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도쿄의 대학원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2009년 4월 초, 아침 9시의 교수 방. 교수는 찬찬히 자신이 만들던 프리젠테이션을 뜯어보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방에는 그가 피우던 담배연기가 감돌고 있었고, 창문을 통해 아침의 햇살이 은은하게 비춰오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이후의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사회로 나갈지 판단을 세울 수 있을 정도까지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에 진학하든, 석사를 마치고 회사에 취업하든, 한국으로는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서 학문이나 엔지니어 생활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라는 것은, 일본에서 박사를 하든가, 아니면 일본에서 취업을 하겠다?"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일본에 정착하러 교환유학을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교환유학의 가장 큰 목적은, 일본에서 제 미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교수의 표정은 옆얼굴만으로는 어떤 심정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찌보면 자세히 듣는 듯도 하고, 어찌 보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도 보였다. 여전히 PC의 프리젠테이션 자료에서는 눈돌리지 않은 상태...



"하지만 왜 센다이가 아니고 도쿄인가?"

"왜냐하면, 제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결코 나빠서 도쿄를 지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과 일본, 양 나라의 협력과 발전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싶습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아직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도쿄에 있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몇 명이라 해도, 저를 통하여 양국의 사람들이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제 모교에서는 미국유학이 대세로, 일본유학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도쿄에서 유학을 한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유무형적으로 양국의 교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믿고 있는 종교가 되든, 제가 전공할 학문이 되든 혹은 취미생활이 되든... 너무 거창한 말 같지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래서 센다이보다는 도쿄가 더 낫다고 생각한 거군."

"그렇습니다. 관광을 와도, 학회가 있어도, 한국인들은 대부분 도쿄로 오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프리젠테이션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동작이 멈춘 것으로 보아서는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이 아닌 나의 말을 곰씹고 있다. 과연 이 노교수는 이 ‘도전’에 어떤 판단을 내려줄 것인가.

마침내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よし, 그렇다면 내가 자네에게 제안해줄 것이 있네."

"말씀... 하십시오?"

"일본의 학생들은 대체로 가는 길이 비슷하지. 석사를 나와서 취업, 그것도 대기업을 대부분 희망한다네. 미국처럼 벤처에 도전하거나 하지 않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어."

"한국도 비슷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의 상황, 유토리교육인지 뭔지 때문에 학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는 일본 사회에서, 필요할거라 생각하네."

"필요?"

"일본의 학생들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자네같은 학생. 이것만큼은 손에 넣겠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걸 쥐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말이지. 무엇이 자네에게 그토록 도쿄를 향한 심한 집착과 열망을 만들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야 물론 호리에 유이님과 애니송 라이브와 백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자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를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술을 마실 때도 말이야, 비슷한 놈들끼리 모인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출장같은 일이 있어서 도쿄에 갈 때마다, 같이 어울려 술마시는 친구들이 있어. 그 친구들을 자네에게 소개시켜 주도록 하겠네. 내 이름을 대면 아주 대대적인 환영을 할 것이야. 나랑 성격이 아주 똑같은 녀석들이거든."


이 때 교수는 ‘나랑 성격이 아주 똑같은’에 엄청난 강세를 두며 씨익 웃어 보였다.

......



뭣!? 님하같은 메가톤급 싸이코 교수가 세상에 또 있었단 말입니캇!! 같은 말을 당연히 했을 리는 없고, 단지 본능적으로 등짝에 식은땀이 흘렀다. 뇌 속에는 방금 들은 ‘나와 똑같은 성격의... 나와 똑같은 성격의...’가 에코 잔향 효과음을 뿌리고 있었고. 오오, 신이시여... 갑자기 왜 유유상종이란 말은 묻나 했더니.

"그러므로 이 동네들 중에서 골라 보도록 하게."

교수는 헛기침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첫 번째 대학은 요코하마 국립대학 (横浜国立大学; Yokohama National University)일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카나가와현에 있는 국립 대학이지. 도쿄는 아니지만, 가까운 곳이니 추천할만하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대학은 게이오 대학 (慶応大学; Keio University)이네. 
와세다 대학과 더불어 일본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립대학이지.



세 번째, Y군이 이번에 조교수로 부임한 도쿄공업대학 (東京工業大学; Tokyo Institute of Technology)에도 친구가 한 명 있지. 단과대학이지만 국립대일세.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는 도쿄대보다도 뛰어난 연구능력을 자랑하지.




마지막으로, 도쿄대학 (東京大学; the University of Tokyo)의 생산기술연구소에 그 녀석이 잘 지내고 있을 거야.”


교수는 피우던 담배를 내려놓고 내게 물었다.


요코하마 국립대학, 게이오 대학, 도쿄공업대학, 도쿄대학. 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는 9년 전에 감상한 어떤 작품이 떠올랐다.


단 한번도 생각지 못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할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지난 9년 동안의 시간을 일순간에 눈앞에서 영상처럼 흘려버리며,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그 말을 입으로 꺼냈다.


"....저는! "





여기까지가 2009년 4월에 있었던 일. 온갖 파격에 달하는 귀한 조건을 내걸며 자기를 스카우트를 하려고 공을 들인 교수님한테 '딴 학교 가게 해주세요!'하고 말하는게 얼마나 엄청난 부담과 죄송함과 어려움을 걸게 되는지는... 해보면 안다. 최악의 경우 '이 배은망덕한놈! 꺼져!!!'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간이 부었구만..


그 후의 일을 간략히 적자면, 우선 부모님께 청을 올렸다.


 : 일본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도쿄대학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어머니 : 그래, 나도 네가 대학원에 갈 필요가 있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 근데?
어머니 : 왜 미국이 아니고 일본이냐!?
 : 그쪽입니카-!


이 무조건적인 숭미주의에는 두손 다 들었다. 미국대학 타령... 여러분도 이해 안 가죠? 저도 안갑니다. 미국에 대학원 간다고 하면, 집을 팔아서라도 보낼 기세 orz





하여간 부모님께 허락은 받았으니,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정성들여 작성해서, 교정을 받고, 2009년 5월쯤에 발송했다. 답이 오기로, 우선 연구실로 견학을 와주겠는가? 당연히 가야지. 그래서 전화상으로 약속을 잡고 2009년 6월에 도쿄로 내려갔다. 연구실에 견학하러... 말이 좋아 견학이지 인생과 운명을 좌지우지할 면접시험.

그나저나 인 도쿄이기만 하면 아무데든지 다 좋았는데,
추천 대학원 후보들이 요코하마, 게이오, 동공대, 도쿄대... 

평소 교수가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가 드러났다.
심각한 과대평가

 




연구실에 넣어달라고 말씀드릴 때도, 2009 한여름 페스타 기간 도중에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수험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그리고 2010 한여름 페스타를 하면서도, 몇십 번이나 그날 일을 다시 생각하곤 했다.

26세 늙은 청년(언어도단?) 주제에 참 배짱도 좋았지.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꺼낼 용기가 나왔을까...




그야 물론 호리에 유이님과 애니송 라이브와 백합 [.....이보쇼-_-;;;;;;;;;;;]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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