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최고봉 양밍산(1,120m)의 등정 기록.

타이완 최고봉 치고는 버스길이 잘 되어 있어서 난이도는 매우 낮음.




지난 7월의 Anime Expo에서 로스앤젤레서의 런연 캐니언 트레킹이 제법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에..

킹 레코드 타이완 공연 참여차 출국하면서 등산 계획을 세웠다.


런연 캐니언처럼 타이베이시 근교에 있으면서 2-3시간에 다닐 수 있는 적절한 산.

찾아보니 양밍산이라는 곳에 최고봉이 있다더라.


버스와 전철 등으로 경로를 검색해 보니 반나절 정도로 다녀오기에도 적절.

고로, 스포츠웨어를 챙겨들고 등산을 나섰다.


타이완에 입국한 것은 킹 레코드 타이완 공연 하루 전인 9월 29일.

이날은 태풍의 영향으로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구름이 끼어 있는 등 야외활동엔 적합치 않아서

근처 온천지역을 다녀오는 것으로 관광을 대신했다.


다음날 킹 레코드 타이완 공연 당일. 날이 화창하다.

유스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양밍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줄지어 서 계신 어르신들.

이곳도 어르신들이 등산을 좋아하는군.



양명산까지는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260번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양명산기슰에서는 산을 순환하는 108번 버스를 타고 등산입구까지 이동.

60타이완달러 하루 패스도 있다지만 나는 2-3번 탈 것이므로 그냥 회당 15타이완달러를 지불.




108번 버스를 탈 때 행선지를 잘 화인해야 한다.

잘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고.

타면서 "쇼유갱!?"하고 물으면 기사님이 끄덕끄덕인지 도리도리인지 보면 알 수 있다.






쇼유갱 등산입구.

이곳에서 정상을 넘어가는 종주코스로 계획을 잡았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부글부글 끓는 유황 등을 구경.

맨 아래 사진에 유황이 끓어오르고 있는 웅덩이가 보인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지진인지 산사태인지가 일어나 쇼유갱 등산입구는 폐쇄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등산을 포기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지도를 꽁~하니 쳐다보다가 살짝 둘러서 다른 루트로 오르기로 결정.


양밍산을 순회하는 108번 버스를 다시 타고 몽환호수 등산로 입구로 이동했다.





몽환호라는 이름의 등산입구로 가파른 길을 걸어가다 보면 이러한 시설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의 시작.


사실 등산로가 워낙 잘 닦여져 있어서 초등학생이라도 오를 수 있을 듯.

시멘트 포장길과 계단을 슬 슬 걸어다가 1시간 즈음 뒤에 정상을 밟았다.










다사홈 타카님께서 집들이 선물로 주신 요우쨩을 데리고 산 정상에서 가벼이 둘러보며.

항상 그렇듯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를 올렸다.


겨우 일주일 전에 킹슈라 도쿄돔을 참여 후

이렇게 인생 3번째 타이완에서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리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하였으니,

위대한 선배들이 이로서 증거를 받았다 하신 말씀을 따라,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언젠가 제가 받을 미래를 알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배낭 속에서 물을 꺼내어 캡을 열고 꼴깍 꼴깍 마셨다.

몸에 스며드는 물을 느끼며 손에 페트병을 쥔 채로 앞을 바라본다.

저 언저리에서 킹 레코드의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련가.






그 뒤로 하산..

워낙 길이 잘 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바람은 다소 거센 편.





버스와 전철을 타고 타이베이 메인 역으로 돌아와,

평온하게 점심을 챙겨먹고 짐을 찾은 후 킹 슈퍼 라이브 타이완 공연에 참여하였다.


해외원정 등을 떠나면 어떻게 관광을 하면 좋을지 항상 고민했지만,

이걸로 어디론가 원정을 갈때마다 아웃도어를 한판씩 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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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 Haruki Murakami.




도쿄로 상경한 것이 작년 4월.

5월부터 벽에 와타나베 요우의 수영복 사진을 걸어놓고 

"난 네게 지지 않는다!"는 삿대질과 함께 제대로 스포츠를 시작했다.


빈 역기봉조차 힘겨웠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75kg의 역기를 어깨에 메고 스쿼트(앉았다 일어서기),

수차례의 천미터급 산행과 트레킹 완주,

하프 마라톤 90분대 클리어 등을 이루어 냈다.


체중이 68에서 63으로 내려갔고,

가끔 1kg의 고기를 들 때마다 내가 이것의 5배의 감량을 했다니

야하타에서 내 배에 붙어 있었던 것은 뭐였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만 마셔도 변동하는 kg보다 줄자로 재는 허리둘레.


올 여름에 양복 바지를 다 들고가서 30인치로 몽땅 줄였으니 충분한 목표 이상의 결과는 내었다고 본다.


나이 삼십대 중반이면 이미 청년이라 부르기 힘든 연령대이고,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성장을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면서 잊혀지지 않는 질문.


언제까지 근력과 지구력을 단련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며 내 몸은 어떻게 바뀔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주었다.

미래의 나를 이 책을 통해 미리 살펴보았다고 하면 과한 이야기가 될까.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르되,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 두번째는 집중력. 세번째는 지구력.

몸 운동은 머리 단련이나 성격과도 이어진다.


“금욕적이고 절제된 규칙적인 삶”

내게는 청교도의 생활습관이 진하게 묻어 있다.


모차르트처럼 모든 능력을 빛내며 산화하고 스러지는 삶은,

뭐, 인류 역사상 가끔 있었다고 치자.

나는 그쪽은 아니다.


그러므로 평범한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매일 반복해서 계속 진행해가는 것밖에 별도리가 없다.


역으로 치자면 그게 다른사람들은 인식치 못하지만

나의 진짜 능력일지도 모르지.



* 호리에 유이님의 내한과 겹쳐서 누마즈 마라톤에서 사퇴한 것이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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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2018년 7월 초, 회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인사실장“츠키시마에서 결혼도 안하고 뻗대는 독신 귀족들에게 알립니다.

 회사에서 확보중인 기숙사 방이 모자라니 내년 2월까지 위에서 10명의 목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방 빼!

그래! 이 메일 읽고 있는 바로 너!!”


...


이리하여 아닌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사내명령으로 나가는 것이니 이사비용과 초기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한다.

일본에서 기숙사 아닌 일반 맨션으로 이사라는 좋은 사회경험(?)을 남의 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작년, 2017년도에 상경하여 츠키시마에서 1년 반을 살았으니, 슬슬 생활 패턴을 바꿔보고 싶기도.




2019년 2월까지 있어도 되었지만, 어차피 나갈 거라면 미리 나가는게 좋겠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2011년도 도일 후 7년을 내리 기숙사에서만 살았으니까.

일반 맨션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정말로 처음이다.


심사숙고 끝에, 

아래 3개 지역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후보.1 아키하바라로 이사해서 μ’s 리더 코우사카 호노카쨩의 이웃사촌이 된다.



・후보.2 누마즈로 이사해서 Aqours 최애캐 와타나베 요우의 이웃사촌이 된다.




・후보.3 오다이바로 이사해서 니지가사키 (ry


[무슨 후보가 그따구냐!?][각주:1]


아키하바라, 오다이바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누마즈'라는 선택지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누마즈는 상당히 유력한 이사지 후보였다.


상한선 10만엔의 회사 통근 교통비 지급 조건을 충족. (누마즈↔회사 신칸센 통근비는 약 8-9만엔)

산천을 달리며 자연과 아웃도어를 즐기는 성격에도 누마즈는 일치함.

요우쨩의 이웃사촌이 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조건(...응?) 등.


실제로 7월 니시이즈스카이라인 트레킹을 마친 후,

누마즈 역세권과 요우쨩 집(=오란다관) 근처 맨션 주변 환경을 체크하고 다녔다.


당시 몇 번 누마즈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에 참여한 것도,

앞으로 섬길 수 있는 곳인가 직접 가서 확인한 것.


트위터에서는 '한밤중의 산책'이라 이름붙인 누마즈-아키하바라-니지가사키 지역에의

7월 중순부터 한 달간의 직접 방문 및 견적을 거쳐..


8월 중순에 願いが叶う場所 -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감사 예배[각주:2]를 드리던 중,

호리에 유이님께 명령을 받아 3번째 후보 - 니지가사키로 이사를 결정하였다.[각주:3]




10월 초순에 이사하고 싶었지만 집주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한 달 먼저 열쇠를 수령하게 되었다.


니지가사키의 맨션에 들어가, 가장 먼저 성서를 펴들고 약식으로 입주감사예배.

어디로 가든지 새 거주지에 들어갈 때나 퇴거할 때는 입주감사예배를 가장 먼저 드린다, 일단은 개신교도니까.




츠키시마에서는 짐을 싸고, 니지가사키에서는 배달되는 가구를 조립하며,

니지가사키와 츠키시마를 왔다갔다하는 나날이 대략 1주일.


이사하면서 새로 구입한 가구는 침대, 매트리스, 책상, 의자, 책장.

니토리, 이케아 등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결국 라쿠텐이나 아마존에서 전부 통판으로 구입하여 조달 후 드라이버를 쥐고 손수 조립했다.


딱히 가구에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DIY 형식으로 싸게 조달하여 사용할 수 있으면 나로선 ㅇㅋ.





열쇠를 수령한 지 1주일 후, 9월 9일. 니지가사키로 이사하는 날.

싹 비우고 나니 비좁게 느껴지던 방이 제법 크게 느껴졌다.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퇴거감사예배.


츠키시마의 기숙사에서 1년 반 살았지만, 정작 이 기숙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도쿄니까 야하타보다 방 작아진건 이해하겠는데,

긴자랑 츠키치 시장 밑이라는 금싸라기땅이라 생활비는 겁나 비싸지고.

가끔 밤중에 술먹고 괴성지르는 녀석들(..)로 짜증나서. 


하지만 오다이바랑 가까운덕에 달리기도 자주 했고 

특히 오다이바, 토요스쪽 행사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던것도 이 덕이려니.

1년 반 동안 덕택에 그냥저냥 잘 살았다.


그런 것으로 잠시 묵묵히 방을 둘러보다가 열쇠를 잠그고 문을 나서며 살짝 중얼거렸다. "바이바이"




가장 먼저 벽에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오가사와라 제도 명예의 전당」부터 설치.




싱가포르에서 구입한 μ’s 최애캐 미나미 코토리쨩의 타페스트리를 현관문에 설치하였다.




그 뒤로는 줄곧 짐을 정리하는 시간.


짐을 줄여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뜻대로 잘 될지.

앞으로는 굿즈나 책을 구입할 때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듯.





처음으로 일반 맨션으로 이사하며 여러가지 일본의 행정 시스템을 겪었다.


먼저 '사례금'과 '보증금'의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개념의 공부부터.

보증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례금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그거 일본인조차 왜 존재하는지 모름" 황당한 이야기도 들었다.


열쇠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대략 2만 7천엔.

전에 살던 사람이 문따고 들어올 수 있으므로 이사할 때마다 갈아야 한다고.


한국의 많은 맨션에는 전자식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돈낭비 시간낭비 물자낭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외에 화재보험 2만엔,

2년 후 계약을 갱신할때 드는 갱신료가 한달방값.

언젠가 여기서 나갈때 청소비로 4만엔 정도의 지불이 필요하다고.


전설(?)은 들었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이사가 골때리는 나라다.


이사 후 행정 처리도 수준급.


츄오 구청에 직접 가서 전출 신고를 한 후, 

그 서류를 갖고 다시 미나토 구청에 직접 가서 전입 신고를 해야 한다.


서류 없이 마이넘버 카드에 기록으로 끝낼 수 있는데,

내 마이넘버 카드가 무효화되었다는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구청직원”님 마이넘버 카드가 죽었음”

나”?”

“고도인재 비자에서 영주권으로 바뀔때 갱신해야 되는데 안했죠?”

나”그런 안내 받은적 없는데”

“핫핫핫 입국관리국 직원이 까먹었나?그럴수도 있죠”

나“핫핫핫”


......-_-;


처음부터 새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준 서류에 끄적끄적 써서 준 봉투에 넣어 보냈더니,

이번엔 우편엽서 지불기한이 끝난 봉투를 잘못 주어서 반송되어 오고.


급한대로 내돈으로 우표를 붙여 보냈다. 머저리같은 녀석 같으니.




이사 후 다음 금요일, 다사홈과 평소 만나지 못한 다른 분을 모아 집들이.

바쁜 와중에도 세제와 휴지, 방향제랑 요우의 네소베리와 화과자를 선물해 주신 방문객 분들께 감사한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이라는 내륙 지방에서 살아온 나는

바다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없었다.


당시 바닷가까지 자동차로 3시간은 걸리는 고향에서

바닷가에 접한 도시가 그려진 일본 애니를 바라보며 어릴 적부터 대도시와 바다를 줄곧 동경해 왔던 것 같다.


이제 이곳, 마침내 나의 손에 닿은 니지가사키.

창밖을 바라보면 베란다에서 레인보우 브릿지와 소원이 이루어진 장소 - 오다이바가 보이는 곳에 정착했다.


육첩방의 좁지만 무지막지하게 비싼 일본의 첫 맨션에서,

12년 전 처음 일본에 왔을 때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매일 창밖의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대도시 중심부에서 거주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어린 시절부터 품던 소중한 꿈 하나를 이루었다.


아마, 이곳 니지가사키는 내가 독신으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삶을 소중한 추억으로 하고 싶다.







(새 주소가 기록된 영주권을 건네주며,)

구청직원“도쿄 미나토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영주권을 받아쥐며)TAHNK YOU"

...

그나저나 만약 그때 홋쨩으로부터 니지가사키가 아니라 누마즈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면,
지금쯤 나는 누마즈에서 짐을 풀고 출퇴근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면 일단 매일 아침마다 사진을 찍어 트윗하며,

"#오늘의누마즈풍경"
"#오늘의누마즈풍경"
"#오늘의누마즈풍경"

혹은...요우쨩의 집사진을 찍어 올리며,

"#오늘의오우쨩집"
"#오늘의오우쨩집"
"#오늘의오우쨩집"

.....(.....)

그리고 주하의 접근전에 당선되면, 그녀 앞에서 주민표를 펼쳐보이고 (?!)



"주하야, 내가 널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네 옆집으로 이사왔어!

이걸로 너와 난 영원히 이웃 사촌이야!

넌 내게서 평생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


친구"여봐라 이 미친 럽폭도를 당장 체포하라!"

나"농담도 못하냐"


  1. 이사 계획 후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백이면 백 전부 보인 반응 [본문으로]
  2. 러브히나를 향한 꿈을 새로 자각한, 2006 한여름 페스타 계시 12주년 기념 예배 [본문으로]
  3.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 [본문으로]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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