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아이미쨩에게는 2명의 절친이 있다.
2020년에 아이미쨩이 나와 결혼하며 세명중 첫 결혼신고를 올렸고,
나머지 두명 중 한 분이 2023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 장소는 이케부쿠로 선샤인 시티.
거기 호텔은 ‘결혼식 하객 플랜’이란 것을 제공한다기에 예약을 했다.
바닷가에서 내륙(?)까지 왔다갔다 하기도 힘들고.
대부분의 호캉스(?)가 바닷가였기에 도심 내륙(?)에서 호캉스도 한번 해보고 싶었고.
여성의 결혼식 참여, 옆에서 보면 기합이 장난 아니다.
몇날 전부터 미용실에서 깔끔하게 머리를 컬러풀하게 정돈하고, 새로 산 고급진 옷을 입고, 결혼 반지를 두개씩 끼고, 비싼 목걸이를 걸고. 한껏 멋을 부려서 결혼식장으로 GO.
일단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이미쨩은 미리 예약한 호텔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세트를 새로 받은 후 그대로 식장으로 간다고 나갔다.
일본의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초청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기에,
아이미쨩을 보낸 후 나와 요우쨩은 자유시간이라 쓰고 독박육아타임을 얻었다.
십수년 전, 럭키스타(!)의 행사 후기에 댓글을 단 것을 계기로,
또한 유학생시절 여러번 신세진 분과 만나 다시 또 식사를 대접받고..
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토미카(자동차) 장난감까지 받았다. (그뒤로 매일밤 안고잔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져서 선샤인 시티를 이곳저곳 정처없이 걸었다.
육아를 하면 차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잘 없고, 아기의 생활습관에 맞춰 식사든 수면이든 목욕시간이든 어떻게든 그때까지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그러다 우연히 그 분수를 바라보기도 하고.
(선샤인 시티의 분수대는 데레애니 미오붐의 장소이기도. 아쿠아가 여기서 스쿠페스 행사를 갖기도 했다.)
밤 8시 근방…
요우쨩은 자야 할 시간.
매일 하던대로 씻기고, 책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수면의식을 마친 후 무난하게 재웠다.
요우쨩이 잠들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자유시간이다. 육아퇴근.
불은 켤 수 없고 방에서 나갈 수도 없으니 맛폰을 만지작거린다든가, 동영상을 보든가,
혹은 혼자 어두운 방안에서 콜라를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본다.
언제나 보던 바다의 풍경과는 다른 도심의 풍경.
이제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한 해를 쭉 돌이켜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3일에 한번, 나는 요우쨩과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일본의 흔한 타워맨션은 각층마다 쓰레기 스테이션이 설치되어 있고,
각층의 주민들이 쓰레기를 갖다 놓으면 업자가 1층으로 수거해가는 시스템이다.
집에서 나와 실내의 복도를 걸어 쓰레기 스테이션까지 가는 길.
내가 “저쪽!”하면 요우쨩도 “저쪼!”하고 안되는 한국어를 따라하며 졸졸 따라온다.
큰 쓰레기는 내가 던져넣지만, 리사이클 쓰레기는 요우쨩에게 직접 버리게 시킨다.
캔을 쥐어주고 캔박스를 가리키며 ‘뽀이!’하면 요우쨩도 ‘뽀이!’하고 캔을 박스에 던진다.
금방 쓰레기통을 비우고, 다시 복도를 반대편으로 집까지 돌며 의문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커브에 숨으면 내가 쫓아가서 얼굴을 들이밀면 요우쨩이 배시시 웃으며 꺄르르 웃고 도망치고, 내가 다시 숨으면 요우쨩이 쫓아와서 에헤헤 웃으며 나를 발견하고.
나는 그렇게 요우쨩과 함께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을 위해 지금껏 노력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해보면 황당한 소리에 불과하다.
러브히나와 만나 홋쨩의 명령을 받들어 일본어를 공부했다. 교환유학을 통해 러브히나의 상징교와 진검 승부를 벌였다. 우여곡절과 방황 끝에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이름 정도는 알려진 그럴싸한 대기업에 들어왔다. 북큐슈에서 4년을 살았다. 도쿄로 돌아왔다. 이벤터의 시대를 동료들과 개국했다. 주식에 자금을 꼴아박고 경영진에게 한국내한을 건의하고, 아이미쨩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요우쨩과 만나고,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탈탈 털어넣어 키우고.
그 수많은 시간들은 그야말로 대천사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분투한 천로역정의 나날들이었다.
그 결론이 ‘아들과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위해서’라..고?
이십대에 넌 아들과 쓰레기 버리러 다녀오는 날을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어,라고 하면 아마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
집에서 나와 쓰레기 스테이션까지 끽해야 수십미터.
다녀오는데 십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들고 복도를 걷고, 아들은 나를 졸졸 따라오고.
캔을 쥐어주며 “이건 캔이야, 캔! 그러니까 여기!” 하면서 통을 가리키면, 요우쨩이 “뽀이!”하고 던져넣는다.
나는 박수를 치며 칭찬하고.
돌아오는 길에 숨바꼭질을 조금 하다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케부에서 잠든 요우쨩을 곁눈길로 바라보며 또한 창밖의 도쿄야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의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바랐던 행복은,
내가 꿈꾸었던 행복은,
커리어적 성취를 이루는 것도 아니요,
남들보다 높은 자산과 비싼 부를 거머쥐는 것도 아닌,
단지 아들과 2-3일에 한번 쓰레기를 함께 버리러 다녀오는 그 짧디짧은 수십미터 십여분의 시간을 위해서.
그런데도 ‘그것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하고 납득이 갔다.
30대를 마감하고 내년으로 40을 맞이하는 내가 맞이한 결론.
이 시즌이 되면 엑쓰(..)에는 한 해를 돌이켜보며 스스로의 추억과 이루어낸 것들을 회고하는 분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역대 한해를 마무리하는 에세이가 그랬듯이.
그런데 2023년, 30대의 마지막 해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올해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해낸게 없는 것 같다.
이젠 꿈과 희망과 목표 같은 것은 사라지고, 단지 하루하루 업무를 해내고 육아를 마칠 뿐인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그것이 바로 올해의 전부일까.
그럼에도 허무하거나 아쉬움은 딱히 없다.
‘그것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물론 이것이 언제까지고 이어지진 않는다.
어차피 한 십년뒤 정도쯤 되면 요우쨩도 아빠보단 친구들이랑 노는게 더 좋을 나이가 곧 올 것이다.
그쯤 되면 지금은 중단한 해외출장, 저녁시간 등을 다시 활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한 십년...가족과 함께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전념한다.
그래,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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