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별다방[Starbucks].

별다방에 처음 가본 것은 군에서 복무하다가 휴가나와서, 교보문고 대구점에서 책을 사고 잠시 보려는데 앉을 데가 없어서 붙어 있던 찻집에 들어갔습니다. 

커피를 한 잔 시키려고 보니 가격대가 끝내주더라고.

웨이트리스 : 주문하시겠어요?

그래서 그냥 커피를 주문하려고 메뉴판을 봤는데, 가격은 끝내주게 다 비싼 것들인데, '그냥 커피'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일 값이 싼 에스프레소를 시켰고, 결국 그날 에스프레소란 커피가 어떤 종류인지 뼈에 사무치도록 확실하게 각인한, 그런 겨울날의 과거가 있습니다.

그땐 별다방이 뭔지도 몰랐는데, 제대하고 우연히 그 카페 보니까 거기가 바로 그 유명한 별다방이더군요.

최근에 학회 준비를 하면서 어떤 교수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세현 : 어디서 뵐까요?
이 교수 : 거기 여의도역 근처에 보면 스타벅스가 있을 거예요. 거기로 오세요.


그래서 부팀장 자매님과 별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믿는 사람 골룸)

여하튼 부팀장과 교수님과 세명이서 앉아서, 학술 세션과 학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진 것이 2주 전 토요일의 이야기. 초빙은 이쪽에서 했지만 그래도 팀장이 아직 학생이니까, 하며 교수님이 사 주셔서 감사히 커피 석 잔과 빵 두 개를 시켰습니다. 그 가격은, 1만 7천 5백원 = 반달치 점심값 

살다 살다 이런 비싼 커피를 다 먹어 보다니, 파워샷 에리스를 데려가지 않은 게 통한.

오늘 낮에 정기적으로 갖는 그룹장회의, 에서 정식 보고가 끝나고, 뒷풀이 겸 잡담을 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세현 : 그래서 제가 그날에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별다방에 가 봤거든요!

그러자 듣고 있던 자매님들이 빙그레~ 웃으면서,
그리고 서기 자매님이 하신 말씀

"와아~ 역시, 귀엽다!"



스타벅스에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간 남자는 귀엽다는 논리가 통하는 건가?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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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다녀온 럭셔리 화학공학과 총MT, 다녀와서 모임 후기 쓰는 식으로 MT후기를 적었다가 우수 MT로 선정되어 도서상품권을 받았다, 는 얘긴 4월 중순에 했었죠.

그리고 지난 달, 즉 5월 말쯤에 선형대수를 끝내고 나오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유세현 : 미즈우미입니다.
과사 : 네, 화학공학과 사무실인데요. MT 후기 쓰셨던 분 맞죠?
유세현 : 맞습니다..만?
과사 : 그 후기를, 이번에 화학공학과 동문회보 내는 데 실으려고 해요. 괜찮겠어요?

유세현 : 뭐, 그리 잘 쓴 글도 아닌데 그걸 갖다가 실어도 될까 모르겠네요^^;;;
과사 : 대강 글만 편집해서 저희들이 올릴게요.
유세현 : 그럼, 기왕에 제 글이 올라가는 거니까.. 회보 발간되면 한 권 얻을 수 있을까요?
과사 : 네, 6월 말쯤에 오시면 드릴게요.


해서 어제 찾아가서 받아왔습니다.

과마다 동문들의 주요 사항 혹은 행사, 기념사항 등을 적어서 출판되는 화공과 회보. 이 회보는 학내에서 화공과를 졸업한 선배님들께 우편 등으로 발송됩니다. 선배님이라고 하니 단순하지만, 주요기업의 CEO와 석유회사의 연구부 회장, 감사, 총무이사 등 고위직이 많아서 말이지요. 현 과학기술부 총리 겸 장관도 이동네 화학공학과 출신이니. 그나저나 그런 분들이 보는 회보에 내 글이 올라가니, 호오 영광스러워라.. 어떻게 편집이 되어 있을까?

하고 촥 펼쳤습니다.


대략 세 페이지 정도가 할해되어 제 MT 후기가 실려 있는데..

.....

화학공학과를 대표하는 동문 회보에 '케로로 중사' 같은 단어를 실은 사람은 아마 회보 발간 처음이 아닐까 잠시 헛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것까지 수정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싣다니, 과연 화공과로군 (먼바다)


뭐, 그나저나 전체적으로 읽고 나서야 저는 제 글에 심각한 가위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응?] 원래의 제 글 본문에 적혀 있던 문단이 하나 사라진 겁니다!



저는 10조였는데 자는 방에는 7조가 주로 있더군요. 쇼파에 앉아서 두세명 있는 7조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뭐 마실 거 없나.. 하고 돌아보니 물이 없네요.

“밑에 슈퍼 있으니까 거기서 사마시면 될 거 같네요.”

겨우 물 먹는데 돈까지 써야 되나. 저는 가방을 뒤져 봤습니다. 몇 개 있을텐데.. 하고 찾아 보니, 결명자차의 티백이 나오는군요. 차를 끓여 마시기로 하고 주방에서 주전자를 꺼냈습니다. 물을 붓고,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손을 얹고, 주문을 영창.(?)

“㎃㎂㎉앗뜨뜨뜨뜨㎧㎡㎂㏀열열열㎐㎒㎻㎕열나열라열나열라㎌~!!”

다시 뚜껑을 열어 보니 미동도 없는 물이 찰랑거립니다. 으음, 역시 지금의 나의 실력으로는 아직 마법을 쓸 수 없구나. 별 도리 없이 주전자를 가열기 위에 올려놓고 불을 당겼습니다.


.....분명히 원래는 제가 이렇게 써서 후기를 올렸는데,
이 문단이 통째로 사라진 겁니다.




핫핫핫, 짐을 웃기다니, 잡종!!


정의의 마법사(正義の魔法使い)가 되기 위해 심지어 총MT에 가서조차 사그러들지 않는 정성으로 마법을 수련하는 저 필수적인 장면을 빼먹다니! 어떻게 된 거야 이게-!!!

편집을 과사에서 알아서 적당히 했다고라!?






[저기 말이야, 진지하게 지금 저 마법 부리는 장면이 MT후기에 들어갔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당연하죠. 언젠가는 MT후기 정도가 아니라 논문이나 연구업적 등이 실리는 날이 와 주겠지.. 그땐 반드시 저 마법영창 장면을 넣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는 바입니다.

내 말이 맞잖아요!

어이, 거기! 고개 돌이지마! 정신병원에 전화하지마!
내년부터 진정한 정의의 마법사가 될 거란 말이야아아아아아-----!!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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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 있지.]

무슨 의미입니까, 그건-!?


http://www.orsay2007.co.kr ← 오르세 미술관전 공식페이지

프랑스의 3대 미술관이라고 하면 고대의 루브르 박물관, 근대의 오르세 미술관, 현대의 퐁피두 센터를 말합니다. 이중 오르세 미술관은 산업혁명과 전쟁 등이 맞물린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도심을 가르지르는 세느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철도역사로 쓰던 것을 뜯어고쳐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비록 전시하는 작품들의 시기는 짧지만 자연주의, 인상파, 나비파 등 근대미술의 주요 시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번 오르세 미술관전은 바로 그 오르세 미술관에서 주요 작품들을 선별하여 한국에 실어 와 일반인에게 공개.. 란 것으로, 4월부터 9월까지 개최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꼭 가고 싶었는데 다행히 수요일은 계절학기가 없는 고로. 오후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3호선 남부터미널 역에서 내려 예술의 전당을 향해 걷던 중, 벽돌담이 멋져서 한 컷.



횡단보도 건너기 전.


미술전을 여는 곳은 이곳, 한가람 미술관의 3층.



일반인 입장가격은 1만 2천원이지만 할인권의 출력본을 제출하니 단체가격으로 할인해서 1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3천원 주고 설명이 든 녹음기도 대여하고. 5천원짜리 화보도 구매하고. 이제 들어가려던 차에, 오후 2시부터 지하1층에서 오르세 미술관전의 설명회가 있다기에 얼른 다시 내려갔습니다. 가보니 대부분이 아가씨들이고, 아이 셋을 데려온 어머니 한 분, 수녀님 두 분. 남자 어른은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설명해주는 분이 미술 전공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40분간 오르세 미술관전에 관한 명쾌하고도 멋진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강의(?) 들으면서 화보에 필기한 내용.



이제 3층으로 다시 올라가서 표를 끊고 들어갑니다~ 다~ 다~!


......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당시에 고아가 된 어린이들이 소년병으로 차출되어 군악대에 있는 경우가 많았더라,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림자가 별로 없는 평면적인 구성.


빈센트 반 고흐의 '고흐의 방'. 평생을 혼자 고독하고 외롭게 지낸 그인지라, 쌍을 이루는 물건들이 그의 마음을 잘 드러내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럼 난 이제 미소녀 피규어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지내게 되는 건가? [야--;]


폴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화가의 자화상'이라던가. 고갱의 일생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부터 쭉 느꼈지만, 그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주인공 사이코화가(?)는 바로 이 사람이 모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나 원시적인 파라다이스를 구상하며.. 왠지 맞는 것 같기도 한데.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천지창조의 벽화는 불태웠다고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고갱 말고 달과 6펜스의 사이코 화가가.


르누아르의 작품, '줄리 마네'... 그야말로 바비 인형? 참한 미소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도 그럴 듯이, 르누아르란 사람은 평생을 오로지 미소녀를 그리는 데 열중했다고 합니다.

(....) [....뭐??]


아니, 진짜라니까.

일설에 하도 미소녀만 그려대니까 비판이 있는고로, 이 사람이 대답하기를 세상에 너무 추한 것 투성이인데 그림이라도 미소녀를 그려야지! 라고 했다던가 뭐라던가.

이 사람도 100년만 늦게 아시아에서 태어났으면 분명 덕후의 길로..



그리고 가장 유명한 명작,




밀레의 '만종'



...
..
.


제가 처음으로 밀레의 ‘만종’을 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1996년, 신문의 예술 섹션에 나온 그 만종을 들여다보고 있는 저에게 어머니 햇살님께서,

“아들아, 이 그림이 밀레란 사람이 그린 만종이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이켜보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마음가짐은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냈을 때 우러나올 수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런 자세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단다.”

그리고 12년 후의 초여름에,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밀레의 만종의 진짜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12년. 그때의 저는 12년의 시간이 흘러 이렇게 만종의 원본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지요.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어린 나의 눈동자에 과연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을까. 18년 전부터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갖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을 하고 있지만. 정신을 온전히 추스르고 바르고 옳은 마음을 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너무도 인간인 나 스스로가 악으로 물든 존재인 탓에. 언제나 가야 할 똑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항상 아침에 결심한 것과는 동떨어진 하루를 보내며. 무언가 부족한 느낌에. 아쉬움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다시 침대에 몸을 뉘이는. 그리고 나면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한동안... 10분 정도를 못박힌 듯이 작품 앞에서 멍청~ 하게 서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리고 지금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너무도 겹쳐 보여서. 챠오 소렐라의 시마코는 신앙심으로 경건하게 성화를 바라보았는데, 저는 제 모습에 한탄하며 작품을 보고 있군요. 이 대조가 너무도 가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나는 순수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 더 이상 아쉬운 하루하루를 살지 말자. 행복과 줄거움에, 그리고 하루를 돌이켜보며 스스럼없이 이 하루를 살아온 자신에게 뿌듯함을, 그리고 이 하루를 주신 신께 감사함을 갖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나날을 지금부터라도 살아가자. 강렬한 감동과 그런 결심을 하며 미술관을 나왔습니다. 만원과 오후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은 미술관람이었네요. 여러분들도 기회 닿으면 꼭 가보시길.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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