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 Haruki Murakami.




도쿄로 상경한 것이 작년 4월.

5월부터 벽에 와타나베 요우의 수영복 사진을 걸어놓고 

"난 네게 지지 않는다!"는 삿대질과 함께 제대로 스포츠를 시작했다.


빈 역기봉조차 힘겨웠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75kg의 역기를 어깨에 메고 스쿼트(앉았다 일어서기),

수차례의 천미터급 산행과 트레킹 완주,

하프 마라톤 90분대 클리어 등을 이루어 냈다.


체중이 68에서 63으로 내려갔고,

가끔 1kg의 고기를 들 때마다 내가 이것의 5배의 감량을 했다니

야하타에서 내 배에 붙어 있었던 것은 뭐였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만 마셔도 변동하는 kg보다 줄자로 재는 허리둘레.


올 여름에 양복 바지를 다 들고가서 30인치로 몽땅 줄였으니 충분한 목표 이상의 결과는 내었다고 본다.


나이 삼십대 중반이면 이미 청년이라 부르기 힘든 연령대이고,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성장을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면서 잊혀지지 않는 질문.


언제까지 근력과 지구력을 단련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며 내 몸은 어떻게 바뀔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주었다.

미래의 나를 이 책을 통해 미리 살펴보았다고 하면 과한 이야기가 될까.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르되,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 두번째는 집중력. 세번째는 지구력.

몸 운동은 머리 단련이나 성격과도 이어진다.


“금욕적이고 절제된 규칙적인 삶”

내게는 청교도의 생활습관이 진하게 묻어 있다.


모차르트처럼 모든 능력을 빛내며 산화하고 스러지는 삶은,

뭐, 인류 역사상 가끔 있었다고 치자.

나는 그쪽은 아니다.


그러므로 평범한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매일 반복해서 계속 진행해가는 것밖에 별도리가 없다.


역으로 치자면 그게 다른사람들은 인식치 못하지만

나의 진짜 능력일지도 모르지.



* 호리에 유이님의 내한과 겹쳐서 누마즈 마라톤에서 사퇴한 것이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Posted by 水海유세현
,

한여름의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2018년 7월 초, 회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인사실장“츠키시마에서 결혼도 안하고 뻗대는 독신 귀족들에게 알립니다.

 회사에서 확보중인 기숙사 방이 모자라니 내년 2월까지 위에서 10명의 목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방 빼!

그래! 이 메일 읽고 있는 바로 너!!”


...


이리하여 아닌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사내명령으로 나가는 것이니 이사비용과 초기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한다.

일본에서 기숙사 아닌 일반 맨션으로 이사라는 좋은 사회경험(?)을 남의 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작년, 2017년도에 상경하여 츠키시마에서 1년 반을 살았으니, 슬슬 생활 패턴을 바꿔보고 싶기도.




2019년 2월까지 있어도 되었지만, 어차피 나갈 거라면 미리 나가는게 좋겠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2011년도 도일 후 7년을 내리 기숙사에서만 살았으니까.

일반 맨션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정말로 처음이다.


심사숙고 끝에, 

아래 3개 지역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후보.1 아키하바라로 이사해서 μ’s 리더 코우사카 호노카쨩의 이웃사촌이 된다.



・후보.2 누마즈로 이사해서 Aqours 최애캐 와타나베 요우의 이웃사촌이 된다.




・후보.3 오다이바로 이사해서 니지가사키 (ry


[무슨 후보가 그따구냐!?][각주:1]


아키하바라, 오다이바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누마즈'라는 선택지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누마즈는 상당히 유력한 이사지 후보였다.


상한선 10만엔의 회사 통근 교통비 지급 조건을 충족. (누마즈↔회사 신칸센 통근비는 약 8-9만엔)

산천을 달리며 자연과 아웃도어를 즐기는 성격에도 누마즈는 일치함.

요우쨩의 이웃사촌이 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조건(...응?) 등.


실제로 7월 니시이즈스카이라인 트레킹을 마친 후,

누마즈 역세권과 요우쨩 집(=오란다관) 근처 맨션 주변 환경을 체크하고 다녔다.


당시 몇 번 누마즈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에 참여한 것도,

앞으로 섬길 수 있는 곳인가 직접 가서 확인한 것.


트위터에서는 '한밤중의 산책'이라 이름붙인 누마즈-아키하바라-니지가사키 지역에의

7월 중순부터 한 달간의 직접 방문 및 견적을 거쳐..


8월 중순에 願いが叶う場所 -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감사 예배[각주:2]를 드리던 중,

호리에 유이님께 명령을 받아 3번째 후보 - 니지가사키로 이사를 결정하였다.[각주:3]




10월 초순에 이사하고 싶었지만 집주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한 달 먼저 열쇠를 수령하게 되었다.


니지가사키의 맨션에 들어가, 가장 먼저 성서를 펴들고 약식으로 입주감사예배.

어디로 가든지 새 거주지에 들어갈 때나 퇴거할 때는 입주감사예배를 가장 먼저 드린다, 일단은 개신교도니까.




츠키시마에서는 짐을 싸고, 니지가사키에서는 배달되는 가구를 조립하며,

니지가사키와 츠키시마를 왔다갔다하는 나날이 대략 1주일.


이사하면서 새로 구입한 가구는 침대, 매트리스, 책상, 의자, 책장.

니토리, 이케아 등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결국 라쿠텐이나 아마존에서 전부 통판으로 구입하여 조달 후 드라이버를 쥐고 손수 조립했다.


딱히 가구에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DIY 형식으로 싸게 조달하여 사용할 수 있으면 나로선 ㅇㅋ.





열쇠를 수령한 지 1주일 후, 9월 9일. 니지가사키로 이사하는 날.

싹 비우고 나니 비좁게 느껴지던 방이 제법 크게 느껴졌다.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퇴거감사예배.


츠키시마의 기숙사에서 1년 반 살았지만, 정작 이 기숙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도쿄니까 야하타보다 방 작아진건 이해하겠는데,

긴자랑 츠키치 시장 밑이라는 금싸라기땅이라 생활비는 겁나 비싸지고.

가끔 밤중에 술먹고 괴성지르는 녀석들(..)로 짜증나서. 


하지만 오다이바랑 가까운덕에 달리기도 자주 했고 

특히 오다이바, 토요스쪽 행사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던것도 이 덕이려니.

1년 반 동안 덕택에 그냥저냥 잘 살았다.


그런 것으로 잠시 묵묵히 방을 둘러보다가 열쇠를 잠그고 문을 나서며 살짝 중얼거렸다. "바이바이"




가장 먼저 벽에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오가사와라 제도 명예의 전당」부터 설치.




싱가포르에서 구입한 μ’s 최애캐 미나미 코토리쨩의 타페스트리를 현관문에 설치하였다.




그 뒤로는 줄곧 짐을 정리하는 시간.


짐을 줄여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뜻대로 잘 될지.

앞으로는 굿즈나 책을 구입할 때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듯.





처음으로 일반 맨션으로 이사하며 여러가지 일본의 행정 시스템을 겪었다.


먼저 '사례금'과 '보증금'의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개념의 공부부터.

보증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례금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그거 일본인조차 왜 존재하는지 모름" 황당한 이야기도 들었다.


열쇠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대략 2만 7천엔.

전에 살던 사람이 문따고 들어올 수 있으므로 이사할 때마다 갈아야 한다고.


한국의 많은 맨션에는 전자식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돈낭비 시간낭비 물자낭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외에 화재보험 2만엔,

2년 후 계약을 갱신할때 드는 갱신료가 한달방값.

언젠가 여기서 나갈때 청소비로 4만엔 정도의 지불이 필요하다고.


전설(?)은 들었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이사가 골때리는 나라다.


이사 후 행정 처리도 수준급.


츄오 구청에 직접 가서 전출 신고를 한 후, 

그 서류를 갖고 다시 미나토 구청에 직접 가서 전입 신고를 해야 한다.


서류 없이 마이넘버 카드에 기록으로 끝낼 수 있는데,

내 마이넘버 카드가 무효화되었다는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구청직원”님 마이넘버 카드가 죽었음”

나”?”

“고도인재 비자에서 영주권으로 바뀔때 갱신해야 되는데 안했죠?”

나”그런 안내 받은적 없는데”

“핫핫핫 입국관리국 직원이 까먹었나?그럴수도 있죠”

나“핫핫핫”


......-_-;


처음부터 새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준 서류에 끄적끄적 써서 준 봉투에 넣어 보냈더니,

이번엔 우편엽서 지불기한이 끝난 봉투를 잘못 주어서 반송되어 오고.


급한대로 내돈으로 우표를 붙여 보냈다. 머저리같은 녀석 같으니.




이사 후 다음 금요일, 다사홈과 평소 만나지 못한 다른 분을 모아 집들이.

바쁜 와중에도 세제와 휴지, 방향제랑 요우의 네소베리와 화과자를 선물해 주신 방문객 분들께 감사한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이라는 내륙 지방에서 살아온 나는

바다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없었다.


당시 바닷가까지 자동차로 3시간은 걸리는 고향에서

바닷가에 접한 도시가 그려진 일본 애니를 바라보며 어릴 적부터 대도시와 바다를 줄곧 동경해 왔던 것 같다.


이제 이곳, 마침내 나의 손에 닿은 니지가사키.

창밖을 바라보면 베란다에서 레인보우 브릿지와 소원이 이루어진 장소 - 오다이바가 보이는 곳에 정착했다.


육첩방의 좁지만 무지막지하게 비싼 일본의 첫 맨션에서,

12년 전 처음 일본에 왔을 때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매일 창밖의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대도시 중심부에서 거주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어린 시절부터 품던 소중한 꿈 하나를 이루었다.


아마, 이곳 니지가사키는 내가 독신으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삶을 소중한 추억으로 하고 싶다.







(새 주소가 기록된 영주권을 건네주며,)

구청직원“도쿄 미나토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영주권을 받아쥐며)TAHNK YOU"

...

그나저나 만약 그때 홋쨩으로부터 니지가사키가 아니라 누마즈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면,
지금쯤 나는 누마즈에서 짐을 풀고 출퇴근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면 일단 매일 아침마다 사진을 찍어 트윗하며,

"#오늘의누마즈풍경"
"#오늘의누마즈풍경"
"#오늘의누마즈풍경"

혹은...요우쨩의 집사진을 찍어 올리며,

"#오늘의오우쨩집"
"#오늘의오우쨩집"
"#오늘의오우쨩집"

.....(.....)

그리고 주하의 접근전에 당선되면, 그녀 앞에서 주민표를 펼쳐보이고 (?!)



"주하야, 내가 널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네 옆집으로 이사왔어!

이걸로 너와 난 영원히 이웃 사촌이야!

넌 내게서 평생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


친구"여봐라 이 미친 럽폭도를 당장 체포하라!"

나"농담도 못하냐"


  1. 이사 계획 후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백이면 백 전부 보인 반응 [본문으로]
  2. 러브히나를 향한 꿈을 새로 자각한, 2006 한여름 페스타 계시 12주년 기념 예배 [본문으로]
  3.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 [본문으로]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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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시간

에세이 2018. 8. 8. 10:46

지난 5월, 서울에 들렀다.


명절맞이로 고향에 가거나, 이벤트 원정으로 서울에 가는 일이 잦아서, 귀국할 때마다 사람 만나고 다니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이번에는 거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갔다.


서울에 갈 때마다 묵는 곳은 홍차 누님의 댁.


이번에도 많은 오미야게와 현찰을 선물보따리로 가져가 풀었다.

하루종일 누님 부부와 나까지 3명이서 이곳저곳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에..

남매가 함께 거실에 퍼질러 누운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보니.. 이렇게 둘이서 얘기나누는게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같이 살 때는 가끔 이랬던 것 같기도 한데.”


도란도란 남매끼리 나누는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

교회 상황 이야기.

가족 현황 이야기.

결혼과 출산 이야기.


친구들이나 부모에게조차 하지 않는 이야기를 우리 남매는 잘 나누었다.


그리고 나와 누님은 서로가 갖고 있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들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꿈.

그러나 이루고 싶은 꿈.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꿈.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었는데도

이렇게 둘이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남매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느 틈에 거실 큰 창문 앞에 서 있는 누님.

나는 그 곁에 가 서서, 누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이십대의 누님은 내가 마사지해주는 것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주물러 달라고 어깨를 나한테 들이밀곤 했었다.




“누님.. 돌이켜보면 경상도 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성년이 되어 서울의 한복판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함께 서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잖아요?

물론 누님도 지금 잘 안되는 일이 있고, 저도 마찬가지로 잘 될지 어떨지 걱정되는 일이 있어요. 있지만…

그래도 우리들 남매는 정말 힘냈어요.”


누님께서는 약간은 여위었지만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그리고 나와 누님은 서로에게 기댄 채 잠시동안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



(훗날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국어학당 제자들, 

 "남매끼리의 대화라기보단 한 80쯤 먹은 노부부가 인생 돌이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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