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계기는 있다. 10년 전 읽었던 만화, 「러브히나」. 현재도 한글판으로 단행본 전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제1의 성우인 호리에 유이님과 만나는 데 결정타를 날린 작품이다.

내용이야 다들 알듯, 좋아하는 여자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삼수와 사수를 불사하는 도쿄대 입시생 우라시마 케타로의 뻘짓+할렘 스페셜. 동인작가 출신으로 여신님의 아류작 아이 러브 서티였나? 를 그리기도 했던 아카마츠 켄씨는, 러브히나에서 나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록 내용과 전개는 허본좌 수준이건만, 한 시대를 풍미한 할렘물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듯.

공중부양 헛소리 뺨치는 허본좌식 막가파 도쿄대 입시생 이야기에도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래, 나처럼. (...) 당시에는 9년 후 이렇게 도쿄대 앞에 서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면 언젠가는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어떤 곳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게 벌써 2000년 고1때의 일이군.




시기는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오후 1시 24분. 러브히나를 처음으로 읽은지 9년째가 되는 그 날, 무더운 날씨에 넥타이까지 맨 정장차림으로 도쿄대학 고마바캠퍼스 앞에 서 있었다. 흔히 도쿄대학이라고 하면 유명한 빨간문(아카몬)이나 건물(야스다강당)을 상상하겠지만, 둘 다 '혼고캠퍼스'에 있다. 고마바캠퍼스는 거기서 전철로 2~30분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지원한 연구실이 소속되어 있는 '생산기술연구소'가 여기에 있다. 시부야(渋谷)에서 이노카시라(井の頭)라고 하는 기묘한 이름의 사철노선을 타고 2코스를 가든가, 아니면 도쿄메트로 치요다선 종점인 요요기우에하라(代々木上原)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러브히나 4화에 보면 혼고캠퍼스에서 고마바캠퍼스까지 가는 길이 나오...기는 하지만, JR중앙선 → JR야마노테선 → 이노카시라선으로 3번이나 갈아타는 삽질 루트. 걷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치요다선을 타고 한 방에 갈 수 있다. 하기사 혼고캠에서 고마바캠으로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이곳에 들어온다고 해도 JR선 타고 다니기는 힘들겠군.. 하고 생각하며 정문을 넘어 생산기술연구소에 발을 들였다. 오후2시에 교수와 만날 약속을 했으니.

"실례합니다. 오늘 이곳에 오기로 한 아사히라고 합니다."
"오, 아사히군! 어서 들어오게."


생산기술연구소 소속으로, 도쿄대학 생산기술연구센터장을 맡고 계신 분이다. 첫 인상에, 이상한 점 따위는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음.. 정상인(?) 같은데? 이야기가 잘 통할 수도 있겠어. 




준비한 센다이의 오미야게 완두콩떡(즌다모찌)을 바치고, 미리 가져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을 다시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고, 이곳에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고, 무슨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본어도 충분히 능숙하고, 열심인 것 같고, 연구에 정성과 열의도 보이고, 미우라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셨으니, 기쁘게 받아주겠네. 다만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기계공학 전공의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네. 우리 연구실도 원래는 화학공학 소속이었는데, 에너지연휴센터 일 때문에 기계공학으로 소속이 바뀌었어. 연구내용은 이전과 변화가 없으니 별 문제가 없겠지만, 입학시험이 부담이 될 수 있겠는데.. 그래도 괜찮겠는가?"

"예, 받아주신다면 스스로 어떻게든 극복해 보겠습니다!"


받아주겠다는 말이 기뻐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듬해 동대입시를 치를 때까지, 이 때 외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1년 간 보내야만 했다. 애시당초 기계공학 전공을 스스로 어떻게든 독학으로 공부해서, 4년 동안 기계공학만 공부하여 도쿄대에 시험을 치를 정도로 뛰어난 세계레벨의 수재들과 치고박고 싸워서 이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엽기적이었다. 스스로 돌이켜 봐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구만.




이 때 교수님 방의 문을 열고 대학원생이 한 명 들어왔다.

"아, 소개하지. 지금 우리 방에서 박사1년차로 수고하고 있는 한국인 최 군일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교수는 만족한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그럼,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지. 시험은 언제 볼 생각인가?"
예, 제가 내년 8월에 졸업할 예정이므로, 그때 입시를 치르고 2011년 4월부터 입학할 생각입니다. 교환학생 때문에 약간 졸업이 늦어질 것 같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래,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오도록 하게. 미우라 교수님께 よろしくね! 좋은 학생을 추천해 주어서 고맙다고 나도 나중에 따로 인사를 드릴 터이니."




척. 도쿄대 교수와 악수를 나눈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뭔가 상상한 것보다 심하게 잘 풀린 듯한 기분인걸? 이정도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갔는데, 조건을 심상하게 다뤄선 안되겠지.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박사생과 밖으로 나와서 앉았다.



명함을 주신 마음씨 착해 보이는 박사생은 이것저것 많은 설명을 해 주셨다. 입실허가를 받으니, 다음 순서가 뭐게? 그야물론 근무여건(?)을 파악할 차례가 당연하지 않은가.




연구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나요?

"전혀요. 오고싶을 때 오고, 가고싶을 때 자유롭게 갈 수 있어요. 아침형 인간이라고 했죠? 나름의 리듬에 맞춰서 생활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거예요."

주말에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주말은 기본적으로 쉬어요. 연구실에 올 필요는 없어요. 가끔 친구들이랑 술마시러 가기도 하죠. 계속 이렇게 지내다 보면 약간 지루해요."

그건 뭐 괜찮을 것 같군요. 왜냐하면,



도쿄에 살게 되면 주말에 지루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드니까.

연구실의 분위기는 어때요?

"조용해요. 다들 자기 일에 열심이라서, 남에게 크게 터치하거나 신경쓰지 않거든요. 교수님도 성격이 천연이랄까, 거~의 터치가 없는 분이지요. 장단점이 있지만, 이거해봐라 저거해봐라 하고 간섭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 연구를 기획해서 실행하고 결과에 책임진다고 보면 될거예요. 그렇다고 너~무 놀거나 하면, 졸업할 때 '왜 자네는 아무런 연구결과가 없는고?'하고 물어보는 수도 있지만요."

교수님이 술마시다가 옆사람 두들겨패거나 때리거나 이단옆차기 날리거나 하지는 않나요?

"뭐라고요-_-????"

후우, 다행이다. 미 교수하고 성격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가 보군. '그런 연구실에 오래 있으면 성격 버려요. 빨리 여기로 오세요.'하고 다독이는 최 박사님. 아니, 그렇게 너무 불쌍한듯이 쳐다보셔도..

마지막으로 연구실의 실험실을 견학하고 연구내용에 관하여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논문이나 소개를 읽어서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이해하려면 들어와서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연구실에서 마지막으로 준교수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그래, 들어오면 박사까지 할 생각이에요?"
"아뇨,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꾸벅)"


헤어지기 직전에 교수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건 없는가?"

언제부터 미 교수님과 알고 지내셨나요?

"글쎄, 언제부터였더라? 하여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

미 교수님께서 '나랑 아주 완전히 똑같은 성격의 친구'라면서 교수님을 소개시켜 주던데요?



교수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란 표정으로 잠시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하는말...

"はっはっはっはっ!
あんまりうれしくないな!"


......-_-;;;;;;;;;;;;;;;;;;;






귀국하고 나서도 구설수에 꽤 휘말렸다. 제3영역권의 지인들 뿐만 아니라 제2영역권에서도.. 이미 학교 연구실에서 인턴 경험이 있어서. 귀국하자마자 연구실 회식에 끌려(?)갔는데,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로...

"그래, 이제 졸업하고 우리 연구실에 와야지? 우리 방에 들어오면, 우리 연구실에서 본교 학부출신 제1호가 되는 거야. 즉, 나의 수제자가 되는 거지! 일단 우리 방에 오기로 작정하면, 그 즉시로 유럽여행을 1주일 보내줄거야. 힘든일 전혀 안 시키고, 학비랑 생활비도 걱정할 필요 없을거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고, 아침형이니까 출퇴근도 자유롭게 해줄게. 그리고 내 사비를 들여서라도 일본에 1년에 두세 번씩 호텔+식사비 포함해서 보내줄 거야. 이런 파격적인 대우는 처음 아니냐?"

"맞아요~ 우와, 세현이 좋겠다!"
(<-다른 석사생 연구원들)

매수입니까?

"걱정할 거 없어, 대학원 시험은. 기관토플 대충치고, 면접하는 교수님한테 내 이름만 대면 바로 통과야. 그리고 자네 지금 우리 연구실에서 졸업논문 쓰고 있잖아? 생각 잘 하는게 좋을 거야. 무사히 제때 졸업하고 싶으면 말이지!"

이번엔 협박입니까?

결국 일본과 한국의 양쪽에서 스카웃을 받았는데 둘 다 차버린 격이 되어버렸다. 지인들은 '도대체 왜 거절한 거야?!'고 난리가 났고. 나름대로 대학원 입시 때문에 상당히 힘든 나날을 보냈다. 특히 2010년 전반기는 고3 다음으로 가장 힘들게 공부한 시기였던 것 같다.



단순히 생각해 보아도, 화학공학과 기계공학이 아무리 닮았다고 해도, 기계공학 전공과목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자기 스스로 책을 붙들고 독학하여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고도의 중노동을 요구하는지. 경쟁자들은 학부 4년 동안 오로지 기계공학만 공부하여, 그것도 학교가 학교니만큼 시험을 치를 정도면 필히 상당한 수재들. 반 년 만에 그걸 독학으로 깨쳐서 맞붙어야 하는 상황.


식사를 하다가 졸은 적도 몇 번 있었고. 그래도 아침 5시에 기상하는 아침형 인간의 습관을 견조하게 유지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여름 될 때까지는 아침 해뜨는 것보다 도서관에 들어가는 게 더 빨랐고. 그런 생활을 반 년 동안 계속 반복반복하면서, 나중에는 하츠네섬도 정지시켜놓고, 그러면서도 2010 한여름 페스타의 나머지 준비... 아니서머나 JR패스 전국여행 등도 착실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10년 전반기.. '안식년'이라 포장해놓고 실제로는 하도 고생이 심하다 보니, 자괴감이 열 번도 넘게 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분이 없었더면 그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호리에 유이님의 앨범은 거의 갖고 있으니까, MP3로 만들어다가 전곡을 다 나나카(MP3P)에 집어넣고 무한 반복을 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강하게 붙들어맸는데.. '인생의 스승'에 '생명의 은인' 항목까지 추가를 시켜야 할 판국.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찬 참혹한 시간을 보내고, 2010 한여름 페스타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때 그냥 포기하고 편하게 대학원을 가는 길을... 연세대는 아니더라도 토호쿠를 선택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토호쿠는 결코 나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랭킹에 올라 있는 공대이니만큼,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나름대로 또 보냈겠지. 거기에 대해서는 제법 자신이 있다. 토호쿠에 갔더라도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라고.






하뉴우의 성우는 '호리에 유이'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충분히 싸웠다. 자신과의 일대 결전에서 싸울만큼 싸웠다. 설령 불합격했더라도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불리함을 감수하고 지원한 것에 후회는 없다.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승리를 쟁취한 자가, 그 과실을 따먹고 평화를 누릴 자격을 얻는다.



2000 러브히나를 통하여 호리에 유이님의 팬이 되고 일본어의 독학을 시작하여,

2006 한여름 페스타에서 받은 계시로 시작하여,

2010 한여름 페스타 도쿄대 합격에 이르기까지의 10년에 걸친 한여름의 대장정은,

20대의 청년 미즈우미가 쌓아올린 인생 최고의 도전이자 금자탑으로 기록될 것이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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