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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2일째, 9월 4일 토요일 오후 6시 10분
교토역
말로만 듣던 천년 고도의 교토에 도착했다.
딱히 누구 마중나올 사람이 없, 는 건 아니군. 일전에 약속잡은 교토역 중앙개찰구로 가서 두리번거리자 이 양이 나를 먼저 찾아낸다. 일본어예배를 함께 섬겼던 몇 없는 연하자매. 현재는 오사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 자매도 성격이 천연이랄까, 너무 순수해서, 대화를 나눌 때 상당히 신경을 썼다.
잠시 짬을 내어 교토타워를 구경. 숙박처를 해결해 주었으니 식사를 한 끼 대접했다. 카나자와에서 구입한 작은 오미야게 전달. 겨우 500엔짜리 과자 몇 개 들어간 오미야게를 받고 너무 감지덕지하고 있어서 무언가 미안하군. 더 비싼 걸 사올 걸 그랬나??
최근 어렵게 고생하던 직장을 옮겨서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분주한 이 양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나이가 되도록 돈 한푼 벌지 못하고 삽질(?)만 계속하고 있는 처지에 한숨이 살짝 나온다. 그 순수한 성격으로 치열한 사회인 생활을 감당하다니, 이 녀석 정말 대단하다.
격려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전철을 타고 이동. 교토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떨어진 교토 오른쪽의 시가(滋賀)현 세타(瀬田)역에서 도보 약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맨션. 이미 허가는 받은 상태. 밤길이 어두우니 이 양을 다시 역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와 씻고 침대 위에 누웠다.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전 9시 10분
비와 호수 나기사 공원
비와 호수. 거대한 담수호. 교토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단순하게 오오츠 역에서 내려 1km 정도 걸어가면 비와 호수의 나기사(渚) 공원에 닿는다. 이곳이 오늘의 아침 경건의 시간을 올릴 장소. 결코 클라나드의 나기사를 생각해서 온 것은 아니... 지는 않다. [!?]
동북쪽으로 쳐다보면 거의 수평선이 보이는 으리으리한 호숫가의 나기사 공원에서, 오늘 날씨도 휘영청 맑다. 한여름의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 아래,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교토에 무사히 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어딜 가나 일상처럼...
오늘부터 3일 동안, 교토-나라-오사카의 긴키 3지방을 돌아보게 된다. 부디 당신의 인도와 보호 아래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길 바라며..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전 11시
교토의 모 교회
교토에서 나라(奈良)선을 타고 한 정거장 가서 내렸다. 종종걸음으로 교토의 모 교회에 도착했다. 재일대한기독교.. 즉 한국인을 위한 교회라서 일본기독교단의 소속은 아닌 듯. 예배의 형식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이며, 참석하는 인원들도 거의 한국인이었다. 뒤의 스크린에 목사님 말씀의 한국어 번역을 실시간으로 비출 정도니... 이 정도면 그래, 거의 한인교회인 듯싶다.
목사님의 설교는 '접붙임의 비밀'이란 제목이었다. 더욱 풍성하고도 영양가 좋은 과실을 맺기 위한 접붙임. 그 접붙임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잘라내어 붙이는 '고통과 아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히려 접붙임에서 중요한 것은 아픔의 과정이 아니라, 그 아픔을 겪고 나서 어떻게 자라나는가, 그리고 어떤 과실을 마침내 맺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말씀의 핵심이다.
예배를 마치고, 이 양의 소개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과 이 양 어머님의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 교회에서는 예배를 마치고 함께 식사하는 곳을 흔히 '친교실'이라고 부른다. 친교실에서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와, 이거 얼마만에 맛보는 한식 ^^;;; 거절도 하지 않고, 배가 터지게 죽어라 점심을 먹고 (...) 이 양에게 커피와 보리차까지 대접받은 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새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렴. 하나님께서 너와, 네가 있는 직장에 축복을 주시기를 기원한다!"
"고맙습니다, 오빠! 오빠라면 분명 합격할 거예요!"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후 1시
교토 애니메이션 본사
TV Animation 럭키스타 21화에 보면 교토에 수학여행을 온 코나타와 유쾌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2시즌 긴키지역의 관광루트를 짤 때도 상당히 많이 참고했다. 어떤 의미로는 성지여행의 일환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아무리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장면이라 해도 갈 만한 관광지는 적절히 휩쓸고 지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따라가는 편이 편할지도.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목적지는 마침 나라선에 와 있겠다, 여기서 그냥 전철 타고 쭉 달리다 보면 그대로 코, 코나타(?) 아니, 코하타역에 도착한다.
교토 애니메이션과는 그야말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천사 반다나를 손에 들고, 럭키스타와 비슷한 포즈로 기념사진 촬영.
다만 쿄애니가 코하타 역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헤맸다. 건물이 하도 평범해서 처음에는 모르고 지나치기를 반복하다 보니... 옆에 붙어 있던 케이온! 포스터를 보고서야 알아챘으니 망정이다.
근처에 쿄애니샵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더니 여러 굿즈를 팔고 있다. 여기서 굿즈를 사는 순간 그게 전부다 제3시즌 다카포 성지순례의 시마나미 해도를 건너는 데 짐이 되어버린다. 곧 개봉하는 소실 극장판을 기대합니다~!라고 적은 방명록을 박스에 톡~ 넣고 퇴각.
풀메탈패닉! 후못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럭키 스타, Kanon, AIR, CLANNAD, 최근의 케이온에 이르기까지 고퀄리티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유명한 교토 애니메이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까네 빠네 말이 많지만, 그저 앞으로도 고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어 주길~ 하고 바랄 뿐.
자, 그럼 교토 애니메이션을 기점으로 하여, 교토역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교토여행을 시작하도록 하지.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후 2시 20분
교토역
무언가의 패러디인 것 같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4층인지 5층인지.. 하여간 높다란 교토역의 옥상(?)에 올라가 보면, 스카이가든이라 이름붙여진 곳에 무궁화가 피어 있다. 저 멀리로는 바둑판형으로 잘 꾸며진 도시의 정경.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는 것도 특징인 듯. 도쿄타워에 올라가면 돈 들테니까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자.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후 3시 30분
3년언덕길(三年坂) → 키요미즈절(清水寺) → 2년언덕길 (二年坂)
버스패스부터 끊었다. 하루 500엔. 교토에는 지하철도 있지만 거의 쓸모가 없다. 확장을 위해서 노력하고는 있으나 지하를 파면 팔수록 출토되는 유물 때문에 공사가 도무지 진행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햇볕은 쨍쨍~ 아스팔트길은 반짝도 안한다만, 한여름에 3년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려니 역시 좀(?) 덥다.
럭키스타의 말장난 개그를 떠올려가며 킥킥 웃으면서 혼자 3년길을 다 올라가자 키요미즈절의 입구가 보인다.
으리~ 으리한 키요미즈절로 들어가서 휘~휘~ 둘러보면서 걷는다.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럭키스타와 다카포2에서 모두 등장하는 나름의 성지(?).
한 번 들어봤는데, 정말 살짝 흔들리는데도 손이 얼얼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다.
저런 걸 한 손으로 쥐고 휘두르다니, 벤케이 스님, 사람이 아니시군요!?
사진촬영을 부탁해 온 일본인 연인들과 미국인 연인들의 사진을 잘 찍어 주었다. JR패스+요시노 사쿠라 인증샷을 몇 방 날렸다.
'키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라는 유명한 일본의 속담이 있는데, 과감한 결단을 내릴 때 쓰는 표현이라 한다. 참고로 진짜로 뛰어내린 사람들의 생존률은 약 10% 내외라 들었다. 웃어도 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
애니메이션 성지여행인지 문화재 탐방인지 헛갈리기 시작하는 키요미즈절 구경은 여전히 진행중.
물 세 줄기가 있어, 금전운과 학업운과 연애운이 따른다는 전설이 있다. 3줄기 전부 마시면 전부 도로아미타불이 되니 2줄기만 마시라는 얘길 들었다. 사실 그런 럭키음료수는 필요없는데 그저 공짜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매력 포인트.
줄을 서서 기다린다. 옆에 선 세라복 여중생이 친구들과 재잘~재잘. 말투가 칸토우(도쿄지역)라서 물어 보니 수학여행을 왔단다. 지금의 일본은 방학이 아니었어!? 방학 때 수학여행을 오는 학교도 있다는군. 하기사 시즌에 전부 교토로 수두룩하게 집결하면 복잡할 테니 차라리 나은가.
길쭉~ 한 양동이 비슷한 걸 내밀어 물을 받는 형식이다. 물을 샤샥 받아서 옆의 여중생에게도 떠주고, 나도 재빨리 수통에 물을 받았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여중생에게 살짝 웃어보인 후, 물을 들이켜 보니
꺄악~ 시원하다! [...감탄사!?]
그 후로는 2년 언덕길과 3년 언덕길을 왔다리 갔다리 하며, 자유로운 구경. 날씨가 너무 더워서, 녹차를 공짜로 제공하는 곳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다가, 빙수를 먹고 나왔다.
빙수 하나에 250엔.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후 5시
철학의 길
곁으로 물길이 흐르는 철학의 길(哲学の道). 니시다 키타로라고 하는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가 이 길을 걸으며 삼라만상을 논했는지 어쨌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보통은 은각사 쪽에서 걸어 내려오는데, 반대로 걸어 올라가는 루트를 택했다.
철학의 길을 쭉 따라 걸으면서... 공돌이 주제에 철학을 뭘 알겠느냐만.... 그래도 명색이 철학의 길을 걷는답시고 폼 잡고 있는데 무언가 생각할거리가 없을까 하다가.. 오늘 설교 말씀을 떠올렸다. 접붙임. 그래, 이 기회에 장래 생각을 조금 해보자.
지금은 비록 학사학위를 겨우 타낸 '백수'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10년 전 예천이라는 산골짝에서 논밭이나 쳐다보고 풍년이 어쩌고 주절대던 소년이, 지금 이곳을 다닐 줄이야 상상조차 못했으니. 과연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전개가 될지... 또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원래는 일본에서 평범하게 취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대학원까지 진학을 시도하고 있고. 정말로 석사를 마치면 사회에 나가서 취업을 하게 될지, 아니면 사회에 전혀 나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학교에서만 평생 살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주위에서도 자주 하는 말, 이미 별명이 '유 교수'이기도 하고.
이곳 제3영역권에서 포스팅하고 쓰는 1~2영역.. 즉 신앙과 학교생활의 모습은, 실제와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읽으면 웃길 법한 것만 골라서 아주 단편적으로 쓰는 것이 모든 일상을 나타낼 수도 없고. 연구를 할 때 실제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교제를 나눌 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지인들은 본 적이 없으니까.. 때문에 정확한 판단도 어렵겠지.
한국과 일본의 양국 대학원에서 각 1년씩.. 도합 2년의 연구실 생활을 거쳐봤다. 학사출신으로 조국과 외국에서 연구실 각 1년씩 2년을 경험해봤다는건, 참 보기드문 경력이라면 경력인데.. 그러면서 강하게 느낀 것이, '아.. 나는 정말 연구가 맞구나'라는 점이고.. 또 각기 연구실에서 쑥스럽지만 칭찬에 스카우트 제안도 많이 받았고 해서 감사하게 느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값어치가 있으니까.
아직 학사를 갓 졸업했을 뿐이다. 대학교 학부졸업이란 건, 엔지니어의 인생으로 볼 때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정도라고 할까. 스스로 무언가를 연구한다는 것을 동경하고 있지만, 아직 그럴 정도의 레벨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스스로 연구주제나 기획을 세우고, 거기에 필요한 기술과 자재, 인력과 자본 등을 계산하고 고려해서, 프로포잘 잘 써서 연구비 타내어, 그걸로 열심히 연구에 성실히 매진하고, 그 결과에 스스로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러면서 후배 엔지니어들을 상냥하게 잘 지도해주고 가르쳐주는, 그런 '어엿한 한 사람의 엔지니어'に、いつかはなってほしいね!
...그런 생각과 천년고도 교토의 철학의 길을 걸었다. 아직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미숙한 초짜 풋내기 엔지니어지만,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한참 앞서서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안타깝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 나가며, 한 사람의 어엿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대학원 진학은 인생의 목적도 아니고, 새로운 시작일 뿐이니까.
철학의 길을 걷다 보니 금방 은각사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도시샤 대학.
* 2010 한여름 페스타 11일차, JR패스 개통 3일째, 9월 5일 주일 오후 6시 10분
도시샤 대학
가장 윗 사진은 연세대학교 윤동주 시비. 뒷 건물은 윤동주 선배님께서 기숙사로 쓰셨던 핀슨 홀. (현재 윤동주기념관)
중간 사진은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 시비.
아래 사진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서시」
감히 「서시」의 위대한 싯구를 입에 담기에는 부끄러운 후배가 미션스쿨 도시샤 대학의 시비에 찾아왔다.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윤동주 선배님은 독립운동 죄명으로 체포되어 큐슈의 감옥에 구금되었다가 독립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았다. 고교생이 되던 시절부터 깊은 감명을 주었던 서시.
주옥같은 명시를 가슴 속에 다시 새기며 시비 앞에서 깊은 존경과 경의를 윤동주 선배님께 올렸다.
들어갈 때는 '너무 시간이 늦었는데.. 어서 보고 오게.'하고 걱정스럽게 길을 안내해 준 경비원은, 인사를 드리고 나가는 나를 불러 윤동주관련 책자를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비를 향하여 다시 되돌아보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어엿한 한 사람의 엔지니어가 되어, 선배님께 다시 인사를 드리러 찾아올 날이 오기를....
2010 한여름 페스타「청춘18프로젝트~일본편」 (2010.08.25~09.20.)
오가사와라 제도 아침 해의 산 (2003-2010) ⓒ 正義の魔法使い 水海 唯Se-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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