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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정이 길다 보면, 그야 물론 야간열차에서 자기도 하고, 밤버스를 타기도 하는 고육지책을 쓰는 경우도 있다만... 아예 역에서 노숙을 때린 케이스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밤도깨비도 아닌 전국여행 한중간에. (?)
* 2010 한여름 페스타 21일차, JR패스 개통 12일째, 9월 14일 화요일 오후 5시
홋카이도 하코다테 역
하코다테(函館市, はこだてし)는 일본 홋카이도의 남부에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삿포로 시, 아사히카와 시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중핵시로 지정. 비교적 온난한 기후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전했고, 홋카이도 남부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으로서 발전했다. 어업과 관광을 겸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항공편을 이용하면 모를까, 철도를 이용하여 홋카이도를 향한다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홋카이도의 관문격 도시. 하코다테에서 일단 정차, 그리고 삿포로를 향하여 뒤로 달리는 구조 때문에 생겨나는 역주행(...)은 철덕들에게는 유명.
이곳에 저녁에 도착한 이유는 하코다테산에 올라가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나폴리, 홍콩과 함께 세계의 3대 야경으로 유명한 일명 백만불짜리 야경은 하코다테 지역의 명물.
철도를 이용하여 하코다테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전철과 케이블카를 한두번 갈아타는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 집어치우고 (..) 등산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하코다테역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딱 내려 주고. 첫 차의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가격은 편도 360엔.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그 동안은 역사 내에서 관광안내소를 돌아보며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후, 오후 6시. 등산버스가 하코다테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줄은 2~30분 전부터 서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 만원이 되어 타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버스로 하코다테산을 오르면서도 창가에 앉아서 야경을 구경하려면 자리 선점이 중요하다.
홋카이도 아니랄까봐 오후 6시가 되면 이미 해가 뉘엇뉘엇 기운 상태.. 하코다테 산을 오르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창밖이 캄캄하다. 아직 추분도 한참 남은 9월 중순인데 이 해지는 속도. 야경 보기엔 편하지만. 버스 안내양이 출발 때부터 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안내를 계속 해주기 때문에 들으면서 갈 수 있다. 버스 안에서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실내등은 모조리 끈 상태에서 산을 오른다. "왼쪽을 보아 주십시오~"라는 말에 고개를 돌리면 휘황찬란한 야경이 눈앞에 펼쳐져, 탑승객들의 탄성이 잠시 울린다. 캄캄한 버스 안에서 카메라를 들이대 봤자 에리스가 제대로 그려낼 수 없으므로 사진은 없다.
고3시절(2002년)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F&C에서 출시한 미소녀게임, 「피아캐롯에 어서오세요!!3」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피아3를 무척이나 하고 싶었지만 고3이었기에 수능을 치를 때까지 미소녀게임/애니메이션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무지하게 참았다. 그리고 11월 6일, 수능을 치고 집에 돌아와 피아3를 돌렸는데, 오프닝의 타카이 사야카의 방긋 웃는 미소를 보며 기어이 끝까지 참아내어 이겼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피아3에 보면 피아캐롯 4호점에서 일하던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사원연수로 홋카이도까지 가는 모습이 나온다. 어느 날 저녁인가에 다들 모여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곳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그 때까지 공략한(..) 캐릭터와 무드잡는 이벤트가 나온다. 그 곳이 어디인지 고3이던 당시는 전혀 몰랐으나...
...후, 8년 전의 추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그 시절 미소녀게임으로 보았던 야경의 모습을 나는 지금 현실에서 보러 가노라.
* 2010 한여름 페스타 21일차, JR패스 개통 12일째, 9월 14일 화요일 오후 6시 50분
하코다테산 정상
좌우 양쪽으로 바다가 둥글게 자리잡은 가운데로 마치 거대한 대로가 난 듯한 야경의 모습에 관광객들이 저마다 탄성을 멈추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소년소녀들이 선생님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연인들이 서로의 감상에 젖어 야경을 바라보는 모습 곁으로, 홀로 서서 피아3의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것이 올해의 마지막 성지순례인가."
짠~한 피로가 온 몸을 감싸도는 가운데, 이 명경을 알게 된 경위도 피아3이고. 피아3라 하면 고3때 그토록 솟구치는 충동을 억눌렀던 고3 수험생 시절이 떠올라 망연하다. F&C는 피아3 후속작도 여럿 두었으나 전부 참패를 면치 못했고, 플레이어들도 사실상 피아캐롯 시리즈의 마지막을 피아3로 인정하는 막장의 상황.
이미 합격자 발표는 났고, 조만간 내려가서 결과를 보게 된다..
'그로부터 벌써 8년이라.'
많은 시간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극일부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여러 사람이 교체되어 지나갔다. 많은 일을 겪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야경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 곁으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전망대에서 하코다테산 캐러멜 등의 기념품을 몇개 구입한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하코다테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이 노숙날이었다.
* 2010 한여름 페스타 21일차, JR패스 개통 12일째, 9월 14일 화요일 오후 9시
홋카이도 하코다테 역
진짜로 이 날은 하코다테역에서 노숙을 했다. 여행일정이 길다 보면, 그야 물론 야간열차에서 자기도 하고, 밤버스를 타기도 하는 고육지책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역에서 노숙을 때린 케이스는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밤도깨비도 아닌 전국여행 한중간에.
방금 전에 하코다테산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고, 홍차 누님께 드릴 캐러멜을 선물로 사서 내려온 것까진 좋았다. 하코다테역에 돌아온 시간은 대략 오후 8시. 그리고 이어서 타야 할 아오모리행 하마나스 열차는 오전 3시 22시에 하코다테역을 출발한다... 어?
.....
하마나스는 전날 밤 22시에 삿포로를 출발하여 새벽 3시경 하코다테를 거쳐 아침 5시 39분에 아오모리에 도착하는 야간급행 열차. 중간 경유지까지 올라가볼까, 해도 이미 거기까지 가는 열차는 다 끊긴 시간대. 하코다테역 근처 PC방(넷카페)에라도 가서 쉬다가 나올 생각이었는데 역근처엔 전혀 없다고. 시내에 있다나.. 하지만 시내에서 PC방 갔다가 새벽 3시에 다시 하코다테 역으로 돌아오는 버스나 전철이 운행할리도 없고. 그렇다고 저 앞에 보이는 으리으리하고 고급으로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서 비싼 돈 내고 자는 건 둘째 치더라도 새벽 3시에 체크아웃하겠다고 카운터에 들이대는 것도 그렇고.
결론, 그냥 역내 대합실 벤치에서 누워 잠을 청했다. 아침형 인간이고 피로도 쌓여 있었겠다, 9시부터 벤치에 누워 쿨쿨~ 자다보니 옆 벤치에 노숙자가 서너명 와서 같이 자고.
.....
다행히 여름이고 벤치가 실내에 있어서 춥지는 않았지만, 겉에서 보기엔 완벽한 걸인.
나중에 학회에서 그 얘기를 하니까 한참을 웃던 아가씨들이 묻기로,
"노숙자가 여기 내 자리야! 하고 쫓아내진 않았나요?"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일본 노숙자들에게도 자리싸움은 있나보군.
* 2010 한여름 페스타 22일차, JR패스 개통 13일째, 9월 15일 수요일 오전 3시
홋카이도 하코다테 역
새벽 3시경, 아오모리를 향하는 하마나스 열차가 들어왔다. 벤치에서 쪽잠을 잤더니 피로가 덜 풀린 것은 당연지사.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짐을 끌고 비척비척 하마나스에 올라탔다. 삿포로와 아오모리를 잇는 이 야간열차를 지난 주 토요일에 도쿄에서 삿포로로 내려갈 때도 탔었다. 그때는 차량정비문제로 노비노비카펫카가 없었지만 오늘은 있다.
요렇게. 근본적인 구조는 시코쿠 타카마츠에서 도쿄로 올라올 때 탔던 선라이즈세토랑 크게 다르지 않다.
...
딱 2시간 자는 의미가 있나-!?
하도 정신이 없어서 하마나스를 꽤 대충 탄 것이 지금와서야 마음에 걸린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뭐, 괜찮다. 노숙이야 한번쯤 할 수도 있지.
...
물론 두번은 할짓이 못되는 것 같다.
Festa.11 청춘18프로젝트~일본편 (2010.08.25~09.20.)
오가사와라 제도 아침 해의 산 (2003-2010) ⓒ 正義の魔法使い, 水海 唯Se-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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