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오가사와라 제도 백합의 하츠네섬 종합관광안내지도 - 대여행기록 - 2007대여행


2007 한여름 페스타~안경회 일본원정단~ (2007/8/11~21)

・ 8/11 토 1일차 : 출국

・ 8/12 일 2일차 : TBS anime festa 2007

・ 8/13 월 3일차 : 애니송 가라오케 우타히로바 8시간

・ 8/14 화 4일차 : 이케부쿠로 오토메 로드와 플라네타리움 돔 만텐

・ 8/15 수 5일차 : 아키하바라 탐방과 메이드 카페

・ 8/16 목 6일차 : 신쥬쿠와 하라쥬쿠

・ 8/17 금 7일차 : 2007 Summer Comic Market 72

・ 8/18 토 8일차 : C3×HOBBY2007 & 불꽃축제(하나비)

・ 8/19 일 9일차 : 각자의 주말

・ 8/20 월 10일차 : 오다이바

・ 8/21 화 11일차 : 귀국




“플라네타리움은 어떠신가요? 언제나 꺼지지 않는 아름답고 영원한 빛,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플라네타리움은 어떠신가요?”


한여름에 별이 반짝이는 둑길을 혼자 걸어본 적이 있는가? 사춘기 시절 때때로 그런 길을 걷곤 했다. 달빛과 은하수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밤하늘 아래 빛나는 농촌의 둑길을 홀로 걸어가노라면 마음속까지 촉촉이 젖어들어 포근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 시절의 추억을 일깨워 주는 선샤인시티60 빌딩 옥상에 위치한 스타라이트 돔 만텐의 플라네타리움은 이케부쿠로에서 꼭 들러야 할 명소. 소녀 거리, 이른바 오토메 로드(乙女ロード)의 공략을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일본원정단을 신세기 에반게리온 카츠라기 미사토의 잔잔한 목소리가 이끌어 한여름의 별자리의 세계로... 그것은 7월,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의 정경이었다.




* 07:35 숙소

"おはようございます! 朝ですよ! ほおら、おきてください! そうしたら、アスカが優しくキスしてあげちゃう! あはっ、しちゃった。恥ずかしい、まだまだ! で、うわ、また寝てる気!? おきて、おきてよ!!"

강렬한 아스카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오늘도 일어나서 네무의 타월을 젖혀 놓고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갖는 중.


‘오늘은 이케부쿠로에 갑니다. 신이시여, 부디 오고 가는 발걸음을 보살펴 주사 한 사람도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다치는 일이 없기를...’


하고 기도를 드린 뒤 둘러보면 여전히 한밤중인 인간들. 후우, 오늘은 새로운 필살 기법을 써야겠군.

“촤~악”
“일어나, 전부!”


커튼을 일순간에 확 열어젖히자 8월 중순 도쿄의 무시무시한 한여름의 초강력 햇살이 유리를 뚫고 널브러진 단원들을 쪼기 시작한다.


“끄아아아아아악~!!!”


괴성과 비명을 함께 내지르며 이리뒹굴 저리뒹굴 햇빛에서 몸을 굴려 도망치는 단원들.

...묘하게 뱀파이어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나는군.


"오늘은 이케부쿠로에 간다고?"

"내일이 아키바에서 소프맙 할인하는 날이라니까 오늘은 이케부쿠로를 가려고요."

"음, 그렇다면 추천해 줄 만한 노선이 하나 있어. 일본에 왔는데 재미있는 전철 하나는 타 봐야지. 마치 버스처럼 운행하는 노면전철이거든. 가격도 싸."

"아, 그래요? 그건 어디서 타는 거죠?"

"그건 말이지...."


하고 식사를 마친후 출근하기 전에 루트에 관해 논의하는 동안, 단원들은 식탁을 마무리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마쳤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그 뒤로도 종종 길에 관해 논의하며 사전 조사를 이행하는 일이 잦았다. 집의 예비 열쇠와 지도책, 도쿄 철도 노선지도책도 빌려 갖고 다녔다.



* 10:05 토덴아라카와 노상전철


"자아, 이제 소녀거리로 가보자!"

형이 묻는다.

"가장 먼저 어딜 가지?"
"우선 나침반에 가서 값싼 물건 중심으로 보며 가격대 성능비 수준을 높인 다음에, 이곳저곳을 타고 돌면 되는 거지."


설명을 마치기가 무섭게 전철이 도착하고, 승차한 단원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자리는 제법 차 있지만, 일본인들은 별로 앉는 데 집착(?)이 없는 건지. 한국과 달리 지하철이 아닌 지상전철이라서 바깥 구경을 하기에 좋은 장점도 있고. 빈자리를 놔두고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앉으려는 사람들이라 해도 한국처럼 빈좌석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 같은 일은 없었다. 차량 구석에 노약자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자리 잡기는 한국보다 훨씬 용이한 편이다.


도쿄메트로히비야선의 미노와(三ノ輪)역에서 내려 노면전철을 타러 미노와바시역을 향하여... 그러나 역시나 길눈이 어두워 지도를 보면서도 이리헤매다 저리헤매다...




10시 33분경, 길 헤매다가 이것저것 점검 중. 결국 이 형이 다시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방향을 잡은 뒤 미노와 다음 역에 도착.


오는 노면전철을 보니 만석이다. 다들 다리도 아프고 피곤한 상태인지라, 지도를 잘 살펴보니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다시 미노와역으로 가자!”하여, 철길을 따라 걸어 출발역인 미노와바시(三ノ輪橋)역에 도착했다.




하늘색이 최초에 헤매다 도착한 루트, 다소 녹색이 되돌아간 루트. 철길 따라 가운데 톡 튀어나온 부분은 초등학교였다. ‘여기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같은 안내문이 한글로 씌어져 있고. 일본은 과연 한국어가 제2~3외국어 수준이다.



오전 11시 8분, 마침내 도착한 미노와바시역

......으응, 말 그대로 완벽한 출발역이로군(....)





철길 반대편을 보니 화장실이 마침 있다. 얼른 다녀오면서 기념사진.(?)




11시 08분에 도착한 노면전철이 출발했다. 이게 바로 그 노면전철인데 단돈 160엔으로 종점 와세다 대학까지 갈 수 있다. 미나미센쥬 근처에서 이케부쿠로 근처까지, 겨우 160엔으로 그 거리를 간다. 게다가 운행방식이 참 특이하다. 출발할 때 종 울리는 소리, 땡땡~ 하고. 신호등 걸리면 차와 함께 서기도 하고.


전철 내 의자에 쪼로록 4인 연달아 앉은 단원들. 아무래도 전철 자체가 그렇게 오래 타고 가는 시민들을 위한 것은 아닌 듯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마을버스?) 수많은 사람들이 내렸다가 올랐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 12:05 이케부쿠로 선 샤인 시티 60

이케부쿠로와 가장 가까운 동이케부쿠로역에 하차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높은 빌딩이 서 있는 사이사이로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도쿄를 내리쪼고 있다. 나는 단원들을 이끌고 서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바로 선샤인시티60 빌딩이야. 이케부쿠로의 기준점이라고도 할 수 있어."
"저기 가면 뭐가 있어요?"
"뭐어, 주로 아가씨들이 많이 가는 그런 옷가게라든가 부띠끄, 그런 아가씨 쇼핑 코너들. 그런 동네에 들를 단원은 없지요? 우리는 저 빌딩에는 딱 하나, 옥상에 있는 플라네타리움에 볼일이 있고, 나머지는 그 좌측에 있는 소녀거리에서 하루를 다 보낼 거니까."


반말과 경칭이 반쯤 섞인 헛소리를 하면서 단원들을 데리고 선샤인시티60빌딩에 들어섰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63빌딩과 코엑스몰을 합쳐 놓은 듯하다고 할까. 실제로도 한국에서 63빌딩과 코엑스몰을 만들 때 이곳을 참고로 했다고. 내부 구조가 꽤 복잡했기 때문에, 작년에 이곳에 와 봤어도 무척 지리를 헛갈렸다. 빌딩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information 센터에 있는 아가씨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하면서 옥상에 있는 플라네타리움까지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까지 왔다. 다만 올라가지는 않고 근처에 있던 전단지를 보고 상영시간을 체크해 볼까. 으음, 소녀 거리를 돌고 나와서 오후 4시에 상영하는 걸 보면 되겠군. 다른 단원들도 다들 찬성했기에 오후 3시 30분까지 이곳으로 다시 오기로 하고 선샤인시티를 나왔다. 이케부쿠로의 본방, 소녀 거리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 12:40 이케부쿠로 소녀 거리










우선 첫 번째 코스는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나다고 추천받은 나침반부터. 이곳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백합의 럭키스타 코나카가 동인지를 가까스로 세 권 질렀다. 남성향으로 가면 전부 남자×여자 혹은 3P, 여성향으로 가면 전부 남자×남자. 대체 백합이 있을 자리는 어디인가-!?

하면서 돌고 있는데 전시장 안에 무언가가 보인다. 일본에서 하나는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명종 시계. 그것도 마법소녀 리리칼 나노하 A's로군. 미즈키 나나님과 타무라 유카리님의 목소리 녹음. 가격은, 1만 2천엔.


......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자명종 하나에 10만원이라니, 까무러칠 수준이다. 으음, 이걸 어찌하나. 일단 보류. 지갑에 쏙 들어갈 만한 사이즈의 다카포2 오토메 트레이딩 카드를 개당 10엔에 팔기에 두 개 샀다. 마지막으로 무료로 배포하는 럭키스타 특별전 광고 전단지를 몇 장 들고 밖으로 나왔다.



* 13:36 선샤인 시티 지하 맥도널드


100엔 버거를 먹고 싶다는 요청에 의해,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으음, 작년에 내가 아니메이트에 갈 동안 홍차 누님은 선샤인에 있던 맥도널드에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어디에 있었더라? 하고 찾아다니다 의외로 쉽게 발견했다. 먼저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보려니 웨이트리스가 주문부터 하고 오시란다. 도로 나가서 빅맥세트와 100엔 치즈버거 선택. 가격은 740엔이군. 목이 말랐기에 음료수를 다 마시고,


"여기도 한국처럼 음료수 리필 될까?"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한번 해볼까."


웨이트리스를 불러서,


"飲み物のお代わりは...?"

"すみもせん. それはできないんです。"

"우억, 우리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좁았다니!"

".....헐;;"


좋은 것을 몸으로 때웠다. (퍽!)



* 14:00 이케부쿠로 소녀 거리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소녀 거리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케이북스에 가 보니 소녀 거리답게 테니프리 실사+애니판이 1층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왁자지껄 얼굴에 발그레한 미소를 띤 채로 이것저것 고르고 있는 수많은 동인녀들. 그리고 사이에 당당히 서서 ‘음..’ 하며 테니프리 상품들을 쳐다보고 있는 ‘테니프리 복장’의 미즈우미. 즉, 테니프리 세이가쿠 레귤러 티셔츠를 입고 이케부쿠로에 왔다.




옆에서 테니프리 상품들을 고르고 있던 동인녀들의 시선이 좀 따갑긴 하더군.


2층으로 올라가 보자 이 형이 까딱하며 부른다. 지난 번 원페에서 3,500엔에 팔아넘긴 네무 타월을 8,500엔에 팔고 있다.


"자네는! 내게 감사해야 해!!"

"우핫핫핫! 형의 그 지름능력은 아주 감탄할 만하더군!"


오른편의 구석에서는 코스프레복을 팔고 있었다. ARIA 컴퍼니의 제복은 무려 10,000엔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으나, 곁에 있던 히메야의 판매가격은 6,000엔. 반값인 겁니까. 하다못해 2/3이라도 맞춰 주는게 구색이 맞지 않은가. 너무도 엄청난 히메야의 굴욕.


이번에는 4명이 단체로 다니는 게 아니라 각자 갈라져서. 임대한 휴대전화는 다들 갖고 있는데다 무료통화시간대라서 별 문제는 없다. 가만있자, 일본에 와서 사려고 했던 물건 하나가 더 있었는데 말야. [뭐길래?] 바로,





왜라니, 미즈우미가 바로 ‘단장’이잖아. (...)


안경회 일본원정단은 본래 명칭이 ‘일본원정대’였으나, 단장 칭호를 쓰고 싶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단’이 되었다는 설. 믿거나 말거나. 뭐, 하기사 이 정도의 인원이면 원정대보다는 원정단이라는 명칭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나침반에 가서 다시 잘 뒤져보니 메가폰, 탁자에 올려놓는 명패, 그리고 완장 셋트가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단장’이 아닌 ‘超監督’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가격은 1,500엔. 으음, 완장과 명패에 단장이라고 쓰인 셋트라면 바로 샀을 텐데. 그러나 아니메이트 이케부쿠로 본점에 들어가 찾아봐도 그런 셋트는 보이지 않았고, 단지 단장 완장만 달랑 하나 팔고 있었다. 가격은 마찬가지로 1,500엔.


완장 하나에 1,500엔을 주고 사다니, 돈이 썩어 빠졌냐! 얌전히 단장 마크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단원들과 합류하여 4시에 시작하는 플라네타리움 영상을 보기 위해 선샤인시티60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카운터의 아가씨에게 4시의 작품으로 4장 주세요.. 하고 말하니,


“매진입니다.^^”

“.....”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었군. 별 수 없이 예정보다 두 시간 늦은 오후 6시의 티켓을 끊고 나서, 텅 빈 구석에 몰려들어 다들 쓰러져 뻗었다. 이미 4일째 서너시간 수면에, 폭염 속 하루 종일 걷기 등의 강행군을 해 온 터라 무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씩 맛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전화 알람 세팅을 잊지 않는 단장. 대략 30분 정도 맛이 간 채로 있다가,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음료수 한 잔씩 마시고 다시 소녀 거리로 나왔다.




토라노아나, 지나가다 걸린 에로망가 전문샵(?) 뭐 등등을 돌았지만 별달리 살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후 6시 근방이 되었고, 이제 형은 갈라져 가야 할 시간.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쳐 주시던 여선생과 만날 약속을 했단다. '여자랑 데이트하니 좋겠네~'하고 놀려먹으며 '자아, 연인 코스다! 함께 플라네타리움에서 별 감상을 하는 거야! 최고라고!?'하며 펌프질을 해서 플라네타리움 티켓을 두 장 사게 만들었다.


짐을 받아 들고 선샤인시티 플라네타리움 돔 만텐으로 향한다.



* 18:00 선샤인시티 플라네타리움 스타라이트 돔 만텐

작년의 일본여행, 「참여름의 한페이지」에서도 '銀河鉄道の夜(은하철도의 밤)'를 참 감명 깊게 감상했다. 그 매끈한 추억이 남아 있는지라 이번에도 플라네타리움을 방문하는 일정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번에 볼 작품은 「'밤 하늘 가득한 별에 소원을(満天の星に願いを)」로서, 나레이터는 무려 미츠이시 코토노님. 대표작으로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에서 츠키노 우사기 역,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미사토 역을 열연하신 유명 성우.


....그렇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미사토가 플라네타리움을 상영하고 있다.


뭐, 별로 에바에서처럼 당차고 카리스마넘치는 목소리는 아니었고, 그저 플라네타리움 상영 답게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주셨으니^^;




한여름의 밤하늘이 플라네타리움에 떠오른다. 별자리를 찾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쭉 이어지고, 각종 설화 등을 설명해 주고, 엔딩송으로 마무리.. 40분 정도 걸렸다. 돔 천장에서 마치 별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

아주 즐겁게 감상하고 나와서 단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유세현 : 어때, 끝내주지!?
백업장 : 어, 완전히 잠이 팍팍 쏟아지던데.
메이드장 : 미사토 누님의 말투가 정말 자장가 뺨치더라.


.........

800엔이란 큰 돈을 퍼붓고, 미사토 말투에 맛이 간채로 잠자고 나온 겁니까, 당신들은!!



* 19:00 이케부쿠로 소녀거리→타케노츠카

이제 하루를 마감할 시간. 케이북스를 잠시 들른 다음, 다시 160엔짜리 노면전철을 타고 복귀. 근처에 중고책방이 있었다. 단원의 요청에 따라 들어가서 한 20분 정도 헤매다가,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길을 잘 찾아서 히비야선 미노와역에 도착하여 무사히 돌아왔다.

짐을 일단 내려놓고, 퇴근하신 형과 함께 통례의 먹거리 쇼핑을 하러 가 볼까나.

원정기간 중, 우리가 음식을 조달한 곳은 세이유 마트, 그리고 물을 공급받기 위해 주로 찾았던 반대편의 사밋토 마트였다. 둘 다 걸어서 대략 15분 정도의 거리. 물 공급이란, 사밋토의 물통을 사면 공짜로 식수를 제공하는 것을 말함. 미즈우미[水海]의 속성은 또한 물[水]인고로. 마트에 수통을 갖고 가서 식수기를 통해 물을 채운 뒤 집까지 운반, 깔때기로 페트병에 채워 냉장고에 넣는 역할도 단장의 몫이었다.

오늘은 사밋토에 왔다. ...라기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사밋토행이다. 장정이 다섯 명이나 되니까 물도 하루이틀이면 작살이 나거든.

유세현 : 오늘도 변함없이 마트에 왔군요.
백업장 : 내일 아침은 뭘 해먹지.
유세현 : 어차피 아침마다 요리는 내가 하잖아요-_-;;
메이드장 : (바구니를 갖고 오며)자아, 오늘의 레이서는 누구냐!
백업장 : 오늘은 제가 끌죠. (카트 위에 메이드장이 바구니를 올려놓자) 간닷, 드리프트으으으~!!
유세현 : 후음.. 드리프트라.


하면서 물통을 가지고 급수기에 갔다. 급수 실시. 왼쪽의 세면대(?)에서 물통을 헹군 다음, 급수기의 정문(?)을 열고 정확한 위치에 삽입. 뚜껑은 왼쪽 상단에 있는 소독기에 넣고. 문을 닫자 물이 채워지면서 LCD로 몇 %가 채워졌는가, 까지 표시된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기계나 전자제품에 익숙한 일본인들의 문화가 엿보이는 이 느낌. 재미있다.

물을 채우고 나서 제안했다.

"지금까지는 아침에 적당히 뭘 돌려 먹거나 섞어 먹거나 했지만, 내일부터는 역시 차려서 먹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응, 좋지. 뭔가 먹을 게 있는가?"
"제가 계란 요리를 좋아하죠.^^"


이리하여 달걀을 10개, 냉동식품을 몇 개 구입했다.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복귀하여 짐 정리와 지름물품 확인 및 전표 정리 등. 쌀에 물을 넣고 조그만 3인용 보온밥솥에 넣은 뒤 예약취사를 설정해 두었다.



* 23:30 숙소


헌데 문제가 생겼다. 사밋토까지 다녀와서 아무리 기다려도 이벤트장이 오질 않는다.

"벌써 시간이 11시 반인데, 곤란하군요. 신쥬쿠에서 만난다고 한 것 같은데."
"신쥬쿠에서? 으음.. 이 시간에 신쥬쿠에서 여기까지는 막차로 오기도 정말 힘든데. 길을 완벽히 안다고 가정했을 때의 얘기니, 초행인 이벤트장이라면 더더욱."


단원들은 미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엇이 뇌속에 들어 있는지는 알고 있는 듯한 상황. 그렇다, 그것은 바로...


(콰쾅) "드디어 이벤트장이 마법을 잃어버린 것인가-!!"

백업장 : 이런 부러울데가!!
유세현 : 그게 부러운 겁니까-_-;;
메이드장 : 넌 안부럽냐?
유세현 : 나는 정의의 마법사가 되는게 꿈이기 때문에 유감이지만 지금은 안 돼.


이런 헛소리를 실실 하면서 이미 시간은 11시 40분을 초과.


"안되겠네, 이건. 아무래도 이벤트장은 그 만난다는 아가씨랑 호텔방을 잡든가 한 것 같은데."
"하하, 하하하--;;"
"전화 와서, '어, 나 잠깐 미안한데 내일 아침에 아키바에서 만나자' 이 소리 하는거 아냐 이거!?"
"그럼 단장이 이제 내일 아침에 혼자 아키바로 떠나서 어떻게 연락을 해서 이벤트장이랑 만나야겠군 그래? ^^"


하는데 딩동! 나가 보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어오고 있는 이벤트장.


이벤트장 : 나 왔어.

백업장,메이드장 : 우리들의 기대를 배신하다니!!

이벤트장 : ...에엥???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머쓱한 듯 웃는 이 형. 나름대로 즐거운 사제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듯하니 뭐어, 됐나.


긴장이 풀리고 나니, 사 온 계란을 냉장고에 넣는 걸 깜박한 것이 생각났다. 냉장고 옆 싱크대 구석 쪽에 두었더니. 포장을 뜯고 냉장고에 달걀을 차곡차곡 적재(?)하던 중, 문득 벽에 걸린 호리에 유이님의 달력에 눈길이 갔다. 모처에서 100엔에 구입했다고 하셨던가.


천천히 파워샷 에리스를 꺼내 들고, 계란을 사진 옆에 착 들이대며 셔터를 누르며 외친 말,



“天使のたまご!!”

.....

이벤트장 : ......?
메이드장 : .......?
백업장 : .......???

"풋.....^^;;;;"


한명 말고는 아무도 이해를 못하다니. 개그가 너무 어려웠나 OTL

점차 지름물품에 한가득 쌓여만 가는 숙소. 돌아갈 날이 정말 걱정된다. 여하튼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백업을 받아야지. SD메모리카드는 파워샷 에리스를 사던 2005년 말에 함께 구입한 256MB짜리였기에 용량이 적었다.

파워샷 에리스에서 SD 메모리카드를 꺼내어 이벤트장의 타블렛에 삽입, 사진파일과 동영상파일을 긁어 USB로 연결된 외장하드에 복사했다. 아, 마침 이벤트장의 디카가 근처에 있군.

유세현 : 이벤트장, 사진 전부 하드에 옮겨줄까?
이벤트장 : 어, 좀 부탁해.
유세현 : 알았음.


에리스의 파일을 모두 외장하드에 옮긴 뒤, 이벤트장의 디카에 꽂힌 SD 메모리카드를 꺼내어 반복동작. 그 동안,

유세현 : 뭘 찍으셨나?

하고 메모리카드 속에 든 사진을 몇 개 확인하니 이케부쿠로에서 그 여선생과 찍은 사진이 몇 장 있다.



후후, 재미있게 놀다 오셨나 보군... 하고 웃어넘기다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な....
な.........



なんだ、こりゃああ~~!!!!??!?!?


새하얗게 타버린 미즈우미를 보고 뒤에서,

"아, 맞다. 그거 첫날에 너 잘 때 몰래 찍어놨거든. 1일째 2일째 3일째 이렇게 찍어두려고 했는데 까먹고 그 뒤로 안찍었어."
"....."
"그리고 선생님하고 만날 때 사진찍은 거 쭉 보여줬었는데. 깜박 잊고 그 사진 안 지웠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봐 버렸다. 미안하다. 핫핫핫!"
"..........."
"근데 한국에서 선생님이 너 학교 한국어학당에 다니고 계셨거든. 그래서 내가 또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지. 얘가 거기 다닌다고 말야. 그 말하고 사진 딱 보자마자 바로 표정이 막 일그러지더라고. 핫핫핫핫핫!"
".........................-_-........++;;;"

단장 미즈우미는 홍련의 불길을 (아마도) 등 뒤에 짊어진 채로 삐그덕하며 스윽 돌아보았다.




- 안경회 일본원정단 넷째 날, 끝.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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