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맨 기타리스트 한류 애국(?) 성우

・미모리 스즈코와의 듀엣곡, 다카포3 오프닝 「shiny Steps!!」을 부른 아티스트

・블로그의 작성 의미가 통하는 성우




・이름 : 아이미 (愛美)

・생일 : 1991년 12월 25일 

・담당 최애캐 : 

『BanG Dream!』토야마 카스미

『D.C.III~다카포3~』 카자미도리편 OP 아티스트 w/ 미모리 스즈코



2012년 6월 발매된 『D.C.III~다카포3~』 카자미도리편 오프닝 싱글, 「shiny steps!!」

현재까지도 미모리 스즈코와 아이미의 유일무이한 듀엣곡.




2017년 8월, 방도리 4th 무도관 라이브에 한국에서 보낸 화환.

위 사진은 내가 찍은게 아니라 이토 아야사가 인스타에 올린 인증샷.




2017년 9월 10일, 싱가포르 AFA 요나키 사인회에서 칫스, 치아킹과 받은 아이미의 사인 (좌상단)

한글을 나보다 더 잘쓴다



1. 첫 만남 (현장)



내가 아이미를 처음으로 본 것이 언제인가, 하고 돌이켜보면

2014년 2월. 러브라이브 4th 라이브의 2주 후에 같은 장소 SSA에서 개최된,

THE IDOLM@STER M@STERS OF IDOL WORLD!! 2014 1일차.


그 3세대가 모인 아이돌마스터 총합 라이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성우 셋을 꼽자면,


876프로의 시크릿 게스트 토마츠 하루카

니트곡을 땡겨준 이가라시 히로미 (유킹코)

그리고 뺨에 별붙인채 일렉트릭기타를 챠랑~! 하고 등판한 아이미.



‘저게 무엇인고???’하는 표정으로 아이미를 빤~히 쳐다보다,

‘아아, 다카포3 오프닝 불렀던 그분인가’ 하고 얼굴만 대충 알아봤다.


워낙 기타의 임팩트가 넘쳐서 혹여 정신세계도 특이한 분인갑다 하고 오해(?)를 잠시 했었다.


그 뒤로 밀리마스에서는 주로 뷰잉으로 볼 일이 많았던 듯.

3rd에서 입에 피크 물고 손가락으로 쫘악 땅길 때 가장 지렸다.


외엔 역시 밀키홈즈 페저즈, 려나.

온몸에 펜라이트와 사이리움을 두르고 휘둘러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 테라카와 아이미?




그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느낌도 들지만, 

『다카포3』의 카자미도리편 오프닝곡인 「shiny steps!!」를 미모리 스즈코와 듀엣으로 불렀다.


란페스 서울에 아이타이요라는 전설의 명장면을 낳은 yozurino*는 물론이요, 미소로 시작하는 닛타 에미의 1st 싱글을 앞선 닛타 에미의 솔로곡 타임 캡슐, 사쿠라가와 메구[각주:1]의 솔로곡이라든가, 곧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는 우타이테 하나땅, 사토 히로미[각주:2]님의 기념곡, fripSide의 사토시가 작곡하고 난죠 요시노가 열창한 endless memory ~refrain as Da Capo~ 등..


당대의 다카포3의 보컬들은 어떤 의미로 당시의 tororo단장 인맥을 죄다 긁어모은(..) 듯도 하다만.


그 중 하나를 장식하는 것이 테라카와 아이미 시절 미모리 스즈코와 열창한 다카포3 두 번째 오프닝.


밀키홈즈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을 함께 했기에 아닐 것 같은데도,

지금까지도 다카포3 오프닝은 아이미가 미모리 스즈코랑 듀엣으로 부른 유일한 곡이다..




미코롱은 아이미를 '테라쨩'이라고 부른다데.

아이미와 아야사랑 미코롱이 사이좋게 TV anime 다카포3를 감상하기도 했다.
아이미는 원작의 노래라도 불렀지, 아야사는 진짜 다카포랑은 아무 관계 없다만



3. 첫 만남 (작품)


처음으로 아이미라는 인물을 인식한 것이 언제였는가 하면, 생각보다 좀 오래 되었다.

2011년 11월의 다카포3 성우진을 발표한 제작기자회견 같은 것.




뒤쪽 왼편부터 tororo단장, 아이미, 미모리 스즈코와 난죠 요시노, yozurino*

앞의 5명은 왼쪽부터 카이호 에리카, 사사키 미코이, 닛타 에미, 미야자키 우이, 오우사키 치요.


2011년 11월 당시는 다카포 관련 성우/아티스트를 싹다 긁어모은 그저 그런 단체사진이지만,

지금 저 라인업을 보면 참으로 쉽지 않은 조합이다.


난쨩은 본디 다카포2의 츠키시마 코코가 첫 메이저 캐릭터였고,

미모링은 T.P.사쿠라의 초딩 사쿠라로 데뷔했으니 그렇다고 치자.

에미쨩부터 포에링(카이호 에리카 별명)까지는 다카포3의 주연급 5인방이고.


그렇다면, 저 테라카와 아이미라고 하는 분은 어디서 갑툭튀한 뉘시옵니까? 라는 것이 당시 아이미를 처음 보았을 적의 내 인식.


지금은 단발이 트레이드 마크지만, 첫인상은 저렇듯 머리카락이 다소 긴 편이었기에, 나중에 다카포3 애니 특방으로 다시 봤을 때는 깜놀랐다. 

(트위터를 뒤적여보면 방송 끝나자마자 바로 자른 듯)






"듣는 분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불렀거든요. 다카포3와 함께 우리들이 부른 이 곡을 사랑해주시면 고마워요." - 아이미
"집에 돌아와 다카포를 하면서 두근거리는 기분을 우리 곡으로 고양시켜서.. 본편도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 미모리 스즈코


4. 방볶음의 토야마 카스미



밀리의 줄리아, 페저즈는 서브 캐릭터라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내게 있어서 아이미의 대표캐라면 역시 토야마 카스미.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게임에 손대지 않는 성격 탓에,

애니로 등판한다는 얘길 들을 때부터 기대하고 기다렸건만


방도리 애니 1-2화를 보면서 느낀 기분을 표현하기엔 필력이 모자라므로,

카스미한테 던져댄 아리사의 대사를 옮겨적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한다.


「全然わからないんですけど」

「んざけんなよ、でめ!」

「くらいぶって何よ!」

「ふーん。」

「マジかよ。」

「なんだあれ」

「わかんねー」

「だから、そのキラキラってなんなんだよ、意味わかんねよ!」  지나가던 누마즈의 귤대장「(화들짝!?)」


이렇듯 방도리에 대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아쉬움이 감탄으로 전환된 것은,

다름아닌 방도리 3화를 보고 나서.


무려 6-7분에 걸친 그 반짝반짝 작은별의 연주를 보며 토야마 카스미와 성우 아이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방도리 3화, 너무도 감동스러웠는지 후배들이 3화 보고는 리스아니 대신 3화 후반부를 다시 틀어보면서 키라호시를 웅얼거리더니, 다음날 아침에 다시 3번째로 그부분을 틀어보며 외쳐 가로되,

"파세라 가서 키라호시 넣고싶다"

에 눈물나게 웃었다.


이번 방도리 무도관에서

키라호시를 부른다 = 100점

키라호시로 3화를 재현한다 = 1000000000000점+물개박수+눈물

키라호시를 안부른다 = 사이리움 다깨고 집어 흔들며 격렬히 항의하다 스태프에게 끌려 퇴장


방도리 나레이션"8월의 무도관에선 어떤 라이브를 보내줄까요? 벌써 기대되네요"

응, 내 말이 그 말이다. 어떤 라이브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로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아.


뭐라, 방도리 애니 최고의 가치는 바로 키라호시가 아니던가. 반드시 라이브에서 키라호시를 불러야돼!


무슨 일이 있어도 방도리 무도관에는 반드시 참여하여 방도리 최고의 명곡 키라호시를 어뤤지 라이브로 듣고야 말리라 앙망합니다.

이야… 나 지금 완전 이 기분으로 들어가서 방도리 보면 진짜 최고로 정신이 해탈해서 하이한 기분이 될 것 같아. 이걸 어쩌지?




방도리 무도관에서 키라호시를 상상하고 있는 나


그래도 최소한 3화에서 키라호시라는 방도리 최고의 슈퍼갓곡은 하나 건졌으니 그걸로 됐잖아. 저는 너무 감동해서 3화를 최소 3번은 돌려봤다니까 (?)


그러나! 키라호시라는 절대적인 갓곡을 탄생시킨 이상 내게는 방도리가 더 갓이다. ()


방도관에서 키라호시 안부르면 싱가폴에 쫓아가서 아이미랑 접근전으로 맞붙고는
"너이놈 아이미 왜 방도관에서 키라호시 안부른건데!?"
하다가 끌려나가는거 아닐까

OVA에서도 키라호시 함 해주세요. 킹갓작으로 칭송하겠나이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아

아이미 인터뷰 영상도 올라온 기념으로 다시 외칩니다. "갓곡 키라호시 반자이!"

방도리TV애니 2기 발표로 키라호시 어레인지를 더욱 더 전지구 전세계에 전팧할 의무가 있음을 키다니 사장은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톱버터부터 우웃 하다가 곡시작 타이밍 놓치고 삑사리가 나더니 음정이 각기 제멋대로 가는데다 오프닝영상과 싱크로가 너무 안맞다못해 스태프가 중간에 꺼버리는걸보며 역시 방도리는 방도리에 불과(?)했나 하다가 자기소개에서 키라호시 넣어줘서 물개박수 대환희

포핑파 여러분, 무도관에서 키라호시를 부르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르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르는 것입니다.
(무대에 뛰어올라가 아이미를 노려보며)"너는 지금 키라호시를 연주하고 싶어진다."


포핑파 최고의 갓곡이며 합숙때 그것을 바라보던 단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리플레이를 3번을 시키고 다음날 한번 더 보게 만든 키라호시를 들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무도관 키라호시 무도관 키라호시 올 하일 키라호시

방도리를 좋아합니다. 키라호시를 향한 이 불타오르는 마음을 모르시겠습니까


[혹시 전생에 키라호시 못 듣고 홧병에 걸려 돌아가신 원혼이라도 붙어 다니시나요?]


8월의 무도관 라이브에서 아이미가 일렉기타를 들고 "키이라~ 키~라~ 호시요~"를 어레인지 3연타로 연주하는 내내 비명이 터져나오지 않게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길길이 날뛰다가 폭발.


지금껏 아이미의 노래를 듣고 이토록 기뻤던 적이 없었다.

(샤이니 스텝을 부르면 그즉시 게임 오버겠지만 그 가능성은 없으니)


2018년 연초에 방도리 재방을 하길래 기대를 갖고 시간 맞추어 3화를 틀었더니만,

6분에 걸친 키라호시 연주장면은 3분으로 절반이 싹둑 잘려나가고 없더라고.


......


아니 잠깐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사장님



きらきら星短くない??

おい!!!きらきら星足りねえぞ!!!!

巫山戯んなよ!!!

もっときらきら星聴かせろよ!!!!

おい!!!!!!!! (쾅쾅)




5. 요나키 식사회


2017년 9월, JGC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키나와에서 도쿄를 거쳐 싱가포르에 다녀오는 얼빠진 여행을 감행했던 그때.


위에 걸어놓은 아이미로부터의 한글 사인도 AFA에서 받은 것.


AFA라는 행사에 붙여서 요나키 식사회라는 곳에도 발을 붙였다.

치아킹과 칫스님과 아이미랑 접근전 정도라 아니라 아예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사.


당시 마더미리아님 등 원정오신 많은 분들께 신세를 졌다.




그때, 8월 방도리 4th 라이브에 참여했던 한국에서의 화환 사진을 직접 성우 본인에게 들이대고 보셨는가 어떠한가 확인황당한 인증법(?)에, 아이미가 봤다고 아주 그냥 침이 마르게 칭찬해 주었다.


여하튼 그 뒤로 아이밍과 다들 찻잔으로 몇 번이고 건배로 잔을 맞부딪히든가,

본인 접시를 받아다 달라는대로 반찬을 떠다가 진상해드리며 생각하였지만.


성우라고 떠받치고 우상시하는 것도 뭐 나쁘진 않지만,

때로는 그저 무념무상으로 함께 사람으로서 어울릴 때 사람의 진가가 또한 느껴진다...


그런 의외로 초탈한(?) 기분을 느꼈다.





갓 애국 마케팅, 아이밍의 강남 스타일 (?)



6. 블로그를 읽는 즐거움이 있는 성우


아무래도 성우들은 바쁘고, 빨리 정보를 전해야 하는 나머지 인스타, 트위터가 주류가 되었지만, 

성우 블로그를 구독해서 읽고 있는 나에게 있어 읽을 만한 블로깅을 하는 드문 성우.


한날 아이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블로그를 매일 쓰려는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건 말이야,

어떤 것도 감정도 

그 일순간 느낀 것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중요한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니까

이렇게 매일 적어두면 나중에 기억할 수 있으니까.


잊어버리는 스스로가 싫었어.


하지만 사실은,

이대로 전부 잊어버리고 싶은 때도 있어.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한 번 믿어보자고


무언가를 기억해내고 싶을 때

기분과 감정을 기억해내고 싶을 때

기억해내지 못하는 쓸쓸함과 허무감.

마치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그런 건 싫으니까

이렇게 매일 행복한 기분을

남겨두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 아이미「まいにちのこと」 (2017/9/25)



하츠네섬의 역할은 이미 데이터베이스.

교류와 인스턴트 메시지가 중심인 트위터로 중심은 넘어갔지만.


제법 블로깅에 익숙해진 나조차 한 포스팅당 30분~1시간은 너끈하게 걸린다.

그걸 방문객은 10-15초면 다 읽을 수 있다.


"블로그도 하고, 여유있네? 시간도 많네?" 같은 반응도 꽤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테마를 정해서라도 블로그를 계속 쓰려고 하는 것.

무언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해서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


그 내용은 삶의 목표에 걸맞게 해피하고 즐거운 것으로.

그 목적은 누군가가 보아 주고 리플을 달아주길 원한다기보다는, 먼 훗날 미래의 ‘나’를 위하여.


이벤터가 하나의 행사를 참여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돈과 시간 물질 등은 결코 적지 않다.

그렇게 신경써서 무언가를 했다면, 자기 인생에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은가 하고.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은 어떤 일이 있었고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 스스로의 손으로 정리한 기록을 남기는 것.


즉, 블로깅에서 가장 중요한 독자는 바로 ‘미래의 나(未来の自分)’라고,

오가사와라 제도에 하츠네섬이란 블로그를 창설하던 시절부터 쭉 생각하였다.


아이미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삶에 항상 좋은 일이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

다 잊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긴 한데...

그럴 때 오히려 자신이 과거에 힘냈던 기록을 보며 격려를 받고자 하는 점에서,

아이미와 나는 블로그에 대한 생각이 일치한다,고 느꼈다.


앞으로도 하츠네섬은 버리지 않고 계속 운영하려 한다. 

리플이 달리든 달리지 않든, 마음이 전해지든 전해지지 않든...


'미래의 나'가 힘들고 지칠 때 격려를 받을 수 있도록.








「Limits of the Sea」 - 미모리 스즈코(三森すずこ)・아이미(愛美)
from D.C.III~다카포3~ Shiny Steps!! CW



당신이 아이미의 팬이라면,
다카포3의 오프닝 Shiny Steps!!와 그 커플링곡 Limits of the Sea는 꼭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라이브] BanG Dream!(방도리) 4th 공연 Miracle PARTY 2017 

・아이미「ダ・カーポ!」 (2011/11/18)


※ 이 토크는 순전히 개인적 감상에 의한 것입니다.


  1. 방도리의 로제리아 드럼담당 그 메굿치 맞다. 즉, 러브라이브의 키라 츠바사 성우. [본문으로]
  2. 주식회사 S의 그 히로미 사장님. [본문으로]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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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고 하는 나라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 라면 지금껏 딱히 흥미가 없었다고 할 듯.


인구가 많다. 잠재적 성장. 세계의 공장. 여러 수식어는 있지만 직접 가볼 생각이 드는 곳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듯이, 호리에 유이님을 중심으로 성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삶에 중국이 눈에 들어올리가.


중국이란 단어를 수두룩하게 들었던 애니메이션이라면 『란마1/2』. 중국의 주천향이라는 전설의 수련장(?)에서 찬물을 끼얹으면 여자, 온수를 끼얹으면 남자라는 쇼킹한 몸이 된 사오토메 란마의 활극.(?) 그리고보니 사오토메 부자는 돈없다고 바다를 헤엄쳐서 중국으로 갔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밀입국 범죄.


이번에 아쿠아가 중국 상하이에서 팬미팅을 한다하여 투어에 당선, 14만엔을 지불하고, 무려 4번을 튕기는 4전5기 끝에 중국 비자를 발급받아 생애 첫 중국 방문을 달성하였다.


이 중국에서의 원정 이벤터 활동을 한짤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동



아침 7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나리타공항(하네다가 아니다)에 집합.
e-ticket 등이 든 바우처를 건네받고 수속을 받으며, 작년 11월에 취득한 JGC가 위력을 발휘.

VIP 전용 수속창구에서 수속을 끝내.
몸수색검사도 패스트 트랙으로 간단히.
무료 라운지에서 밥을 먹고.
좌석도 나란히로 바꿔주어.
귀국편은 공짜로 비즈니스 업그레이드까지.
맡긴 수하물은 가장 먼저 굴러나와.

SSA 코미켓길드 기지지원장 고토 군(가명)은 나랑 동행한 덕에 땡잡았다고 거듭 감사.

공항서 나오자 출구에 잠복한채 매의 눈으로 출구를 감시하고 있는.... [공안?] 아니. 중국인 럽라버들.
그 친구들, 공항 어택 성공했을까 모르겠다.

단체버스를 타고 호텔로 단체 이동.





호텔 로비에 설치된 데스크에서 좌석 티켓과 아쿠아와의 단체 사진권을 제공받았다.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고이 모셔져 있는 아쿠아로부터의 메시지 카드. 일본어다.

짐만 두고 그대로 나와 msk님, 고토군과 함께 럽라 쇼케이스를 보러 갔다.

자욱한...미세먼지인가.스모그인가 스모크인가 포그인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

“마스크 쓰자!”

그래 그거다.


2. 쇼케이스
















투어에 5,000엔을 지불하면 입장권 포함 왕복 버스를 대절해 주는 옵션이 있었지만, 자력으로 다녀오면 반값밖에 안 든다.

페어권이 있어서 동료랑 같이 약간 싸게 들어갔다.


이곳에는 당일밤 아쿠아가 와서 둘러보다가 손바닥도 찍고. 주하는 사인도 하고 갔다고.


그 후 조금이라도 상하이 관광을 해볼까 하고 향한 곳은 야경 스폿.






...하늘이 어마어마하군. 과연 대륙의 기상.


강을 따라 야경을 잠시 감상하다가 오미야게를 사고 저녁을 먹은 후 호텔에 돌아와서 일찍 잤다.



3. 백합 화환 




사진줄 대기중에 받은 중국표 요소로드 기획 팜플렛 및 콜북.

안에 있는 누마즈의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단독 화환보다 커플링 화환이 다수.


요하리리는 둘째치고 컁리캬 백합 화환 위엄 무엇!?


아리리캬처럼 그냥 나란히 있으면 그런갑다 하겠는데 모양이 하트.


논란거리는 둘째치고 좋은 구경은 했다.


4. 아쿠아도 백합




1부에서는 나나카쨩과 아이냐의 독무대(?)였다. 무려 2기 1화의 그 '공주님 안기' 시전.


의자를 가운데 두기도 전에 옆에 꺼낸 상태에서 바로 앉아버린 냐를 두고 아리샤(불확실)가,

"한시라도 빨리 안기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구만" 성대한 츳코미를 날렸다.


하여간 스테이지 가운데 의자를 두고, 냐가 앉고, 나나카쨩이 냐 밑에 팔을 집어넣고는 번쩍! 냐도 나나카쨩의 목에 팔을 둘러 꼭 껴안고. 


현장 곳곳에서 광분하는 카나마리 팬들.


제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얼굴을 두손으로 가린채 부끄러워서 부들부들하는 냐.

의외로 침착한 표정의 나나카쨩.


....


매번 뭔가 엮일 때마다 생각하는데 말이지,

저 두명만 압도적으로 장르가 뭔가 다르다.


밤부에선 아예 줄줄이 백합 스페셜.

일단 치카와 리코가 창문가 공중ET 에서 손가락 마주치는 그 장면을 선택하여 포문(?)을 열고.




이어 주하가 우정 요소로의 요우치카 명장면을 시연 요우치카의 치카리코 리벤지 매치


어째서인지 잘준비된 럽라극장판 하트빔이 연상되는 안경을 쓴 주하가 안쨩을 들입다 껴안는 순간 단말마 비명이 괴성과 익룡으로 터져나오지 못하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안슈카 요우치카를 기백번 부르짖다가,


“아, 私、もう、死んでもいいわ”



하자, 주변 일본인들이 단체로 빵터졌다. 요우치카 광팬 첨보나


요하리리도 질 수 없지 (!?)

맄이 컁 뒤에서 헤드락을 걸더니 경단을 쥐고 마구 흔들 아프겠다 

스킨십 하나하나에 아주 기절하듯 자지러지는 곳곳의 요하리리 광팬들.


후리링은 아리샤와 하코다테의 자매애 넘치는 다이루비의 장면을 시연하여 백합 스페셜의 정점을 찍었다. 


어찌도 이렇게 줄줄이 백합씬을 골라서, 이걸 무대에서 몽땅 시연해주다니.

전부 현장에서 목도한 사람으로선 참으로 감사합니다.


중국 팬미팅은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


여기까지는.



5. 집호냥이


전생에 이엣타이가를 못 외쳐서 죽은 귀신이나 원혼이라도 단체로 붙었습니까


일단 낮부 대기중.

얌전히 앉아서 멍깨리던 중국인들 영상 나오자마자,


“요옷 쌰 이쿠조 요옷 쌰 이쿠조!”

“우웃-캬하! 우웃-캬아!”

“쨔아쨔아!!”

“스키스키 다이스키 우오어우”

“리캬코 우옥 &&$$$$%%%%"(뭐라하는지 모르겠음)


대륙의 아니쿠라에 어서오세요.


아직 이 시점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집호냥표 법문경 해산물콜 요소로드. [각주:1]
요소로드가 하고 싶었던 걸까 해산물콜이 하고 싶었던 걸까



이엣타이가 박자조차 못맞추는 미숙 드리머 호냥이.



아오조라 점핑하트란게 10초마다 이엣타이가를 외칠 수 있는 곡이었던가()



대신 콜을 찌렁찌렁 외쳐달라고 VIP 자리까지 양도하려 한 상냥한(???) 중국인 럽라버.


카난레일 대실패 [각주:2]
누군가는 레일 제설작업 끝낸 스노하레라고 하더라.



대체 거기서 왜 그게 나오는건데!? (...)




어메이징이란 단어조차도 부족하디 부족할 상하이 아쿠아 아니쿠라 팬미팅.

위에 적힌 트윗이 나 혼자 겪은 일만 골라 적었는데도 이 정도.
내 눈에 안 들어온 곳에서의 정보까지 더하면...[각주:3]

얼마나 상황 중계에 다들 충격을 먹었으면 아쿠아가 중국에 있느라 트윗을 못할 동안, 아무래도 대륙적인 기상충공깽을 경험한 아쿠아와 공식이 상하이 행사는 없던 걸로 치자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퍼졌겠어 ()

다행히 일본 귀국 후 다들 트윗을 잡긴 잡았다. 
차단된 중국에서 볼수 있는진 모르겠으나.




내게는 달리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밤부 아쿠아와의 사진촬영을 미리 끝내고 입장대기줄에 줄을 서서 뒤에 있던 일본인 2인조와 잡담을 나눌 적에. 중국인 럽라버가 위 트윗처럼 서툰 일어와 영어를 써가며 집호랑이를 사과하러 왔다. 

처음엔 일본어를 체크해달라는 의미인줄 알았는데, 일본에 좀 널리 전파해 달라고 종이째로 주시더라고.
받아두었다가 일본 팬미팅 봇주에게 인계했다. 난 한국인이거든.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 발트9 뷰잉장에서도 처절한 격투(..)가 있었던 모양이라.
'우리라고 별로 중국인 욕할거 못된다'고 자조적인 일본어 트윗이 보여서, 잠시 먼산을 쳐다보았다. 스모그로 안보인다.


6. 기타


호텔에 돌아와, 작년 11월에 서울 아쿠아 팬미팅에 다녀올때 사왔던 밀키스와 안쨩쿠키를 꺼냈다.

주하랑 안쥬가 서로 포옹하는걸 본 것만으로도 이번 팬미팅은 가치가 있었다.

.....




아름다운 안슈카 봤잖아!! (정신승리중)





귀국비행기에서는 무료 업그레이드받은 인생 첫 비즈니스 클라스 좌석 앞에 요우쨩의 부채를 꽂아넣고 계속 바라보면서 왔다.





단지 요우쨩의 밝은 미소를 쭉 바라보며 치유받고 싶었다.

그뿐이야.(...)




그리고 아쿠아와의 단체 사진은, 감히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오가사와라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다.



뭐, 여러가지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주하야, MC 수고했다!





※ 트위터나 하츠네섬 블로그에는 아직 언급하지 않지만, 사실 투어의 존재 의의조차 의심케 하는 어마어마한 대형 사고가 투어 도중 있었다. 이미 일본쪽의 트위터에는 어느정도 퍼진 모양이지만, 일단 사후처리를 기다리는 중이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언급은 자제키로. 


이것도 언젠가 터놓고 얘기할 날이 올 수 있길...(물끄럼)



  1. 요소로드 실패한거 아니냐는 얘기도 보였지만, VIP 앞쪽 자리에서부터 뒤를 향하여 파란 파도가 깔끔하게 쫘악 밀려온 것만은 사실이다.좌우 양쪽 스탠드에서 사이리움이나 펜라를 다 내렸는지까진 못 봤지만 파도를 만든 시점에서 일단 성공은 했다.울오 까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있었고. 다만, 카난레일은-_-;;;; [본문으로]
  2. 스탠드를 뚫어지게 봤지만 요소로드랑 달리 파도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본문으로]
  3. 안좋은 얘기가 너무 많고 교차검증이 안되는 사실을 적으면 안되니 하츠네섬에선 생략.언급만으로도 분노가 폭발한다는 분이 많아서() [본문으로]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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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삼권분립의 원칙」과 아호 미즈우미(水海)의 기원

누나라고 부르는 유일한 성우 [각주:1] 





・이름 : 이노우에 키쿠코 (井上喜久子)

・생일 : 1964년 9월 25일

・담당 최애캐 : 

『ああっ女神さまっ』 베르단디

『おねがい☆ティーチャー』 카자미 미즈호


오랜 팬이었던 성우를 이래저래 돌이켜보는 에세이 같은 이야기.

첫 번째는 누구로 할까 고민하다가,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로 시작하려 한다.



1. 첫 만남 (현장)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를 처음으로 뵌 것은, 2006년 8월의 「TBS 아니메 페스타 2006」

출연작은 당시 TV anime로 방영되었던 『ああっ女神さまっ』


TBS 아니메 페스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 현지에서 참여한, 이벤터 활동의 원점과도 같은 행사.

( ※ 참고 포스팅 : TBS 아니메 페스타 2006 )


첫 국외 여행, 첫 일본 원정, 첫 이벤트, 첫 만남..

그 많은 흥분과 감격의 순간이 등판하는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를 바라보며 함께하였다.


"이노우에 키쿠코, 17세입니다!"

"어이 어이!"


그 뒤로는 쌍안경에 눈을 갖다 들이대고 누나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사하고 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실사판 베르단디 여신님의 현신을 보는 듯.


이시다 요코님의 오프닝곡 라이브를 들으며, 펜라이트나 사이리움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두손을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심장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2. 누나?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는 원래 2자매 중 여동생이라고.

그래서 '언니'라 불리는 것에 동경심이 있었다든가.


『란마1/2』을 레코딩하며 장녀 텐도 카스미(주하나) 역을 맡았을때 주변 성우들이 "카스미 언니! 카스미 누나!"하고 부르던 것이 그대로 안사람에게까지 정착되어 다들 '키쿠코 언니/누나'라 불렀고. 이것이 팬덤 공식 명칭으로 확대.


따라서 2017년 즈음부터 한국에 퍼진 성우를 누나라 부르는 시류와는 달리,

진짜로 '언니/누나(お姉ちゃん)'가 팬덤의 공식 명칭인 비범한 분이시다.


이에 본인도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라고 줄곧 부르고 있다. 

혹은 17세교 교주님.



3. 첫 만남 (작품)




만난 것은 2006년이라 해도,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중1이던 1997년(!)까지 내려감.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보통 베르단디 여신님으로 접했다지만,

『괴도 세인트 테일 (천사소녀 네티)』이야말로 이분의 이름과 목소리를 인식한 첫 만남이었다.


애니 자체는 KBS 더빙판으로 보았으나, PC통신 동아리에서 아는 사람이 들려준 미모리 세이라의 캐릭터송을 '사람 목소리가 이리도 좋을 수가 있나..'며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나 애니를 KBS에서 보았기에 미모리 세이라보다는 '세인트'라는 이름과 한국 성우 이현선님의 연기로 더욱 인식하고 있다. (이현선님은 2년 후 『카드캡터 체리』 신지수(토모요)를 맡으셨다.)



4. 베르단디 여신님



그리고 2000년 고1..

Original Video Anime 『ああっ女神さまっ』을 원작으로 보았다.[각주:2] [각주:3]


원판을 본 순간 베르단디 여신님에 강렬히 빠져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의 틀을 뛰어넘어 성우 이노우에 키쿠코님 본인의 앨범을 수집하며 성우 앨범을 듣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성우팬'(?)으로서의 활동 시작점이었다.


내 인생 불멸의 No.1 성우 호리에 유이님조차 당대의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한테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


당시에 '아미고동'이라 불렀던 천리안 여신님 동아리에서 다소 들락날락거렸고.

하츠네섬 제3대 프로젝트이기도 한, 「여신정보학개론」이란 자료집도 당시에 만들었던 듯.



5. 영향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여성은 30대를 좋아했다" (..) 고 말하는 근거이기도 함.


개인적으로 『ああっ女神さまっ』이랑 이노우에 키쿠코 누나가 가장 크게 미친 영향은,

대외적으로는 아호 水海, 대내적으로는 '오가사와라 삼권분립의 원칙'을 제정한 계기였다.


중학생 내내 중2병(?)에 걸려, 무엇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자답으로 고민하던 手探り状態에서, 이 만남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스스로가 목표하여야 할 것을 깨닫고, "종교-전공-취미 3대 영역은 삶 속에 조화로운 견제를 이룬다"는 인생의 시스템을 17세의 나이에 체계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봄에, 일찍부터 인생의 목표와 삼권분립의 시스템이 굳건히 선 덕에,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목표에 걸어갈 수 있었으니, 청소년기의 삶의 기틀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 할 수 있을 듯.


대외적으로는 역시 아호와 아이디.

본명보다도 더욱 유명한 mizuumiy라는 아이디와 水海라는 아호는, 다름아닌 베르단디 여신님과 성우 키쿠코 누나가 기원이다.

( ※ 참고 포스팅 : 水海유세현 (아사히) 의 기원 )



6. 그 후 


여신님 이후 내게 가장 흥했던 키쿠코 누나의 작품이라면,

성지순례의 상징과도 같은, 팀 Please!의 『おねがい☆ティーチャー』 카자미 미즈호,려나.


나가노 키자키 호수에는 성지여행으로 3번 정도 갔었다.


성지여행자들의 교류를 돕기도 하고, 숙박자가 나혼자일 때는 1:1로 평온하게 토크를 나누기도 했던,

알펜하임산정 료칸 주인마님과 성호정의 주인님은 아직 잘 계시려나..


( ※ 참고 포스팅 : 삼십대의 혼자여행을 즐기는 타당한 방법 )


2009년 8월에 코미켓 3일차 끝난 후 와일드스트로베리,라는 성우유닛(?)으로 가볍게 노래하시는걸 보러 갔었고.


2011년, 일본에 건너와서는 여신님 ODA 발매기념 토크쇼를 보러 갔었다.


그 뒤 미스 모노크롬 작중에서 KIKUKO라는 아이돌(?)로 활동하고 호리에 유이님과 이벤트 토크쇼로 뵈온 것이 현재로선 마지막.


현황은 본인도 아닌, 따님의 트위터로 종종 체크하고 있다.





따님 이노우에 호노카양과의 투샷. 

애칭이 홋쨩(...)이라 하데.. 진짜로 길잃어서 헤매다 지나가던 홋쨩과 만난 적도 있다고.


미인 어머니를 둔 덕인지 그 따님도 매우 미인이시다.


1998년에 출산휴가(?) 들어가시느라 여신님 작은 것은 편리해, 에서 잠시 다른 성우가 베르단디를 맡은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따님께서 어엿히 성장하여 같은 성우가 되실 줄이야..


나름대로 일찍 결혼하여, 따님을 낳으시고, 지금까지도 나름의 성우활동을 하시고.

어떤 의미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고 즐겁게 하고 계신 삶의 진수를 보여주는 분이라,

그런 느낌을 항시 갖는다.



내가 만약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필시 이 분을 내 삶의 모델로 삼았으리라..


남자로 태어나서 삶의 모델이 요시노 사쿠라인 것도 어떠한가 싶긴 하다만



※ 이 토크는 순전히 개인적 감상에 의한 것입니다.



  1. 진짜로 '누나(お姉ちゃん)'가 팬덤 공식 호칭이다. 상세는 후술. [본문으로]
  2. 동세대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셈으로,보통은 1992년에 출시된 여신님을 초기단계에 접했다고들. [본문으로]
  3. 여신님 자체는 1999년에 투니버스에서 한국더빙판으로 방영한걸 보았는데 그땐 아무 느낌(?)이 없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水海유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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