel Beats!ライブ (대학원 면접시험 직후 LiSA Angel Beats! 라이브)

09.03.金から2週間JR PASSで日本全国旅行 (이날부터 2주간 JR패스로 일본전국여행)


…な、厳しいなのか、旅行なのか、イベントなのか、院試なのか、全く目的とわけが分からない(?)スケジュールでよくも合格したと自分でも思います。

...이라는, 빡신건지, 여행인건지, 이벤트인건지, 대학원입시인건지, 대체 목적을 알 수가 없는(?) 일정으로 잘도 합격했다고 스스로도 돌이켜봅니다.


とにかく、私が初めて買ったほっちゃんの円盤「黒猫と月気球をめぐる冒険」を持って日本に来て、それを胸に抱いたまま院試の試験場に入りました。そして日本全国旅行が終わって、またそれを胸に抱いて東大に訪れ、合格記念写真をほっちゃんの円盤と一緒に取りました。その写真は今も私が持っています。良い記念になっていますね。

 어찌됐든,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홋쨩의 앨범을 가지고 일본에 와서, 그것을 가슴에 품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전국여행이 끝나고, 다시 그것을 품에 안고 학교에 방문해, 합격기념사진을 홋쨩의 앨범과 함께 찍었습니다. 그 사진은 지금도 제가 갖고 있습니다. 좋은 기념이 되어 있네요.


2011年4月、地震や放射線なんか全く無視して東大に入った私が最も最初にやったのは、ほっちゃんのファンクラブ「黒ネコ同盟」へ加入を申し込んだことです。こうやって私はファン暦11年目にようやくほっちゃんの公式ファンクラブの会員になりました。SSAに入ってすばらしい仲間との出会い、また、2000年に「ラブひな」を記念で東大学園祭に訪れたほっちゃんのサインを見た瞬間、涙が流れるかと思いました。

2011년 4월, 지진이나 방사능 등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대학원에 들어온 제가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홋쨩의 팬클럽 「쿠로네코동맹(黒ネコ同盟)」에 가입을 신청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팬력 11년만에 겨우 홋쨩의 공식 팬클럽의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SSA에 들어와 멋진 친구들과 만나, 또한, 2000년에 러브히나를 기념하여 학원제에 와주신 홋쨩의 사인보드를 본 순간, 눈물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その後も私のほっちゃんへの追いかけは止まらず。2011年はほっちゃんのイベントに5ヶ月連続に参加したり、2012年3月のほっちゃんのライブに参加しながら就活して第1希望企業に一発合格したり。ベストアルバムでほっちゃんが大変気に入ったフランスパリへ、学会のルートを調節して私も行って、ほっちゃんのシャツを着たままエッフェル塔の前で「ほっちゃん!ほあああああ-!!」と叫んだり。9月20日、ほっちゃんの誕生日にあわせて堀江駅から由比駅まで電車旅行をしたり。SSAみんなとパセラのほっちゃんルームで「ホアアアアアア!」とか…数え切れないほどの思い出をほっちゃんを主題に楽しむ留学生活を過ごしました。

그 뒤로도 저의 홋쨩 쫓아다니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1년 홋쨩의 이벤트에 5개월 연속으로 참가한다든지, 2012년 3월의 단독 라이브에 참석하면서 구직활동을 병행하여 제1희망기업에 합격한다든지. 베스트앨범에서 홋쨩이 무척 즐겼다는 프랑스 파리에, 학회 루트를 조정해다가 저도 프랑스 파리로 가서, 홋쨩의 티셔츠를 입은 채로 에펠탑 앞에서 홋쨩을 외치기도 하고. 9월 20일, 홋쨩의 생일에 맞춰서 호리에(堀江)역에서 유이(由比)역까지 철도여행을 한다든지. SSA 친구들과 파세라 리조트 노래방의 홋쨩룸에 들어간다든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추억을 홋쨩을 주제로 즐기는 유학생활을 보냈습니다.




振り替えて考えると、私の13年間はほっちゃんを必死に追いかける人生だったな、と思います。だった1つ、「ほっちゃんが大好き」。その気持ちでここまで来ることができました。ライブで、イベントでほっちゃんを見つめる度に感謝の気持ちを忘れずにいます。ですので、「私はアニメオタや声優オタではない、ただのほっちゃんのファンに過ぎない」と言えるではないでしょうか。

돌이켜보면, 저의 13년은 홋쨩을 필사적으로 쫓아다니는 인생이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단 한가지, 「홋쨩 정말 좋아」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라이브에서, 이벤트에서, 홋쨩을 바라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덕후나 성우오타가 아닌, 단지 홋쨩의 팬일 따름」이라 말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ほっちゃんに人生をささげた私に、また1つの願いがあるなら、それは、ほっちゃんとゆかりん姫のステージを、もう一度だけでもいいから必ず見たい。それが私のほっちゃんとの人生の最大であり、最高の願いです。「やまとなでしこ」の復活は無理でも、ただほっちゃんとゆかりん姫が仲良くいるところを見たいですね。そしてそのまま結婚

홋쨩에게 인생을 바치다시피한 저에게, 아직 한 가지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홋쨩과 유카링공주님의 스테이지를, 한 번이라도 좋으니 꼭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홋쨩에 대한 인생의 최대이며 최고의 소원입니다. 「야마토나데시코(やまとなでしこ)」의 부활은 무리더라도, 그저 홋쨩과 유카링공주님이 사이좋게 있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그리고 그대로 결혼


時の流れが速いですわ。卒業が近づいています。来年の4月からは日本のとあるエンジニアリング企業で社会人として働く予定であります。今度は学生から社会人になって、もっと大勢な金(!)でほっちゃんを応援したいと思います。以前からも、これからも、ほっちゃんのファンとして平凡ながら充実な毎日がいつまでも続きますように、

시간의 흐름이 빠르네요.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내년 4월부터는 일본의 어떤 엔지니어링기업에서 사회인으로 일할 예정입니다. 이번엔 학생에서 사회인이 되어, 더욱 성대한 돈(!)으로 홋쨩을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전부터도, 지금부터도, 홋쨩의 팬으로서 평범하면서도 충실한 매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며,





あなたのハートにエンジェルビーム!
ほっちゃん!ほ、ほーっ、ホアアーッ!! ホアーッ!!





 * 이 글은 「2012 Winter Comic Market 83」에서 발매된 학내애니메이션연구회(SSA) 코미케 기념 회지에 기고한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水海유세현「ほっちゃんが好きで外国から留学きました!励ましの一言お願いします!」
호리에 유이「留学!!日本でたくさんお友達を作って、楽しい留学生活を送って下さい♪(^-^)/」


도쿄대학(東京大学; The University of Tokyo)..

지난 3월 25일, 23년에 걸친 학생의 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졸업식이 도쿄대학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학벌이라는 이 동대는, 제게 연구 이상의 추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아니 사실 연구는 망했고 추억만 남았 

SSA단의 친구들과 어울려 밤샘 가라오케를 달린 파세라의 나날.. 토가나올 때까지 미친듯 케이크를 처묵처묵하고 6kg짜리 파르페까지 작살낸 그리고 3번토한 스이파라. 

코미케에 부스 내고 앉아서 SSA 회지 판매하던 서클참가의 추억. 

코미케에 내 글을 내어 팔아도 보고. 일반참가를 위해 토요스에서 새벽 3시반부터 걸어서 랄라리~ 하던 오다이바 빅사이트. 

사이리움(야광봉) 들고는 애니송 틀어놓고 몇 시간이고 오타게를 추던 우에노공원.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그냥 걷고 있다가 친구랑 만나면 괴성과 오타게 포즈를 취하며 인사를 나누던 아키하바라. 

티켓 모아다가 함께 라이브에 참석해서 4명이 쪼로록 서서는 사이리움 들고 으쌰으쌰~ 하던 사이타마 슈퍼아리나. 

때로는 저 멀리 렌터카 타고 온천여행을 다녀오며 노천탕에 앉아 성우이야기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학원제 때는 돈을 모아 스태프 자격으로 손님을 받으며 성우초청행사를 치르기도 했던... 

보석과도 같은 수많은 추억이 도쿄대학에 존재합니다. 

홋쨩을 너무 좋아해서 도쿄대에 들어온 저에게 홋쨩이 말하길, "일본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운 유학생활을 보내세요~"라고라. 저는 홋쨩이 직접 저에게 해주신 그 말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졸업하고 보니 그 말을 제법 지킨 것 같은 자신감이 들어 홋쨩의 팬의 한명으로서 뿌듯한 기분도 듭니다. 친구도 많고, 유학생활도 즐거웠고...







그렇게 2년간 대학원생으로 살았던 동대는... 평범한 시골 소년이 한 명의 성우를 동경하고 어디까지 이룩할 수 있느냐를 제 인생을 걸고 증명한 이십대 최고의 성공이자 추억으로 영원히 추억에 남을 것입니다. 비록 연구는 실패하고 박사학위는 따지 못했지만, 홋쨩을 향한 짝사랑을 인생을 건 형태로 이룩해내고, 이름난 대기업에 취업을 하고, SSA라는 소중한 존재를 품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얘기했지만, 동대에서 얻은 건 3가지. 「홋쨩, SSA, 취업」 교수「연구는?」


SSA단의 역사는 30년이요, 지금 50대가 되어도 SSA단의 행사와 뒷풀이에 적극 참여하는 회사 상무, 이사, 변호사, 판사, 교수 등의 까마득한 대선배(...)들도 제법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라인 커뮤니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학교 중앙동아리의 수십년 가는 인맥. '지인'이 아닌 '친구'로서, 취미와 즐거움을 계속 함께할 수 있는 존재를 얻은 것만으로도 저는 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이야기. 이제 이곳은 커뮤니티는 물론 더 이상의 데이터베이스 축적도 이루어지지 않는 잔해입니다. 다만, 햇수로 10년이라는 세월을 운영해 왔고, 심지어 중학교 시절의 지인도 찾아오는 곳이었기에, 졸업을 기념한 인사를 남겼습니다.


여러분, 오랜 세월 감사했습니다.

러분들의 앞날에 좋은 일들이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東京大学への留学という夢を授かい、最後まで諦めず頑張れるように支えて下さいました我が主、父なる神様と声優、堀江由衣様に最大の感謝を申し上げ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도쿄대학에의 유학이라는 꿈을 주시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낼 수 있도록 지탱해 주신 나의 주 하나님 아버지와 성우 호리에 유이님께 최대의 감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2012년도 도쿄대학 대학원 석사 학위논문,「이산화망간을 이용한 연료전지.축전지 캐소드의 산소급속충전에 관한 연구(二酸化マンガンを用いた燃料電池・蓄電池カソードの酸素急速充電に関する研究)」 감사의 말



 * 이 글은 학생시대를 마감하고 사회인이 되기 전날, 구 이글루스 블로그의 운영을 종료하고 올린 마지막 작별인사 포스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